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0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66)'뒷방 마님'의 와신상담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66)'뒷방 마님'의 와신상담 1964년 5월, 한국일보 사주 장기영 씨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으로 취임했다. 장 씨는 마치 조직의 우두머리처럼 부하 직원을 불도저식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그는 '왕초'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왕초 부총리는 쓰루 차관을 외자 도입 등 '영양가' 있는 업무에서 배제하고는 그에게 제2차 5개년 계획의 총괄 역할 등 별 영양가 없는 업무를 맡겼다. 그 일을 맡기는 왕초나 그 일을 떠안은 쓰루를 포함한 그 누구도 2차 계획의 수립과 성공적인 추진이 쓰루라는 부총리를 태어나게 하는 발판이 되리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1-06-15 09:00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65)한국 최초의 컴퓨터 도입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65)한국 최초의 컴퓨터 도입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군사정권의 '소원 목록'이었다면, 2차 계획은 본격적인 '계획'이었다. 주먹구구와 과학 간의 차이라 할까, 두 계획 사이에는 접근 방식과 수준 등 여러 가지 점에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었다.2차 계획 수립 팀이 특히 신경을 썼던 것은 계획의 실행 가능성과 관련 정책 수단 및 부문 간 정합성 두 가지였다.2차 계획 수립은 1차 계획이 아무 준비도 없이 서둘러 과욕을 부린 탓에 훗날 수정하고 늦추고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반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준비 기간부터 그랬다. 충분한 시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1-06-01 09:00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64) '대일 청구권 자금' 난항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64) '대일 청구권 자금' 난항 1964년 초 대일청구권자금 협상이 시작되면서 심각한 국가 현안이 되었다.정치권에서는 부문별 용처를 정부가 임의적으로 배분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야당에서는 여야 모두가 참여하는 청구권자금 운영이어야 함을 역설하기 시작했다.국회 외무위에 참석한 쓰루는 대일청구권자금 운영관리위원회를 초당적으로 구성하여 청구권자금을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해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냈다. 이어서 2월 24일 쓰루는 '한일회담 타결되면 일본에 수출사절단을 상주시켜 일체의 계약을 위임', '대일청구권자금 운영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1-05-25 12:25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1112131415161718192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