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2 09:40 (일)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99)김학렬 없는 이임식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99)김학렬 없는 이임식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2.09.2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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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집에서 요양후 다시 일하라"했지만 췌장암 말기 판정
수술하려 개복한 후 그냥 덮어 … 태완선 건설부 장관 새 부총리 올라
서울대병원서 장기영 문병 받아…고통 심해져 조용기 목사 안수기도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br>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12월 말 쓰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박통에게 "제발 물러나게 해달라"고 다시 간청하였다. 집에서 며칠 쉬면서 몸조리를 한 후 부총리를 계속하라고 권하던 박통도 그의 완연한 병세에 더는 부총리 속행을 강권하지 못했다. 1972년 1월 4일 부총리가 태완선 건설부 장관으로 교체되었다. 석별을 하면서 박통은 "집에서 요양하면서 건강을 되찾아 다시 일해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그게 그가 마지막으로 대한 박통이었다.

김학렬은 개복 수술 후 며칠 뒤부터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가족과 극히 가까운 인사 외에는 문병도 사절했다. 고통을 줄이는 시술을 위해 서대문 고려대병원(지금의 강북삼성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계속했으나, 고통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병문안을 오던 이기준 경과심 위원은 '용하다'는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를 초빙하여 안수기도를 받게 해주었다. 그의 서거소식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김학렬이 흐트러짐이 없이 써내려간 공인으로써의 삶을 조명한 한 신문의 보도.

1월 6일 부총리 이취임식에는 쓰루가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입원한 상태였다. "2년 6개월에 걸친 폭풍 같은 김학렬 시대가 끝난 것이다. 이로써 기획원도 거인, 기인들의 시대를 마감하고 보통 사람의 시대가 열렸다."

위암 등 소화기 계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의사들은 진단했다. 수술 여부와 치료 방법 등을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쓰루와 그의 가족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대병원 특실에 장관, 국회의원, 재벌 총수 등 돈이나 권력 있는 사람들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입원하여 종합검진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권력이든 돈이든 뭔가 '있는 자' 중에 쓰루처럼 정기검진을 받지 않는 게 오히려 드문사례였던 거다. 나라에 몸 바쳐 일하다가 죽을병을 얻은 사람은 평소에 검진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남몰래 늘 검진을 받아왔다는 사실에 쓰루와 그 식구들은 배신과 유사한, 야릇한 섭섭함을 경험했다.

1월 24일 서울대병원 민병철 외과의가 집도한 수술은 오래가지 않았다. 개복 후 말기에 이른 췌장암 전이를 확인하고 바로 덮은 것이다. 의료진의 소견으로는 암의 진행이 약 6개월 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전해 이른 가을, 부총리 쓰루의 업적과 권위가 손상되기 시작한 바로 그때, 암이 쓰루의 몸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

서울대병원에 왕초가 문병을 왔다. 그가 잠시 머물다 돌아간 뒤 쓰루가 부인에게 "역시 저 왕초가 인물은 인물이야"라고 회한에 찬 한마디를 던졌을 때, 비로소 두 사람이 진정한 화해를 한 게 아니었을까.

개복 수술 후 며칠 뒤부터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가족과 극히 가까운 인사 외에는 문병도 사절이었다. 고통을 줄이는 시술을 위해 서대문 고려대병원(지금의 강북삼성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계속했으나, 고통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병문안을 오던 이기준 경과심 위원은 '용하다'는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를 초빙하여 안수기도를 받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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