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0 00:20 (화)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32) '도박사 오류'와 양치기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32) '도박사 오류'와 양치기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24.09.0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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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한 늑대의 행동 보고 방심한 양치기의 실수처럼 과거 사례 얽매이면 실패
어떤사람이 같은 행동 수차례 반복하면 앞으로도 그렇게 행동 할 것이라 오인
도박사들은 검은색 구슬이 연속적으로 떨어지면 다음에는 붉은색이라고 착각

양치기가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늑대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깜작 놀란 양치기는 양 떼를 한자리에 불러 모은 뒤 늑대의 행동을 감시했습니다. 그러나 늑대는 단 한 마리뿐이었으며, 이상하게도 양 떼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양치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참 이상한 늑대로군. 하지만 언제 덤벼들지 모르니까 잘 감시하는 게 좋겠어."

날이 저물자 양치기는 양 떼를 몰고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늑대는 여전히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양치기는 양 떼를 끌고 들판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양치기는 또 다른 장소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늑대를 발견했습니다. 그 늑대는 양 떼에게 더 가까이 오거나 멀어지는 법도 없이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양 떼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양 떼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거나 사나운 눈빛을 던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양치기는 다른 풀밭으로 양 떼를 몰고 나갔지만 여전히 그 늑대는 양 떼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이제는 양들도 늑대에게 익숙해져서 늑대가 곁에 있든 없든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양치기도 마음을 놓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늑대는 날마다 양 떼의 주위를 어슬렁거렸지만 아무런 말썽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양 떼를 따라다닐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양치기는 사람 한 명 다니지 않는 외로운 들판에서 다정한 친구를 사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늑대를 양치기 개라도 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양치기에게 갑자기 마을로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날도 늑대는 평소처럼 양 떼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양치기는 이 광경을 보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고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양치기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늑대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늑대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양 떼에게 달려들어 몽땅 잡아먹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다시 풀밭으로 돌아온 양치기는 양 떼가 모두 사라지고 늑대 또한 모습을 감춘 사실을 알았습니다. 비로소 양치기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가슴을 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어떻게 늑대를 양 떼와 같이 둘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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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적으로 독립적인 사건은 과거의 결과와 무관하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복권 당첨률

양치기는 늑대가 양 떼 주위에서 어슬렁거릴 뿐 해치지 않는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자 그만 방심해 양들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같은 행동을 수차례 반복하면 앞으로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오인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런 행동이 나타나고 안 나타나고는 반반인데도 말입니다. 양치기의 예처럼 오랫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복권을 한두 번 사본 사람도 있지만 오랜 기간 꾸준히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복권 당첨 확률은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당첨 확률이 말도 안 되게 낮은 복권을 왜 사는 것일까요? 제1차 세계대전 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적군의 포탄이 한 번 떨어진 자리에는 다시 포탄이 떨어지지 않으니 그 지점으로 피하라고 병사들을 교육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쟁터에서 속설이 되어 많은 병사가 이를 강하게 믿는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는 실제로 전장에서 같은 자리에 포탄이 두 번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 관찰되면서 더욱 믿을 만한 사실로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대포 전문가들은 이를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포탄이 어떤 자리에든 떨어지면 그다음 포탄이 어디에 떨어지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잘못된 기대, 도박사의 오류

경제학자들은 복권과 포탄의 예를 '도박사의 오류'라고 부릅니다. 지금 이 순간 A와 B가 일어날 확률은 각각 동일하게 절반씩임에도 불구하고 그 A 혹은 B 중 어느 하나에 더 강한 느낌이 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건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이라 하더라도 상호 연관되어 있는 사건으로 묶어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도박사의 오류는 몬테카를로의 오류라고도 합니다. 1913년 모나코 몬테카를로 보자르 카지노에서 벌어진 룰렛 게임 중 검은 구슬이 20번이나 나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게이머들이 다음번에는 분명히 붉은색으로 구슬이 떨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 즉 도박사의 오류를 범하고 붉은색에 돈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26번째까지 연속적으로 검은색 구슬이 떨어지고 27번째 가서야 붉은색이 나왔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다음번 구슬은 붉은색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왜 오류일까요? 그것은 바로 구슬이 검은색이나 붉은색으로 떨어질 확률은 항상 50 대 50으로 똑같기 때문입니다. 도박사들은 구슬이 연속적으로 검은색이 떨어졌다는 사실에 다음에는 붉은색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기대하지만 사실 매 게임은 그전 게임과 관계없이 독립적이고, 확률이 변하지 않으므로 오류를 범하는 하는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당첨 확률이 낮은 복권을 계속 사면서 이번에 당첨되지 않았으니 다음에는 당첨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같은 오류입니다.

