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7 11:50 (월)
◇김수종의 취재여록 ㉙ 석유로 읽는 미국 역사 (8) '영등포역'으로 불리는 '리처드슨 기지'
◇김수종의 취재여록 ㉙ 석유로 읽는 미국 역사 (8) '영등포역'으로 불리는 '리처드슨 기지'
  • 이코노텔링 김수종 편집고문(전 한국일보 주필)
  • diamond1516@hanmail.net
  • 승인 2025.11.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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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리지서 한국인 함께사는'코리안 타운' … 2025년 여름 美-러 정상회담 열린 장소
겨울과 여름은 지옥과 천당 … 겨울엔 야외활동 불가능해 장례식도 이듬해 봄에 치러
여름엔 광활한 자연에 빠져 '정착 충동' 열병… 최근 전문직 교포2세대 주류사회 진출
1986년 여름 알래스카를 취재할 때 앵커리지 한인회에 알아보니, 알래스카주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6천 명 정도였다.

1986년 여름 알래스카를 취재할 때 앵커리지 한인회에 알아보니, 알래스카주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6천 명 정도였습니다.

LA한국일보 소속 기자로서, 이 삭막한 얼음 땅에서 교포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또 그곳에서 어떤 재미를 누리는지를 취재해 LA 교포 사회에 알리는 임무를 안고 있었습니다. 당시 알래스카 유전 개발 소문이 LA 교포 사회에도 퍼져 있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1982년에 보았던 얼음 지옥

사실 이 여행에 앞서 1982년 11월, 한국일보 서울본사 사회부에 근무할 당시 앵커리지에 3박 4일간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부장은 "88올림픽을 앞두고 있으니 한국인도 해외여행을 하며 시야를 넓힐 때"라며 해외여행 가이드 기획보도를 지시했습니다. 그때는 외교관, 일부 공직자, 무역회사 파견 근무자, 중동 근로자 등 일부 특수 계층만 해외여행이 허용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다행히 이전에 공항출입기자 시절 미국과 유럽을 여행한 경험이 있어, 취재를 수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와이, LA,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년, 샌프란시스코, 뉴욕, 나이애가라 폭포를 거쳐 귀환하는 여정 중,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기착지로 잡아 며칠 묵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눈 속에 파묻힌 3박 4일은 지옥 같은 겨울 여행이었습니다. 안내를 맡은 항공사 직원이 빙하를 보여주겠다며 어렵게 차를 몰아 찾아갔으나, 완전히 얼어붙은 호수 위의 빙하는 눈이 덮여 있어 빙하인지 눈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낮이 짧아 오후 4시만 되면 상점은 문을 닫고 길은 텅 비었습니다. 일요일을 맞아 안내인이 데려다 준 곳은 한국교회였는데, 눈 속에 파묻힌 교회는 겨울철 교포들이 모이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목사는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며 나를 일으켜 세워 특별 축복기도를 해주었고, 이것이 그 겨울 알래스카의 유일한 기억이었습니다.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야외 활동이 거의 중단되는 삶,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봄이 될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하와이가 천국이라면 알래스카는 얼음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국 같은 여름의 알래스카

이런 경험을 갖고 알래스카 취재를 다시 갔으니 6천명이라는 그 많은 한국인들이 왜 얼음땅을 찾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여름에 찾아간 알래스카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소매가 긴 셔츠를 입으면 더위를 느낄 정도로 기온은 높았고 오후 10시가 되도록 계속되는 대낮은 퇴근후 18홀을 돌수 있는 골프 천국이라고 교포들이 좋아했습니다.

"뜰에 호박 묘종을 심어 키우는데 하루에 줄기가 30㎝씩 자란다."는 어느 교포의 말이 알래스카의 긴긴 여름날을 상징적으로 설명해주는 듯했습니다. 한 교포여성은 여름의 알래스카는 드릅 등 산나물이 지천에 깔려 있다며 "사람키만큼 자란 고사리를 보면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다"고 자랑했습니다.

알래스카에 처음 들어와 살았던 한국인이 누구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1986년 당시 앵커리지 한인회장 정원팔 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연세대 의대 출신으로 미국 본토를 거쳐 1971년 에스키모 마을 보건소장을 지냈고, 이후 앵커리지에서 병원을 개업한 정씨는 교민 사회의 터줏대감이었습니다.

