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3:15 (토)
■8.3사채동결과 성장통㊥박정희 대통령의 대노
■8.3사채동결과 성장통㊥박정희 대통령의 대노
  • 양재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언론학 박사 · 경제저널리즘)
  • jouryang@hanmail.net
  • 승인 2019.08.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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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본 기업들 '기업 공개 통한 이익의 사회환원'약속 안 지켜
1974년 방계회사 정리와 토지팔도록 한 기업공개 특별조치
종업원지주제도 도입… '공개하면 회사 뺏긴다'오너들 꺼려

박정희 대통령은 고심 끝에 사채동결 쪽으로 결심했다. 1971년 9월 김용환 당시 청와대 외자관리비서관(나중에 재무부장관 역임)을 팀장으로 하는 실무팀이 구성됐다. 철통 보안 속에 서울 시내 호텔들을 오가며 1년 동안 비밀리에 준비 작업을 했다. 마침내 1972년 8월 2일 야간 통행금지를 20분 앞둔 밤 11시 40분, 청와대 임시국무회의에서 대통령 긴급명령 제15호로 의결 공포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초도순시때 수행중인 김용환 당시 청와대 비서관. 그는 훗날 재무부장관에 올라 굵직한 경제 정책을 폈다. (오른쪽, 2017년 5월7일 타계)/국가기록원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재무부의 브리핑을 듣기 위해 세종로 정부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오른쪽은 당시 김용환 재무부장관으로 그는 72년 8.3 사채동결 비밀작전의 팀장을 맡았다. 2017년 5월7일 타계한 그는 진정한 관료의 역할을 뭔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국기록원

긴급조치의 핵심 내용은 ▲기업과 사채권자의 모든 채권채무 관계는 1972년 8월 3일을 기준으로 무효화되며 ▲정부가 2000억원을 마련해 기업이 은행에서 빌린 단기고리 대출금의 일부를 연리 8% 장기저리 대출로 대체해준다는 것이었다.

채무자는 신고한 사채를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상환하되 이자율은 월 1.35%로 낮췄다. 당시 사채 평균이자가 월 3.84%(연 46%)였으므로 긴급조치에 따라 기업의 사채이자 부담이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경감됐다.

8월 9일까지 일주일 동안 신고 받은 사채는 예상보다 많은 3456억원. 당시 통화량의 80%에 해당하는 규모로 전경련이 예상했던 1800억원의 두 배에 이르렀다. 지하경제 규모를 가늠케 했다. 해당 기업들로선 엄청난 특혜였지만, 사채를 빌려준 입장에선 날벼락이었다.

어쨌든 8․3조치로 대기업 부실사태는 진정됐다.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1971년 394%에서 1972년 288.8%로 낮아졌다. 경제성장률은 1972년 6.5%에서 1973년 14.8%로 높아졌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칙은 크게 훼손됐지만, 그 비싼 대가로 기업들의 부도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시장경제 원칙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사채 동결을 통해 기업의 집단 도산을 막아준 당시 정부로선 혜택을 입은 기업들의 상응하는 조치를 기대했다. 기업들이 빚 부담을 덜어 위기를 넘기고 사업이 잘 되면 기업공개를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경련 명의로 주식공개를 통해 사회에 보답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채동결은 자금난에 허덕이던 기업에겐 단비였다. 부채비율이 떨어졌고 나라경제는 다시 활기를 띠어 성장률이 올라갔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의 사주는 자신의 회사에 돈놀이를 한 것이 드러나 사회비난이 일었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뜻에서 추진했던 기업의 공개는 지지부진해 박정희 대통령의 노여움을 샀다/이코노텔링 그래픽팀
사채동결은 자금난에 허덕이던 기업에겐 단비였다. 부채비율이 떨어졌고 나라경제는 다시 활기를 띠어 성장률이 올라갔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의 사주는 자신의 회사에 돈놀이를 한 것이 드러나 사회비난이 일었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뜻에서 추진했던 기업의 공개는 지지부진해 박정희 대통령의 노여움을 샀다/이코노텔링 그래픽팀