도박사의 오류가 빚은 착각들

도박사의 오류는 우리 일상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프로 야구경기인 메이저리그 심판들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다섯 시즌 동안 내린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 150만 건을 분석했습니다. 야구는 실제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할 때 스트라이크존을 지났는지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심판의 판정이 오심이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공의 실제 궤적과 관계없이 심판의 판정만 죽 나열해 살펴봤더니, 도박사의 오류가 나타났습니다. 심판들은 한 경기에서 바로 직전 공에 스트라이크 판정을 했을 경우 다음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지났음에도 스트라이크를 부를 확률이 0.9%포인트 낮았습니다. 앞선 공 두 개에 연속 스트라이크를 잡아줬을 경우 이 비율은 1.3%포인트로 더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러 판정이 명확한 경우를 제외하고 스트라이크, 볼 여부를 가르는 경우로 사례를 좁혔더니 직전 판정에 영향을 받는 성향은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숫자가 크지 않아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한 팀이 시즌을 치르는 동안 적어도 100번 넘게 오심 판정을 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잘 아는 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친척이 다섯 명의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지인이 "어쩌다 딸만 다섯을 낳았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답니다. "딸을 셋 낳으니 사람들이 '딸 셋을 잇달아 낳으면 다음 아이는 틀림없이 아들'이라고 하기에 낳았더니 또 딸이더라." 이 말에는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확률적 오류가 있습니다. 어느 경우에나 아들을 낳을 확률은 2분의 1입니다. 새로 태어날 아기는 그전에 언니들이 줄줄이 있었는지를 알지 못하죠.

따라서 잇달아 딸 넷을 낳았든 아들을 내리 넷을 낳았든 다음에 아들 또는 딸을 낳을 확률은 여전히 2분의 1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딸 넷을 잇달아 낳으면 다음에 아들을 낳을 확률이 2분의 1보다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도박사의 오류'가 빚은 착각이지요.

주식 투자자도 쉽게 도박사의 오류에 빠집니다. 증시에서는 많은 투자자가 통계자료를 무시하고 주식 매매에 뛰어듭니다. "주식이 며칠동안 계속해서 하락했으니 이쯤되면 반등할 거야", "이 종목은 상승했으니 비싸군", "이건 많이 하락해 싸게 보이네"라고 생각한다면 영락없이 도박사의 오류에 빠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비싸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100~200% 더 오르고, 싸다고 생각해서 매수했지만 반토막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가가 아무리 올랐다 해도 그다음에 떨어질 확률은 100%가 아니라 50%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투자자들은 하락에 과감히 베팅하고 더 떨어지면 자포자기 심정으로 인내하다 팔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투자자들이 주식 매매로 아까운 재산을 허공에 날려버리고 한숨 속에 세월을 보내는 과정이 이렇습니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라'는 증시 격언은 귀가 따갑게 들었지만 정작 실제 매매에 나서면 그런 격언은 뒤로한 채 시장 분위기에 휩쓸려 이성을 잃게 되는 것이 개인 투자자의 숙명입니다.

도박사의 오류와 같은 편향성은 인간 인지력의 한계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사실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피눈물 나게 손실을 본 뒤 매매 원칙을 세우고 또다시 반복하고 그렇게 진통을 겪고 나서야 이른바 고수가 되곤 합니다. 결국 뇌의 본능을 극복하려면 부단하게 자기 스스로를 수양하는 수밖에 없고 들이는 수업 비용이 클수록 극복하는 시간이 빨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매매를 하면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존재야"라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겁니다. 시장을 이길 생각은 아예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확률적으로 독립적인 사건은 과거의 결과와 무관하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 매수 주문을 내기 전 호흡을 가다듬고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의견에 휘둘리는 건 아닌지, 내 판단이 옳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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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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