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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7)'나의사랑 그리스'㊤일상의 위기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7)'나의사랑 그리스'㊤일상의 위기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0.02.13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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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그리스인의 삶'파괴 하는지 조명
영화 제목만 보면 관객의 편견과 오해를 낳을 소지 많아
에피소드로 그려낸 세 가지'사랑'은 모두 비극으로 결말

봄바람 타고 온 멜로영화 스크린을 녹이다, 따뜻한 로맨스가 온다, 봄날의 바람 같은 사랑에 대하여, 세 편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 여심자극 로맨스 영화, 20-40-60대 세대별 사랑이야기, 사랑을 꿈꾸고 사랑으로 위로받는다, 생경하기에 더욱 소중해진 '사랑'이란 가치, 암울한 현실 껴안은 로맨스 무비, 위기를 극복한 사랑 이야기, 유럽 난민과 그리스 경제 위기의 해답은 사랑인가, 그래도 사랑은 있다, 기댈 곳은 결국 사랑뿐....

2017년 4월 개봉돼 기대를 모았던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Christopher Papakaliatis) 감독의 2015년도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에 대한 언론의 일반 리뷰다. '기대를 모았다'고 말한 이유는 네 가지. ①우리에게는 생소한 그리스 영화라는 점, ②그리스에서 상당한 화제가 됐고 상업적 성과도 얻었다는 점, ③개봉 전 해인 2016년 부산영화제에 출품돼 호평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④간간히 언론 보도를 통해 그리스가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 등이다. 개봉 20년 전 그리스처럼 경제위기를 겪었던 우리 입장에서는 공감의 여지가 적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언론의 리뷰만으로 우리는 영화를 보지 않고서도 많은 것을 알고 느낄 수 있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앞에서 제시한 언론의 다양한 리뷰를 통해 이 영화가 세 편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꾸며진 '사랑 이야기'이며,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인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사랑을 통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구나 하는 정도의 내용으로 파악하게 된다. 여기에 '그리스'라는 나라 이름이 들어간 제목이 곁들여지면서 사랑과 어우러지는 전통적인 그리스의 가치관이 연상된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현자(賢者)나 제우스나 아프로디테 등 인간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많은 신(神)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언론 리뷰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대표적인 사례일 수 있다. 이 영화를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보기 어려운 탓이다. 게다가 사랑으로 경제위기를 넘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영화는 더 더욱 아니다. 영화 <나의 사람, 그리스>는 한 마디로 '위기'에 대한 영화다. 정치위기, 경제위기, 사회위기, 그리고 개인의 삶의 위기. 따라서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가 아닌 정치영화나 경제영화, 또는 사회영화로 분류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특히 필자는 이 영화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싶다. 영화는 정치ㆍ경제위기로 파괴된 삶, 그래서 인간성이 말살되고 사랑도 파괴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일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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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달린 영화 제목도 오해와 편견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된다. 우리나라의 영화 제목 '나의 사랑, 그리스'는 한 마디로 생뚱맞다. 그리스 원제는 '에나스 알로스 코스모스(ένας ἄλλος κόσμος)'. 우리말로는 '하나의 또 다른 세계' 쯤 된다. 영어로는 단어 1대 1로 매칭이 돼 더 분명하게 번역될 수 있다. '언 어나더 월드(an another worl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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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의 영어 제목은 '월즈 어파트(Worlds Apart)로 돼 있다. 우리말로는 '따로 떨어진' 또는 '산산조각 난' '세계들' 쯤 된다. 뭔가 그리스 원제의 의미를 살리면서 동시에 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영어 제목에서의 고심을 밝힌 적이 있다. 그만큼 제목 달기가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나의 또 다른 세계'이든 '따로 떨어진 세계들'이든 '산산조각 난 세계들'이든 어쨌거나 그리스 원제와 영어 제목에는 공통된 의미가 찾아진다. '세계'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는 너무나 많은 다양한 일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랑은 그 다양한 일들 중 하나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려는 '세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말하려는 '세계'는 바로 우리의 '현실'이며 '일상'이며 '생활'이다. 달리 말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상식의 세계'인 것이다.

