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24일 서울 본사 기자회견서 MBK와 영풍의 경영권 인수시도 반박 할 듯
75년간 동업해온 영풍(장씨)과 고려아연(최씨) 두 집안의 고려아연 경영권 다툼이 표면화한 지 열흘을 넘기면서 점입가경(漸入佳境)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재계는 이번 다툼으로 영풍그룹의 '한 지붕 두 가족' 살림이 더 심한 갈등 국면으로 빠져드는 게 아니냐며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풍그룹은 ㈜영풍을 모기업으로 국내 재계 순위 30위권(공정위 발표 올해 32위/계열사 24개/자산 16조8860억 원)을 유지해온 유수 기업군이다.
두 집안의 사업 협력 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서로 갈라서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두 집안의 분쟁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영풍그룹은 해방 직후인 1949년 같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고(故) 장병희 창업주와 고(故) 최기호 창업주가 동업해서 세운 무역회사 영풍기업사를 모태로 해서 발전했다.
지배회사인 ㈜영풍과 전자계열은 장씨 집안이 맡고, 고려아연을 중심으로 한 비철금속 계열은 최씨 집안이 담당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업 이후 끈끈했던 동업 관계가 오너 2~3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생 결단의 경영권 분쟁으로 번진 사례는 국내에서도 수없이 보아 왔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소재 사업 동업자로 비교적 조용한 가운데 글로벌 알짜기업을 일궈내 재계 30위권까지 발돋움한 영풍그룹이 2~3세로 넘어오며 이전투구(泥田鬪狗) 사태를 보이자 "아니, 영풍 너마저.."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재계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취임해 3세 경영이 본격화된 2022년 말부터 균열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두 집안의 물밑 갈등은 이번 추석 연휴 전에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지난 13일 영풍과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이하 MBK)가 연합으로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두 집안의 갈등은 표면화됐다.
MBK와 영풍은 13일 공개매수 신고서를 공시했다. 이들은 고려아연에 대한 경영권 강화와 지배구조 및 기업가치 개선 등을 목적으로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다고 밝혔다.
영풍과 MBK가 최윤범 회장 측의 약점인 낮은 경영지배력을 파고들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고, 이에 맞선 최 회장은 국내외를 돌며 우군 찾기에 분주하다.
'영풍그룹' 하면 일반인들은 문화사업체인 '영풍문고'부터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영풍그룹의 주력기업은 ㈜영풍과 ㈜고려아연이다. 비금속광물업종인 아연제련업을 하는 이들 두 기업의 힘을 합치면 글로벌 최강 기업에 속한다.
㈜코리아써키트, ㈜인터플렉스 등 전자부품인 인쇄회로기판 제조업체들이 또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다.
크게 봐서 장씨 집안의 ㈜영풍과 최씨 집안의 ㈜고려아연이 영풍그룹의 양대 산맥인데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두 집안이 혈투를 벌이게 된 것이다.
이번 분쟁을 보는 다수 이해관계자들의 반응은 무척 예민하고 복잡다단하다.
우선 양측의 사태 진전을 을 바라보는 증권시장 참여자들의 촉각이 무척 예민하다. 관련 주식 종목들이 요동치고 있다.
국내 지자체들은 물론 해외 거래선 등 글로벌 업체들의 반응도 민감하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지난 16일 성명을 내고 "지역 상공계와 힘을 모아 고려아연 주식 사주기 운동을 펼치고 120만 시민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울산 울주군 온산읍에 온산제련소를 두고 있다.
울산 시의원들은 "적대적 M&A로 중국 자본에 넘어가게 되면 울산 고용시장과 시장 질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강조했다.
한화, LG화학, 현대자동차, 한국앤컴퍼니, 한국타이어 등 고려아연 지분 보유 업체들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지지에 나설 것 같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고려아연 지분 7.6%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향배도 주목된다.
두 집안의 대결 양상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며칠 새 나온 언론 보도가 그것을 대변해 준다.
영풍 측은 23일 입장문을 통해 "영풍과 MBK가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 이유는 고작 2.2%의 지분으로 75년간 이어온 '동업 정신'을 훼손하고 독단적 경영 행태를 일삼는 '경영 대리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전횡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고려아연 최대주주로서의 경영권 강화 및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고려아연 측도 "MBK와 영풍의 공개매수 시도는 국가기간산업인 비철금속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이차전지 배터리 공급망의 원 소재 핵심 기업인 고려아연을 노린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인수합병) 시도"라며 "이로 인한 고려아연의 기업가치 훼손이 우려된다"고 반박했다.
고려아연 측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고려아연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MBK와 영풍의 경영권 인수 시도의 부당성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MBK와 영풍이 공개 매수하려는 고려아연 지분은 7~14.6%(144만536주~302만4881주)로 대금은 약 2조 원에 달한다.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66만 원으로 알려졌다. 공개매수 기간은 9월 13일~10월 4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