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6 20:55 (토)
[이만훈의 세상만사] ⑤ 국화 예찬
[이만훈의 세상만사] ⑤ 국화 예찬
  • 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 mhlee108@hanmail.net
  • 승인 2024.12.1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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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화분에서 반쯤 녹지 않은 눈 털어내니 이파리는 이파리대로 멀쩡
고려 의종때 왕궁의 뜰에 국화 심어 삼국시대부터 국화를 화초로 재배
천둥소리 들어가며 무서리 내리기 기다려 피어 나는 인고의 결기 노래
국화꽃은 예부터 매화와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꼽히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얼마 전 느닷없이 폭설이 내려 세상을 덮쳤을 때 손바닥만 한 내 화단도 여지없이 흰빛으로 실신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내리는 양이 엄청난 데다 물기가 흥건한 눈이라 처억 척 달라붙는 통에 밤새 여기저기서 소나무 부러지는 낙목성(落木聲)이 비수처럼 후벼대 뒷산이 고냥 날밤을 새웠으니 말해 무엇 하랴. 하얀 눈만큼 겨울을 겨울답게 하는 게 없지만 내리면 반갑고 정겹다가도 때론 귀찮고 때론 무섭던 촌놈의 아리까리한 추억이 새삼스러웠을 정도니까. 다행인지, 날이 푸그러지면서 하루 만에 쌓인 눈이 스러지기 시작하고…, 하지만 미쳐 안으로 들이지 못했던 화초들이 소금에 절여진 듯 숨이 죽은 채 까부라진 참상이라니-.

헌데, 그 와중에 다른 세상을 보았다. 바로 국화였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리 생생한 현장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국화 화분에서 반쯤이나 녹지 않은 눈을 털어내니 이파리는 이파리대로 멀쩡하고, 노오란 꽃송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배시시 고개를 쳐든다.

더 기특한 건 지지대는 눈 가위에 눌려 부러졌는데 정작 국화 줄기는 본디처럼 낭창낭창 바람을 희롱한다. 이런 걸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고 하나. 국화는 역시 장하다. 국화를 두고 흔희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하는 뜻을 알겠다.

한 해를 설거지하는 그 거무죽죽한 어수선함 속에서도 오롯이 고개를 뻗쳐들고 따사로운 미소를 보내는 건 오직 국화꽃송이뿐이다. 희거나 퍼렇거나 붉은 국화꽃보단 샛노란 국화꽃이라야 더욱 그렇다. 노랑은 언제나처럼 포근하고 아늑하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달려가는 이즈음을 지배하는 건 국화꽃의 노란 향기이다. 찬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알몸을 드러낸 채 벗어버린 입새들과 기약 없는 이별에 몸서리 칠 때, 그 장하던 억새가 눈만큼 흰 머리칼을 휘날리며 귀신울음을 울어댈 때, 그리고 산과 들 어디에서나 귀뚜라미며 방울벌레의 하릴없는 추야곡(秋夜曲)을 품었던 온갖 풀들이 짙은 고동색으로 누웠을 때, 네 노란 빛이 없다면 얼마나 을씨년스러울 것이냐.

국화는 꽃 중에 가장 늦게 피고 오래 간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꽃(華)의 궁극(窮極)'이라 해서 '菊'자 대신 '蘜'자로 쓰기도 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은 "국화는 봄에 나서 여름동안 자라고 가을에 꽃을 피워 겨울에 씨를 맺으니 사계절의 기를 받아 악착스레 이슬과 서리를 이겨낸 까닭에 잎은 시들어도 떨어지지 않으며 꽃 역시 말라도 떨어지지(零落) 않는다."고 했다. 일찍이 중국 위나라 종회(鐘會)는 「국화부(菊花賦)」에서 국화에 대해 다섯 가지 미덕이 있다고 상찬했다. '둥근 꽃송이가 높이 달린 것은 하늘을 본받은 것이고, 잡티 없이 순수한 황색은 땅의 색이며, 일찍 심어 늦게 꽃이 달리는 것은 군자의 덕이고, 찬 서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것은 굳세고 곧은 기상을 드러낸 것이며, 술잔에 가볍게 떠 있는 것은 신선의 음식이다.(夫菊有五美焉. 圓英高懸, 準天極也. 純黃不雜, 后土色也. 早植晩登, 君子德也. 冒霜吐穎, 象勁直也. 流中輕體, 神仙食也.)'

