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29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김성희의 역사갈피] 가짜뉴스와 계란의 유해론 [김성희의 역사갈피] 가짜뉴스와 계란의 유해론 '가짜뉴스'가 전 세계적으로 문제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옥석을 가리기 힘든 정보가 흘러넘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자기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정보만 취하고, 믿어버리는 세태도 한몫했다.우리나라에선 주로 정치판을 중심으로 온갖 가짜뉴스가 연일 양산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정파의 이익에 매몰돼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심보로 불을 붙이면 팬덤이 몰려들어 판을 키우는 식이다.이러다 보니 전문 지식에 의거해 당위 혹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아니라 아군이냐 적군이냐가 더 중요해진다. 요컨대 '그가 개새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우리 개새끼다'라거나 '나도 너만큼 알아'란 믿음 또는 자부심이 가짜뉴스를 키운다.이처럼 가짜뉴스를 맹신하는 세태 북&스포츠 in history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2023-05-01 09:00 [김성희의 역사갈피]고종황제의 전화 [김성희의 역사갈피]고종황제의 전화 미국이 우방국 정부 수뇌의 대화를 도청했다 해서 온 세계가 들썩거렸다. 당연히 우리 정부도 휩쓸려 들어 여야 간 논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한데 『사물로 본 조선』(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글항아리)을 보면 '도청' 시비는 이 땅에 전화가 처음 들어왔던 100여 년 전, 그러니까 20세기 초부터 일었다.우리나라에 전화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82년 일이다. 청나라에 갔던 영선사 일행이 귀국할 때 여러 전기기기를 들여왔는데 전화선이 없는 상태였으니 당연히 사용되지는 못했다. 1898년 1월에야 궁궐과 정부 각 부서에 전화기가 설치되어 제한적이나마 전화 시대가 열렸다. 일제 침략이 노골화한 1902년 서울 인천 간 시외전화가 개통됐고 그해 6월 한성전화소를 설치해 민간인들도 전화를 이용할 수 북&스포츠 in history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2023-04-24 16:01 [김성희의 역사갈피]소인(小人)에도 등급 [김성희의 역사갈피]소인(小人)에도 등급 7세기 당나라 고종 때 '활약'한 허경종(許敬宗)이란 인물이 있다. 고종의 황후였지만 그의 사후 주나라를 세워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가 되었던 무측천(武則天)의 총신이었다.그는 중신 중에 무측천이 황후가 되는 걸 최초로 지지한 이의부(李義府)와 더불어 초기 무측천의 양 날개였다.한데 허경종은, 고양이처럼 겉으론 온순하지만 속은 음험하고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 해서 '이묘(李猫)'라 불린 이의부와는 달랐다.심한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무식하거나 무능하지도 않았다. 일찍이 방현령 등 훗날의 명재상들과 나란히 십팔학사가 되어 당 태종의 정치고문 역할을 했으며, 『오대사(五代史)』 등 역사서 편찬을 총괄했을 만큼 박학다식했다. 요컨대 능력은 뛰어났지만, 인품과 역사가로서의 북&스포츠 in history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2023-04-17 11:00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1112131415161718192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