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2:40 (토)
[김성희의 역사갈피] 김밥의 역사
[김성희의 역사갈피] 김밥의 역사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1.2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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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식은 1922년 히로시마현 해태 업자들에 의해 전남 당진에서 시험적으로 시작
일본 음식인 노리마키스시(海苔卷壽司)를 닮은 김밥이 나와 간편한별미로 대중화
1964년 한일 수교로 수산물 수출제한이 풀려 국내산 대부분의 김이 일본으로 수출
집에서 김밥 싸기 힘들어져…60년대 소풍날 '김밥과 사이다'로 어깨 으쓱한 친구들
김 양식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히로시마현 해태업자들에 의해 전남 당진에서 시험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일본 음식 노리마키스시(海苔卷壽司)를 닮은 김밥이 알려졌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런저런 의미가 있지만, 설은 입이 즐거운 날이기도 하다. 차리는 이들이야 힘들겠지만 평소 맛보기 힘든 별미들이 풍성하게 차려지니 말이다. 해서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란 부제가 붙은 『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를 뒤적이다가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음식에서 비롯된 김밥'이란 소제목의 글이다.

책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도 김을 먹긴 했던 모양이다. 일찍이 정약용의 『경세유표』나 조선 최초의 맛 기행 책인 허균의 『도문대작』 등에 해태(海苔), 감태(甘苔)라 해서 산지별로 언급한 기록이 있단다.

특기할 것은 사람들이 김을 '짐'이라 불렀는데 이는 천자가 자신을 일컫는 '짐(朕)'과 음이 같아 정약용은 태 종류 중 자태의 방언으로 '진(眹)'이라 적었다고 한다. 아무튼 조선 사람들은 이것을 종이처럼 만들어 기름과 소금으로 구워 밥반찬으로 먹거나 밥에 부숴놓고 비빔밥을 해먹기도 했는데 이때의 김은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었다.

김 양식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히로시마현 해태업자들에 의해 전남 당진에서 시험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일본 음식 노리마키스시(海苔卷壽司)를 닮은 김밥이 알려졌던 모양이다. 간편한 별미로 김밥이 대중화하면서 1930년 3월 7일 자 동아일보 '부인이 알아둘 봄철 료리법'이란 기사에 등장할 정도에 이르렀다.

당시 경성 동덕여고보의 교사였던 송금선은 이 글에서 창경원에 꽃구경 갈 때 준비할 도시락으로 각종 '샌도위취'와 함께 '김쌈밥'을 소개했다. 노리마키스시에는 두꺼운 일본 김인 '아사구사노리'를 써야 하지만 없으면 조선 김을 두 장 겹쳐서 쓰면 된다는 설명도 함께였다. 일본에서 조리학을 배운 방신영이란 이가 쓴 『조선요리제법』에는 김을 이용한 '산식기마끼다망고'란 일본 음식이 나오는 데 이는 우리말로 하면 '삼색 계란김밥'이란 뜻으로 계란의 노른자와 흰자, 그리고 김이 들어가 만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김밥의 재료가 되는 김이 해방 이후 중요한 대일 수출품으로 '귀한 몸' 대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자기네 해태양식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시로 한국 김의 수입을 제한하곤 했는데 1964년 한일 정식 수교 분위기가 무르익자 김을 비롯한 몇몇 수산물의 제한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국내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김이 일본으로 수출되는 바람에 어지간한 집에선 아이들 소풍 때나 맛보던 김밥을 싸주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60년대 '국민학교'를 다닌 이들은 소풍날 김밥과 사이다만으로 어깨를 으쓱하곤 했던 친구들 모습을 기억하리라. 웬만한 상가에는 김밥전문점이 들어서 있는 요즘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지만 그땐 그랬다. 라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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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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