국화는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가장 역사가 오랜 꽃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3000년 전 감국(甘菊)과 구절초의 교잡으로 탄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로 재배를 시작한 것은 늦어도 중국 당나라(唐代) 이전일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감국과 구절초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한반도에 자생하고 있는 점으로 미뤄 이 땅에서도 국화의 역사가 오래됐을 테다. 실제로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 따르면 백제 16대 진사왕(辰斯王) 6년(390) 왕인(王人)박사가 일본에 갈 때 청·황·적·백·흑(靑·黃·赤·白·黑)의 5가지 국화 종자를 가지고 갔다고 기록돼 있고, 일본의 『왜한삼재도회(倭漢三才圖會)』에도 백제에서 국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중국 송나라 때 양국(養菊)의 대가(大家)인 유몽(劉蒙)의 『국보(菊譜)』에도 신라국(新羅菊) 이라는 품종을 소개하면서 일명 옥매(玉梅) 또는 능국(陵菊)이라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와 함께 조선 세종 때 강희안(姜希顏)이 지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고려 충숙왕이 원나라에서 귀국할 때 황제가 오홍(烏紅), 연경황(燕京黃), 연경백(燕京白), 규심(閨深), 금홍(錦紅), 은홍(銀紅), 학정홍(鶴頂紅) ․ 소설백(笑雪白) 등 여러 품종의 국화를 다른 꽃들과 함께 선물했다는 내용이 있고, 『고려사(高麗史)』에도 고려 의종(毅宗) 17년(1163)때 왕궁의 뜰에 국화를 심고 감상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미 늦어도 삼국시대부터 국화를 화초로 재배하고 감상했음을 알 수 있다.

국화꽃은 예부터 매화와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꼽히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무서리가 내려 다른 꽃들이 모두 추위에 떨며 항복을 할 때 오로지 국화만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있는 기상(氣像)을 가히 절개와 지조의 표상처럼 여겨 많은 문사들의 예찬이 이어졌다. '국화야 너는 어찌 삼월 동풍 다 보내고/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정보(李廷俌)의 유명한 시조다. 고려의 대문장 이규보(李奎報)선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리를 견디는 자태 외려 봄꽃보다 낫다(耐霜猶足勝春紅)'며 '삼추(三秋)를 보내면서도 떨기에서 떠날 줄 모르는(閱過三秋不去叢)' 독보적인 고결함을 상찬했다. 우리가 잘 아는 미당 서정주(徐廷柱)도 국화를 두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지만 소쩍새 우는 봄부터 먹구름 속에서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를 들어가며 '머언 먼 뒤안길'을 돌고 돌아 무서리 내리기를 기다려 피어나는 인고의 결기를 노래하지 않았던가. 국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바로 위진남북조 시대의 위대한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 북송 때 유명한 학자인 주돈이(周敦頤)는 《애련설(愛蓮說)》에서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진(晉)의 도연명(陶淵明) 이후로 들어본 적이 드물다'고 했을 정도다. 한마디로 '국화하면 도연명'이란 얘기다.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採菊東籬下)/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다 본다(悠然見南山)'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구(名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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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다니다 1982년 중앙일보에 신문기자로 입사했다. 주로 사회부,문화부에서 일했다. 법조기자로 5공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철희ㆍ장영자 사건을 비롯,■영동개발진흥사건■명성사건■정래혁 부정축재사건 등 대형사건을, 사건기자로 ■대도 조세형 사건■'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탄주범 지강현사건■중공민항기사건 등을, 문화부에서는 주요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들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중앙청철거기사와 팔만대장경기사가 영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엔 초짜기자임에도 중앙일보의 간판 기획 '성씨의 고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199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토종을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종자전쟁에 대비를 촉구하는 기사를 1년간 연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토종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대한상의를 비롯 다수의 기업의 초청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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