②-3/②-1, ②-2 , ②-3 는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포스터. ②-1그리스어판, ②-2영어판, ②-3한국어판. 그리스어판과 영어판 제목은 ‘서로 다른 세계’의 의미를 내포하는 반면 우리나라 제목은 원래 의미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아 아쉽다.
②-3/②-1, ②-2 , ②-3 는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포스터. ②-1그리스어판, ②-2영어판, ②-3한국어판. 그리스어판과 영어판 제목은 '서로 다른 세계'의 의미를 내포하는 반면 우리나라 제목은 원래 의미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아 아쉽다.

현실세계, 일상세계, 생활세계,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상식의 세계. 어느 정도의 철학적 또는 사회학적 소양을 갖춘 독자라면 이 몇 개의 단어들에서 특정 사상이나 이론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과 미국에서 활동한 오스트리아 출신 사회학자 알프레드 슈츠(Alfred Schutz)의 '현상학적 사회학'이 그것이다. 좀 더 진도를 나간다면 '의사소통적 합리성 이론'으로 잘 알려진 위르겐 하바마스(Jurgen Haberma)의 '생활세계' 개념이나 사회경제의 효시로 불리는 칼 폴라니(Karl Poliny)의 '배태된 경제'의 개념에까지 이른다. 이들의 이론이나 사상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는 있을 것 같다.

①우리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세계는 구성원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Taken-for Granted) 지식, 즉 '상식(Common Knowledge)'으로 유지되고 있다.

②이 '상식'은 우리의 삶 그 자체로서의 '생활'이나 '일상생활' 또는 '현실'을 구성한다.

③따라서 우리는 이 '공통된 세계(Common World)'를 '당연시의 세계(Taken-for Granted World)'나 '상식의 세계(Common Sense World)', 또는 '일상생활 세계(Everyday Life World)'나 '생활세계(Life World)' 등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④대체로 '사회'로 규정할 수 있는 이 생활세계는 당초 경제와 정치 등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⑤하지만 사회의 진화와 더불어 '경제'와 '정치'는 이 '사회'로부터 분리됐으며 이 '정치'와 '경제'는 거꾸로 '사회'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⑥또한 '경제' 영역은 현재 고도의 자본주의 체제로 무장함으로써 경제 즉, 자본에 의한 사회, 즉 생활세계의 지배성이 한층 강화됐다.

결국 이런 얘기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삶의 근간이 되는 당연시의 세계, 또는 상식의 세계, 또는 일상세계, 또는 생활세계는 정치와 경제체제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 위기, 경제의 위기는 곧장 우리의 삶 자체의 위기를 불러일으키며 이 정치ㆍ경제위기가 지속된다면 우리 삶의 위기 역시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논리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또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계속되는 정치ㆍ경제위기, 즉 '일상화된 정치ㆍ경제위기'는 우리 '일상(세계)'를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논리가 중요한 이유는 현대의 위기가 말 그대로 일상화돼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일상 역시 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위태로운 위기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리스에서 가장 성공한 예술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는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 배우이기도 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지오르고 역을 맡았다.
그리스에서 가장 성공한 예술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는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 배우이기도 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지오르고 역을 맡았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바로 '일상이 된 위기'에 따른 우리 '일상의 위기'를 다룬다. 그래서 정치영화요, 경제영화이며, 동시에 사회영화로 분류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영화는 사랑으로 정치ㆍ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영화는 일상화된 정치ㆍ경제위기 아래서는 우리의 삶 또는 우리 일상의 근원이 되는 사랑마저 파괴될 수 있다는 참담한 현실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영화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세 개의 사랑 모두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잔인한 현실은 잔인한 경험을 낳고 잔인한 경험은 잔인한 기억을 남긴다. 문신처럼. 이것이 필자가 보는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다. "사랑과 정치 간 대결 구도를 그리려 했다"는 감독의 말 또한 이 같은 해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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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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