정 회장은 1975년쯤 영어만 할 줄 아는 60세 정도의 동양인이 병원을 찾아왔는데, 한국인같다는 생각에 물어봤더니 놀랍게도 그 환자는 한국인 아버지와 인디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한국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알래스카 남부 시트카로 표류했다고 전했으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성 '황'(黃)을 한자로 써서 보여줬다고 합니다. 영어로 옮기며 그의 성은 'Hong'이 되었던 것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주한미군 덕에 커진 한인사회

1971년 즈음 알래스카에는 정 회장을 비롯하여 변호사, 의사, 교수 등 전문직 한국인이 몇 명 거주했지만, 이미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이 한국인 아내를 맞아 알래스카로 전출되면서 교포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가족 이민 초청이 가능해지면서 국제결혼한 한국 여성들이 친정 가족을 초청했고, 1980년대 초반 푸르도베이 석유 개발 경기 덕분에 미국 본토 교포들도 알래스카로 들어왔습니다.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 등 도시에 교포들이 집중했지만, 적응력이 강한 한국인들은 북극해 에스키모 마을, 앨류산 열도 어항 등에도 진출했습니다.

다른 인종도 그렇지만 한국인들은 미국에서 끼리끼리 몰려살며 커뮤니티를 이룹니다. 뉴욕 맨해턴 32번가, LA코리아 타운이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알래스카에는 코리아타운이 본격 형성되지는 않았습니다. 미군과 국제결혼한 한국여성들 가족이 몰려들면서 페어뱅크스와 앵커리지의 군부대 주변에 한국인들이 몰려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앵커리지의 리처드슨 기지 부근은 한국인들이 몰려사는 동네로 기지에 설치된 철망엔 '셋집놓는다'는 한글간판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곳은 한국 교포사이에선 '영등포역'으로 통했습니다. 주한미군과 인연이 있는 동네라는 의미죠. 리처드슨 기지는 2025년 여름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담장소이기도 합니다.

▪아빠도 청소, 엄마도 청소

초기 한국인 이민자들이 갖는 첫 직업은 청소업입니다. 영어도 못하고 기술도 없고 가진 돈도 없는 이민자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청소입니다. 교회는 이민자들이 소통하고 정보를 구하며 일자리를 얻는 곳입니다. 앵커리지의 한인 교회를 찾아가 "앵커리지에 사는 교포들이 많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느닷없이 곁에 있던 목사의 어린 딸이 아버지를 제치고 "아빠도 청소, 엄마도 청소"라고 답할 정도였습니다. 실제 알래스카 교포 80% 이상이 빌딩 청소 노동자였습니다.

한국인들 사이에 가장 관심사는 시간당 임금이었습니다. 일자리 얘기만 나오면 "시간당 얼마래?"라는 물음이 나왔고 대답은 "6원50전", 이런 식이었습니다. 교포들은 미국 어디에서든 달러를 이렇게 한국식으로 풀어 말합니다. 청소일에 시간당 임금 6달러 50센트는 당시 LA보다 높은 액수였습니다. 알래스카는 본토보다 물가도 비싸고 쉽게 필요한 사람을 제때 쓸수가 없어 임금이 높았습니다. 앵커리지에서 청소 일자리를 잡은 교포들은 주로 퇴근 이후 저녁 8시부터 새벽4시까지 빌딩 청소를 했습니다. 부부가 휴가도 없이 4,5년 이렇게 청소일을 하고 받은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주 형무소를 삼환기업이 짓다

당시 항구도시 스워드에는 주립 형무소가 신축중이었는데 그 시공을 삼환기업이 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미국 공공건물을 한국 건설사에 맡겨 짓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파견된 삼환기업 엔지니어 등 대여섯 명은 모두 중동건설형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미국인 근로자 50여명을 감독하며 신축공사에 참여했습니다.

형무소 위치가 빙하로 둘러싸인 피요르드 연안이어서 경치가 빼어났습니다. 공사 총감독 박병용씨는 "경치가 아름답지만, 수용자들이 탈출해도 빙하와 차가운 바다 때문에 막힐 것"라고 설명했습니다.