정부는 기업들이 증권시장 상장을 통해 자본 조달방법을 개선하길 기대했다. 기업이 투자하는데 집안 돈, 아니면 은행 대출, 그것도 어려우면 고리사채를 빌려 쓰는 관행을 버리고 증시에서 타인 자본을 조달토록 하자는 것이었다. 8․3조치 4개월 뒤 1972년 12월 30일 제정된 기업공개촉진법이 그것이다.8․3조치를 계기로 기업의 소유 및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동시에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공개하는 주식의 10%까지를 종업원들에게 우선 배정하는 우리사주 제도도 이때 도입됐다. 그러나 기업들은 증시 상장에 소극적이었다. 기업을 공개하면 소유권을 빼앗기는 것으로 여기는 오너들이 대다수였다. 1972년 기준 상장기업은 41개에 불과했다.

1977년 정부는 김용완 전경련 명예회장의 경제발전 공로를 인정해 훈장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 문서에는 당시 심홍선 총무처장관이 국무회의 의결 제출자로 쓰여있다/국가기록원
1977년 정부는 김용환 전경련 명예회장의 경제발전 공로를 인정해 훈장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 문서에는 당시 심홍선 총무처장관이 국무회의 의안 제출자로 쓰여있다/국가기록원
김용완 당시 전경련 회장은 기업의 연쇄도산이 우려된다면 사채에 대한 비상한 조치를 내려달라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는 '죽을 각오로 말씀을 드렸다
김용환 당시 전경련 회장은 기업의 연쇄도산이 우려된다면 사채에 대한 비상한 조치를 내려달라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는 '죽을 각오로 말씀을 드렸다"고 훗날 회고했다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8․3조치 이후 1년, 2년이 돼가는 데도 주식을 공개하는 기업들이 나타나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다. 김용환 재무부장관이 대통령 의중을 반영해 1974년 5월 ‘대통령 특별지시(5․29 조치)’를 통해 기업들의 주식공개를 강력하게 주문했다. 대기업들에게 비주류 방계회사를 정리하고,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분하고, 주식공개를 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결과적으로 8․3 사채동결 조치는 차관경제가 빚은 부실에 대한 박정희식 강제 처리 방식이었다.

외국자본을 들여와 공장을 지어 수출을 일으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적잖은 문제가 발생했다. 경제가 건전하게 발전 성장하려면 금융제도가 뒷받침해야 하는데 국내 자본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상태에서 실물과 금융이 마찰을 일으켰다. 8․3 긴급조치는 기업의 부도사태를 막고 어려운 경제여건을 타개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었지만, 개인 채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 극단적인 대기업 살리기 정책으로 시장경제 원칙을 위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 공권력이 개인 간의 사적 계약을 파기하고 수정한 강압적 조치였다. 또한 사채 이자 수입에 의존하던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사채를 많이 쓴 기업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고, 사채를 덜 쓴 건실한 기업에게 혜택이 덜 주어지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재계의 모럴 해저드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신고 사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137억원이 자기 기업에 사채놀이를 한 기업주의 돈(위장 사채)으로 드러나 당시 기업윤리를 여실히 드러냈다.게다가 초법적 수단을 동원해 기업에 특혜를 줌으로써 정권과 경제계간 유착(정경유착)의 단초가 마련됐다.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경영 합리화를 꾀하기보다 정권과의 관계 개선 및 유지에 신경을 쓰게 만드는 부작용을 잉태했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취약계층의 채무탕감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정부 조치는 생계가 어려운 계층의 빚 부담을 줄여줘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이지만, 혜택이 과하면 ‘돈을 빌려도 버티면 정부가 대신 갚아준다’는 그릇된 기대를 심어줄 수 있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채무 불이행자를 양산할 수 있다. 또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는 금융의 기본적 신뢰와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 따라서 신용회복제도는 법적 장치로 깐깐하게 정하고, 그 운영도 엄정해야 한다. 8․3 사채동결 조치의 부작용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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