기사 (6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59) '조건 없이' 유학 지원 [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59) '조건 없이' 유학 지원 1977년 첫 장학생 선발에 나서자 대학가가 이내 술렁였다. 학자적 자질이 있는 우수 인재를 뽑아 파격적인 조건으로 유학을 지원하고, 거기에 세계를 선도하는 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한 장학 사업은 이전에는 볼 수 없는 형태였다. 국비 장학생 제도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4~5년 뒤에야 태동했다.이후로도 최종현이 한국고등교육재단에 대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엄청난 재원을 지원하면서 어떻게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시선은 물론 재단에 선발된 장학생들도 "이면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재단은 선발된 장학생들에게 강도 높은 사전 교육을 했다. 한국 유학생들이 언어, 문화, 커리큘럼에서 뒤처질 것을 대비해 1~2년 준비 기간을 두고 철저히 SK 70년 | 특별기획팀 | 2025-08-20 07:00 [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58) 최종현 "인재는 무한자원" [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58) 최종현 "인재는 무한자원" 최종현의 꿈 가운데 하나는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중심 대학을 만드는 것이었다. 인재야말로 석유보다 무한한 자원이라고 믿었던 그는 21세기에 대한민국이 일등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걸맞은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MBC가 청소년 대상 교양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가 광고주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처했을 때 최종현이 선뜻 나선 것은 이러한 이유에 기인했다. 선경은 당시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1973년 2월 18일 방영 프로그램부터 단독 광고주로 나셨다. 는 2023년 기준 KRI 한국기록원에 의해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으로 인증받은 유례없는 대기록을 기록하며 여전히 그 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1980년대 초 500회 특집을 맞은 축하 자리에서 최종현은 그간 후 SK 70년 | 특별기획팀 | 2025-08-06 07:00 [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57) "나는 인생을 두 배 살았다" [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57) "나는 인생을 두 배 살았다" 최종건의 건강은 오래가지 못했다. 3년 후 가래에 피가 섞여 나와 다시 병원을 찾았다. 검사를 마친 병원이 암은 아닌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듬해 봄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청도로 폐에 암이 퍼져 있었다. 최종건은 자신의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는 병문안 온 방일영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사실 저는 오늘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습니다. 남보다 두 배는 오래 산 셈이지요 그 누구보다 두 배 이상 열심히 뛰어오지 않았습니까?"주치의였던 서울대학교병원 한용철 박사가 병명을 말했을 때, 최종건은 "왜 1년도 안 된 작년 여름에 암인 줄 알고도 확신을 못 내렸느냐?"고 물었다. 한용철은 "일본에서 최근 개발한 파이버스코프가 있다면 기관지 구석구석까지 자세히 관찰 SK 70년 | 특별기획팀 | 2025-07-23 07:00 처음처음1234567891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