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9 09:15 (월)
◇김수종의 취재여록 ㉛ 페트로 국가 베네수엘라 (1) 트럼프의 '석유 몬로주의'
◇김수종의 취재여록 ㉛ 페트로 국가 베네수엘라 (1) 트럼프의 '석유 몬로주의'
  • 이코노텔링 김수종 편집고문(전 한국일보 주필)
  • diamond1516@hanmail.net
  • 승인 2026.01.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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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에서 마두로 생포 과정 지켜본 트럼프의 기자 회견은 민주주의보다 석유에 비중
차베스 사후 권력을 승계한 니콜라스 마두로는'부정선거와 탄압'으로 권력유지 골몰
쿠바망명 이민자의 아들로 성장한 루비오,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에 극도로 적대적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석유 그 자체가 아니라,석유를 둘러싼 권력의 사용 방식서 비롯
베네수엘라는 단순한 산유국이 아니라 석유가 정치와 경제, 권력 구조를 지배하는 전형적인 페트로국가(petro-state)다. 

2026년 1월 3일 새벽, 세계는 경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육군 특수전 부대 델타포스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전격 투입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생포, 미국 뉴욕으로 압송한 것이다.

이튿날 마두로는 마약 밀수와 테러 연계 혐의로 미 연방법정에 섰다. 고대 제국 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 21세기 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대통령에 의해 이루어졌다.

마두로는 12년간 야당을 탄압하고 선거를 왜곡해온 독재자였다. 그의 체포를 통쾌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작전을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회복'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결정적인 단서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발언이다.

마두로 생포 과정을 플로리다 마이애미 별장에서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튀어나온 단어는 오직 하나, '석유(Oil)'였다. 기자회견 내내 이 단어는 스무 차례 넘게 등장했다.

그의 회견 요지는 두 마디로 요약된다. "안전하고 적절한 정권 이양이 이뤄질 때까지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 "미국 석유 회사들이 파괴된 석유 인프라를 복구하고 수익을 창출하게 할 것이다."

그가 마음속에 그린 그림의 중심에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석유가 있었다.

▪중국을 염두에 둔 신(新) 몬로주의

서방 언론들은 이 사태를 두고 '신 몬로주의의 출현'이라 평했다. 몬로주의는 1823년 제임스 몬로 대통령이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대륙 개입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한 외교 원칙이다. 이후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자국의 전략적 영향권으로 편입시켜 왔다.

19세기 몬로주의가 유럽 제국을 겨냥했다면, 트럼프의 신 몬로주의는 분명한 대상이 있다.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에 막대한 투자를 했고, 이 나라가 생산한 석유의 80%를 사들이며 마두로 정권의 생명줄을 붙잡아 줬다. 트럼프가 이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았다는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마두로 제거 작전은 베네수엘라 하나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남미는 미국의 관할권"이라는 메시지를 중국과 남미 좌파 정권 전체에 동시에 던진 신호였다.

▪ 미국 석유질서의 내부에 있던 나라

베네수엘라는 처음부터 반미 국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나라는 미국 석유 질서의 가장 깊숙한 내부에 있었던 나라다. 20세기 초 엑손모빌과 쉐브론 등 미국 메이저 석유기업들은 유전 개발부터 생산, 정유, 수출에 이르기까지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의 토대를 구축했다.

베네수엘라 원유는 황 함량이 높은 중질유다. 정제가 까다롭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멕시코만 연안의 미국 정유단지는 고도화된 탈황·코킹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값싼 베네수엘라 원유는 미국 정유기술을 거쳐 휘발유와 항공유, 디젤, 아스팔트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재탄생했다. 베네수엘라 석유는 이렇게 미국 석유산업 체제 안으로 편입돼 있었다.

이 질서를 정면으로 뒤엎은 인물이 1999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다. 그는 미국 메이저 석유회사의 지분을 축소하고 국유화를 단행했다. 그 결과 투자는 끊겼고, 산유량은 급감했다. 하루 350만 배럴을 넘기던 생산량은 현재 100만 배럴 안팎으로 추락했다.

▪페트로국가의 몰락, 그리고 다시 미국의 손에

베네수엘라는 단순한 산유국이 아니다. 석유가 정치와 경제, 권력 구조를 지배하는 전형적인 페트로국가(petro-state)다. 현재 생산량은 줄었지만, 확인된 매장량은 약 3,030억 배럴로 세계 총 매장량의 17%에 이른다.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고, 미국의 네 배에 가깝다.

