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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가짜뉴스와 계란의 유해론
[김성희의 역사갈피] 가짜뉴스와 계란의 유해론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5.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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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정보만 취하고, 믿어버리는 세태가 '가짜뉴스'의 온상
정파의 이익에 매몰돼 '일단 질러 놓고 보자'는 심보로 불 붙이면 팬덤이 판을 키워
1970년대 미국 최고의 영양학자가 '계란의 치명론'을 제기했으나 나중에 뒤집어져
1970년대 미국 최고의 영양학자들은 계란이 몸에 치명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가짜뉴스'가 전 세계적으로 문제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옥석을 가리기 힘든 정보가 흘러넘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자기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정보만 취하고, 믿어버리는 세태도 한몫했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정치판을 중심으로 온갖 가짜뉴스가 연일 양산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정파의 이익에 매몰돼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심보로 불을 붙이면 팬덤이 몰려들어 판을 키우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전문 지식에 의거해 당위 혹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아니라 아군이냐 적군이냐가 더 중요해진다. 요컨대 '그가 개새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우리 개새끼다'라거나 '나도 너만큼 알아'란 믿음 또는 자부심이 가짜뉴스를 키운다.

이처럼 가짜뉴스를 맹신하는 세태를 분석하고 처방을 제시한 책이 미국 해군대학 교수 톰 니콜스가 쓴 『전문가와 강적들』(오르마)이다. 지은이는 전문가들이 무시되는 원인으로 인터넷의 오용부터 교육제도의 문제까지 다양하게 짚는데 여기 흥미로운 사례가 나온다. 전문가도, 때로는 집단적으로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서다.

1970년대 일이다. 미국 최고의 영양학자들이 계란이 몸에 치명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계란에는 콜레스테롤이 많고, 콜레스테롤은 동맥을 막으며, 동맥이 막히면 심장마비가 와서 사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결론은 미국인들의 식탁에서 콜레스테롤을 제거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이 부추긴 계란 공포증에 따라 미국 정부는 계란을 식품 블랙리스트에 올리기에 이르렀다. 우유와 더불어 계란을 '완전 식품'으로 알고 있던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였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계란이 해롭다는 전문가들-그리고 정부-의 권고를 많은 (비만)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계란 소비는 30%가량 줄었다. 그러나 어쨌든 먹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사람들은 대신 다른 식품을 먹었다. 모두 살이 찌게 만드는 식품들이었다. 사람들의 체중이 늘어났으며 다른 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졌다. 계란의 주요 생산지인 버몬트 출신의 제프리 노먼이란 칼럼니스트는 "계란 대신 먹었던 식품들이 아마도 제2형 당뇨병이나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 병으로 사람들을 고생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썼다.

이는 엉터리 연구가 '우연히' 연속된 탓이었는데 나중에서야 계란은 그렇게 나쁘지 않거나, 적어도 다른 식품들보다 더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정부가 2015년에야 계란을 먹어도 나쁘지 않으며 어쩌면 건강에 이롭기까지 할 거란 공식 결론을 내렸다.

톰 니콜스의 책 원제는 '전문 지식의 죽음'이지만 때로는 전문가라 해서 마냥 믿을 것도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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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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