박 감독은 미국과 중동의 건설공사의 차이점을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미국은 정말 합리적입니다. 원가분석을 철저히 해서 시공회사에 일정분 이상의 이익을 절대 주지 않습니다. 대신 공사 진도에 따라 공사대금을 지체 없이 지급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중동보다 돈버는 재미는 없는 곳이 미국공사판입니다."

노가다판 백인 노동자들의 작업 태도에 대해 박 총감독은 "제몫을 받기도 하지만 제몫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겨울 병과 여름 병

알래스카에는 계절별로 두 가지 병적 증세가 있습니다. 겨울의 캐빈 피버(cabin fever)는 집에 갇혀 생기는 우울, 초조, 불안 증세입니다. 11월부터 3월까지 사람들은 캐빈 피버에 시달립니다. 이 질환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람들은 스키나 겨울낚시 등 야외활동에 몰입하거나, 알래스카를 탈출해서 하와이 등지로 여행을 나갑니다.

여름의 알래스카 피버(Alaska fever)는 광활한 자연과 고요한 삶에 빠져 도시로 돌아가기 싫어지는 정착 충동입니다. 알래스카에 오래 산 백인들은 이런 증후군에 빠진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0세기 초 금을 캐러 알래스카에 왔다가 그 매력에 빠져 이주한 사람과 1970년대 유행한 '자연으로의 회귀' 운동 이후 많은 백인들이 알래스카로 이주하면서 갱겨난 말이 알래스카 피버입니다.

알래스카로 이주해온 한국인들은 처음엔 미국에 살기 위해 알래스카로 들어왔지만 막상 살아보니 국토가 비좁은 한국과 달리 광대한 땅과 아름다운 자연에 매력을 느껴 눌러앉게 된다고 합니다. 미국 대도시의 강력범죄와 마약에 대한 두려움도 이곳 교포들로 하여금 "알래스카가 살기 좋다"는 앨라스카 피버를 느끼게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낚시는 취미이자 삶의 일부

알래스카 교포들이 너나 없이 가장 즐기는 취미는 낚시였습니다. 낚시는 알래스카 교민들의 취미이자 생계의 일부였습니다. 알래스카 바다와 하천에는 광어 연어 등 생선류와 조개, 게 등이 풍부합니다. 실제 여름에 조그만 개울가에 서서 보면 산란하기 위해 상류룰 향하는 연어가 물반 고기반입니다.

교포들은 3월부터 조개잡이를 시작으로, 4월엔 멸치류인 스멜트를 잡아 젓갈을 담고, 5월엔 산에서 고사리, 두릅. 고비를 채취하고,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몸체가 큰 킹새먼과 광어낚시를 합니다. 연어 5,6마리 광어 20마리만 잡아 저장해두면 1년치 반찬이 된다고 했습니다. 앨라스카 교포 가정마다 해산물을 보관하는 큰 아이스박스가 구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낚시와 관련하여 불행한 사고가 생기고 눈살을 지프리게 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1986년에만 교포 7명이 낚시를 갔다오다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청소일 등으로 고단한 몸을 이끌고 낚시를 한 후 뜬 눈으로 차를 몰고 돌아오다 트럭과 충돌하거나 낭떨어지로 굴러 추락한 사고였습니다.

알래스카 게잡이도 유명합니다. 모래에 구멍을 내고 숨쉬는 게를 한 마리 발견하면 그 구멍밑에 수백마리 게가 살고 있습니다. 법으로 게는 한 사람이 7마리, 그것도 수컷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교포는 계속 나오는 게를 암수 가리지 않고 마구 잡습니다.

어떤 교포가 욕심에 규정을 어기고 게를 수백마리 잡아 마대에 담고 귀가 중, 게가 마대룰 뚫고 기어나와 운전하는 교포의 머리로 기어오르자 당황해서 사고를 일으켜 탑승자가 부상한 일도 그해에 있었다고 합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알래스카 교포사회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각종 자료에 의하면 교포2세대는 전문직 종사자가 많아져서 주류사회 진출현상이 뚜렷해졌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세대는 바뀌어도 알래스카를 선택한 한국인들은 여전히 이 얼음 땅과 광활한 자연 속에서 적응하고 도전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긴 겨울의 어둠과 찬란한 여름을 모두 경험하며, 미국 본토보다 훨씬 강인하고, 자연과 가까운 삶의 방식을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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