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5:35 (토)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⑩ '나일론 스타킹'의 반격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⑩ '나일론 스타킹'의 반격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2.2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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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스타킹보다 가볍고 질기고 신축성 뛰어나 80여년전 여심 (女心) 잡아
나일론에 이어 폴리에스테르 등 개발, 인류 옷 대세 합성섬유로 바뀌어
합성섬유 옷 값싸고 편리하지만 인류 생명 위협하는 미세 플라스틱 주범 돼 문제
우리가 입고 쓰는 합성섬유 옷과 플라스틱 제품 쓰레기 줄이는 노력을

1940년 5월 15일 미국 뉴욕 시내 백화점들 앞에서 개장 몇 시간 전부터 여성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처음 나오는 '나일론 스타킹'을 사기 위해서였다.

백화점 문이 열리자 스타킹을 구입한 여성들은 집에 가기도 전에 길가에서 스타킹을 신어보며 호기심과 기쁨의 탄성을 토했다.

나일론 스타킹은 기존의 실크 스타킹보다 두 배나 비쌌지만 불티나게 팔렸다. 이날 미국 전역에서 팔린 나일론 스타킹은 약 500만 켤레. 최초로 나일론 스타킹을 만든 듀폰사는 시판 첫해 900만 달러, 이듬해 2500만 달러의 엄청난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실크보다 질기고 가볍고 신축성까지 뛰어난 나일론 스타킹이 순식간에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반드시 입어야 하는 옷들이 미세 플라스틱의 주범이 되고 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몇 년 전 어느 일간신문의 두 여기자가 '플라스틱 없는 3일'을 시도해봤다. 이들은 그 3일이 '고통의 시간'이었고, 불가능한 삶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플라스틱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플라스틱 시대'에 살고 있다. 나일론처럼 가늘고 길게 빼어내는 합성섬유는 물론 바가지, 그릇, 컴퓨터, 휴대폰, 반도체 소자, 자동차 내장재, 비행기를 비롯한 우주산업 제품에 이르기까지 온통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토록 화려하게 등장하여 포위하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바로 그 플라스틱이 마침내 우리의 목줄을 서서히 조여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바로 우리가 반드시 입어야 하는 옷들이 미세 플라스틱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일론에 이어 폴리에스테르, 폴리아크릴 등이 개발되면서 의류 세상도 플라스틱이 원료인 합성섬유로 서서히 바뀌었다. 합성섬유는 천연섬유보다 질기고 값싸고 세탁이 쉬운데다 구김도 가지 않는 등 관리까지 쉬우니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 딱 맞는다. 하늘이 내린 '기적의 섬유' 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다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한 철 입고 버려도 아깝지 않은 값싼 합성섬유의 옷들이 대거 쏟아져 나와 옷 쓰레기가 더욱 쌓이게 되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류 폐기물의 양은 2020년 8만2000t으로 2018년(6만6000t) 대비 2년 사이 24.2% 증가했다. 패션기업 공장에서 버려지는 폐섬유류까지 합치면 의류 폐기물은 연간 37만t에 이른다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전 세계적으로 2030년에는 버려지는 직물의 총량이 연간 1억 3,400만t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폐섬유류뿐만 아니라 세탁 폐수도 문제다. KBS가 합성섬유로 된 옷 1.5kg을 세탁하는 실험을 한 결과 세탁 폐수에서 미세 플라스틱 0.1346그램이 나왔다(2018년). 우리나라 평균 세탁량을 고려하면 1년에 1000t이 넘는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로 떠내려간다는 이야기다.

영국 엑시터대학과 플리머스해양연구소(PML)의 연구에 의하면 돌고래 등의 해양 포유류 50마리의 내장 모두에서 5㎜ 미만의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2019년). 이 중 84%가 옷이나 어망 등에서 검출되는 '합성섬유'이고, 나머지는 포장재와 플라스틱 병 등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니 충격적이다.

반영구적인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류나 태양열에 의해 부스러지면서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 이것들을 바다 생물들이 먹고, 그 생물이 다시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결국 이런 미세 플라스틱이 체내에서 특정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니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세계적으로 미세 플라스틱 발생을 줄이려는 노력이 다방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2019년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가 플라스틱을 분해한다는 사실을 확인해냈고, 다음해에는 페트병을 분해할 수 있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도 완전 분해되는 데 약 500년이나 걸리는 플라스틱에 반하여 30일 만에 분해되는 신소재 플라스틱을 개발했다고 한다(2020년).

하지만 이런 연구 성과물을 실용화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그 이전에 쏟아져 나온 쓰레기로 지구가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많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분리수거는 물론 지금 입고, 쓰고 있는 플라스틱 제품들을 오래 사용하여 쓰레기를 줄이도록 하자. 우리, 그리고 우리 뒤를 이을 후대를 위하여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기를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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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송명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40여년 동안 옷에 대해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친 의생활문화 전문가. 그 과정에서 '옷이 곧 사람이고 역사'라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글을 쓰는 '옷 칼럼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패션 인사이트>를 시작으로 <아시아경제신문> <농촌여성신문> <강남 라이프>(서울 강남구청 소식지)에 동서고금의 옷과 패션산업을 주제로 글을 연재했다.

또한 <기능복>(1998년, 공저)부터 <바느질하는 여인이 그립다>(2006년), <옷, 벗기고 보니>(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 선정), <옷은 사람이다>(2014년), <옷으로 세상 여행>(2018년) 등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오늘도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회의 모습과 시대적 가치'를 찾고자 고민한다.

서울대학교 농가정학과를 나와 이화여대에서 석사를,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일본 문화여자대학 연구교수, 영국 맨체스터대학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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