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문구의 이동재 회장,필기구 갈증을 사업으로 풀어…내년이 창업 50주년
영화 '친구'의 소품으로 쓰였을 법한 책 가방과 모자는 '학생이란 특권을 상징'
영화 ‘친구’는 2001년 개봉돼 공전의 히트를 쳤다. 1970년대를 무대로 삼아 친구들은 우정을 쌓아갔다. 그러나 점차 어른이 되면서 친구 사이에 틈이 벌어졌고 가는 길도 달라졌다. 특히 폭력조직을 이끄는 아버지를 보며 자란 준석(유오성 분)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동수(장동건 분)간의 ‘우정과 배신’은 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다.
고등학교 시절, 이들은 풀어 헤친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모자를 삐딱하게 썼다. 이런 모습을 본 중년 관객들은 ‘추억의 열차’를 타면서 영화에 빠졌들었다. 영락없는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믿었는지 모른다. 그 시절의 책가방은 물론 수십년전 학창 시절의 갖은 문구를 전시한 공간이 있다. 서울 숭례문쪽에서 남대문시장에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 있는 ‘알파아트문구 박물관’이다. 학창시절 '추억의 때'가 묻어있는 문구 집합소다.
어린이와 함께 박물관을 방문한 한 가족은 ‘아빠의 연필’과 ‘엄마의 크레용’을 보고 낯선 표정을 표정을 지었다. 요즘 문구에 비해선 디자인이 투박하지만 부모님의 애장품이었다는 설명을 듣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박물관의 신혜리 큐레이터는 “가끔씩 할아버지나 부모님손에 이끌러 온 ,청소년들이 세대간 공감을 이루고 가는 표정을 보면 문구라는 제품이 세대간 단절을 이어주는 매개체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이 문구박물관은 이동재 알파문구 창업 회장(71)이 만들었다. 틈틈이 모은 그의 소장품을 포함해 1000여점의 문구 제품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디.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 쯤 사용했을 법한 캐릭터 문구와 연필, 연필깍이 등은 관람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교실 한켠에 있었던 실로폰, 캐스터네츠 등 각종 학습보조기구도 눈길을 끈다. 이 회장은 학교를 다닐 때 변변한 문구를 갖지 못한 갈증을 사업을 통해 풀었다. 시골 출신인 그는 “친구들이 서울아이들이 쓰는 연필이나 지우개를 가져와 자랑하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고 한다. 이 회장은 회사를 일찍 그만두고 20대 초반에 남대문시장에 문구 좌판을 열어 문구 사업가의 길을 들어섰다. 지금은 가맹점만 700여곳을 거느린 연 매출 1500억원(올 추정치) 규모의 국내 제1의 문구유통업체로 키웠다. 박물관이 들어선 매장이 바로 ‘6평 크기’의 가게를 처음으로 연 곳이다. 내년에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이 박물관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연필과 붓을 활용한 예술가들도 힘을 보탰다. 세필(細筆)화가로 중앙일보에 작품을 연재했던 김영택 화백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남대문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재를 연필로 그려낸 그의 작품에는 ‘인내의 한계’가 스며있다. 권영진 모필장은 평소 사용하던 붓과 벼루 등을 기증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영화 친구의 소품으로 쓰였을 법한 책가방과 모자는 지극한 연세의 관람객들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1970~1980년대 학교 근처의 문구점 사진과 좁디좁은 문구 공장의 풍경, 신문과 잡지 등에 실린 ‘문구 광고’도 정겨워보인다. 모나미, 동아연필, 신한화구 같은 국내 회사는 물론 파버카스텔(Faber-Castell), 펜텔 같은 해외 유명회사들의 대표 제품도 있어 국내외 문구제품의 변화상도 살펴 볼수 있게 했다. 신 큐레이터는 "문구를 소재로한 각종 테마전시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문구의 다양한 세계를 펼쳐 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교보문고의 슬로건이 떠 올랐다. 문구역시 누구의 손에 의해 쓰여졌는냐에 따라 꿈과 희망의 크기도 분명 달라졌을거란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