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0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72)왕초와 쓰루 '오월동주'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72)왕초와 쓰루 '오월동주' 왕초는 자기와 뜻이 맞지 않으면 경제부처 장관을 자주 교체했다.특히 부총리 재임 3년 5개월 동안 재무장관을 5명이나 바꾸었다. 그런데도 쓰루가 재무장관으로 승진되어 나갈 때까지 2년 4개월 동안 그를 차관으로 계속 데리고 있었던 것을 보면, 왕초가 그릇이 커도 상당히 컸음이 분명하다."두 분이 갈라설 일이 몇 번 있었는데, 왕초가 포용력으로 이를 잘 넘겼다. 만일 입장이 바뀌어 쓰루가 부총리고 왕초가 차관이었다면 왕초는 벌써 쫓겨났을 것이다. 이것만 생각해봐도 왕초가 그릇이 큰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쓰루가 왕초 밑에서 최장수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1-09-07 09:00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71)民官협력 왕초가 한수위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71)民官협력 왕초가 한수위 장기영과 김학렬은 서로 너무 달랐다. 하지만 정책관에 공통점도 있었다. 초기 산업화 시대를 이끈 만큼, 두 사람 모두 성장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왕초는 상대적으로 '성장 일변도'였고, 쓰루는 '성장 속의 안정'을 꾀한 편이었다.이 정책관의 차이 또한 두 사람의 다른 배경 때문인지 모른다. 왕초는 자기 혼자 일가를 이룬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어려움이 있으면 이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에게 한국 경제의 급선무는 성장이었다. 안정은 성장을 이룩한 후에 따져볼 일이었다. 쓰루라고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1-08-24 09:00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70)장기영과의 '동상이몽'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70)장기영과의 '동상이몽' 왕초는 기발하고 과감한 아이디어로 기존 틀을 깨고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장기가 있었다.1965년 9월의 (예금금리보다 대출금리를 낮게 하는) 금리 현실화 조치가 그 한 예다.정책 기조를 수입 대체 산업화에서 수출 주도 산업화로 대전환하는 데 적임자였다.쓰루는 계량화와 강력한 조정 및 추진력에 강점이 있었다. 그의 정책적 업적은 대부분 정책 기획 단계가 아니라 정책 집행 단계에 확보되었다. 기존의 틀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행정가였던 것이다. '쓰루표' 국가사업인 포항제철소 건설이나 경부고속도로 건설뿐 이코노텔링 독점연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2021-08-10 09:00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1112131415161718192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