차베스 사후 권력을 승계한 니콜라스 마두로는 카리스마도, 대중적 지지도 없었다. 그는 부정선거와 탄압으로 권력을 유지했고, 붕괴하는 석유산업은 역설적으로 군부와 기득권을 결속시키는 연료가 됐다. 석유가 국가를 망가뜨리는 동시에 정권을 지탱하는 아이러니가 완성된 것이다.

마두로의 제거로 베네수엘라는 해방을 맞은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외부 권력의 관리 체제로 진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한 표현은 '해방'이나 '민주화'같은 개념이 아니었다. 그는 "안전하고 질서 있는 정권 이양이 이뤄질 때까지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이 한 문장 속에는 임시 신탁통치에 가까운 발상이 담겨 있다.

▪루비오 장관의 역할에 관심집중

워싱턴의 구상은 비교적 명확하다. 마두로를 제거하되, 기존 국가기구는 해체하지 않는다. 군부와 관료 체계를 급격히 흔들 경우 석유 인프라 복구는 물론 치안 유지조차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구상의 실무 책임자로 지목된 인물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다. 쿠바 망명 이민자의 아들로 성장한 루비오는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에 극도로 적대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부터 "베네수엘라는 민주화 이전에 국가 기능부터 복원해야 할 붕괴 국가"라고 주장해왔다.

트럼프 정부 내부에서는 베네수엘라 문제를 다루는 소수 정예 그룹이 이미 수개월 전부터 가동돼 왔다고 미국 언론은 전한다. 대통령과 부통령, 국방장관, CIA 국장, 합참의장, 국무장관으로 구성된 이 그룹에서 루비오 국무장관는 '마두로 생포 작전'을 가장 강하게 밀어붙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 그를 두고 '베네수엘라 총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베네수엘라 내부의 권력 지형이다. 마두로 제거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여성 부통령 델시 로드리게스는 차베스 혁명의 핵심 인물로, 이념적으로는 여전히 강경 좌파에 속한다. 그는 처음에는 미국의 개입을 강하게 비난하며 마두로 석방을 요구했지만, 트럼프의 공개 경고 이후 한발 물러섰다. 현실적으로 군부와 국영 석유기업(PDVSA)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여전히 차베스 계열이다.

한편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은 야당 지도자 마리아 마차도는 미국의 전폭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그녀가 대중적 상징성은 갖고 있지만, 군부를 통제할 능력도, 붕괴된 국가를 운영할 행정적 기반도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루비오는 2024년 상원의원 시절 동료 의원들과 함께 마차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고, 그녀의 신변 보호를 공개적으로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존중'과 '권력 위임'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 워싱턴의 판단이다.

▪베네수엘라 미래가 걸린 3개의 축

이렇게 베네수엘라 정국은 세 개의 축으로 재편되고 있다.

좌파 잔존 권력인 로드리게스 체제, 민주화 상징이지만 권력 밖에 있는 마차도, 그리고 그 위에서 노골적으로 조율에 나선 미국. 베네수엘라는 다시 한 번 자국 정치의 주도권을 외부에 내준 상태에서 미래를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석유산업의 회복 역시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가 차베스 집권 이전 수준의 산유량을 회복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에 걸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석유 투자는 정치적 안정과 계약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국유화의 기억을 가진 미국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선뜻 베네수엘라로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지금의 베네수엘라는 석유가 많아서가 아니라, 석유를 믿을 수 없게 만들어버린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반전이 남아 있다. 베네수엘라는 처음부터 실패한 페트로국가가 아니었다. 한때 이 나라는 석유와 민주주의가 공존하던 드문 사례였다. 제도가 작동했고, 선거가 의미를 가졌으며, 석유 수익은 중산층 형성과 사회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졌다. '남미의 스위스'라는 별명은 과장이 아니었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석유 그 자체가 아니라, 석유를 둘러싼 권력의 사용 방식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그 분기점에는 차베스의 출현이 있었다. 이 나라의 몰락을 이해하려면, 실패의 순간보다 먼저 성공의 시절을 되돌아 봐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석유가 아직 저주가 아니었던 시대, 미국 석유 질서 속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했던 베네수엘라의 전성기를 따라가 본다. 그 기억 속에야말로, 오늘의 베네수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실마리가 숨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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