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8:25 (목)
[손장환의 스포츠 史說]벤투 감독의 냉가슴
[손장환의 스포츠 史說]벤투 감독의 냉가슴
  •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 inheri2012@gmail.com
  • 승인 2022.11.29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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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드업의 주축인 손흥민과 황희찬 부상,황의조 부진으로 벤투의 색깔 실종
조규성, 이강인 활약 마냥 반길 수 없어…엎질러진 물 마무리 잘하길 빌 뿐
파울루 벤투 감독은 대한축구협회가 카타르 월드컵까지 4년이라는 임기를 보장해 줬을 때 그는 그동안 한국대표팀에 확실하게 자기 색깔을 입히려고 했다. 사진=KFA/이코노텔링그래픽팀.

아직 카타르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다. 가나에 2-3으로 져 1무 1패가 된 한국은 포르투갈과의 마지막 대결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잡고, 일본이 독일을 잡았듯 포르투갈을 이기지 못할 이유도 없다. 2002년 같이. 그래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파울루 벤투 감독에 대한 평가도 월드컵을 다 끝낸 다음에 해야 옳다. 다만 벤투 감독이 참 '운이 없는 감독'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벤투 감독은 자기 철학이 강하고, 고집도 센 편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카타르 월드컵까지 4년이라는 임기를 보장해 줬을 때 그는 그동안 한국대표팀에 확실하게 자기 색깔을 입히려고 했다. 그게 '빌드업'을 통한 탄탄한 조직력이었다.

아시아 예선이나 평가전을 치를 때 "상대에 따라 전술을 달리 써야 한다"라는 주위의 조언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왜 우리가 잘하는 걸 버리고, 상대에 따라 바꿔야 하느냐"는 주장이었다. 선수들도 거의 바꾸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축구, 조직력을 극대화하려면 선수를 자주 바꾸는 건 좋지 않다. 그래서 이강인(21·레알 마요르카)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 본선이 시작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먼저 팀의 주축인 손흥민(30·토트넘)이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크게 다쳤다. 눈 주위 뼈가 부러져 수술을 받았다. 손흥민은 벤투 전술의 핵이다. 그가 없는 상태에서는 플랜 B도 소용없다. 아니, 손흥민 없는 플랜 B는 사실 없었다. 다행히 빠른 회복과 강한 의지로 첫 경기부터 선발로 뛰었으나 역시 벤투가 원하던 플레이는 나오지 않았다.

왼쪽 사이드를 빠르게 돌파해줘야 할 황희찬(26·울버햄튼)도 종아리 부상으로 1, 2차전 모두 뛰지 못했다. 원톱 스트라이커로 득점을 해줘야 할 황의조(30·올림피아코스)는 소속 팀에서도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슬럼프에 빠졌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다. 빌드업이라는 전술도 결국 골을 넣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데 골을 넣어야 할 주축 공격수 세 명이 모두 고장이다. 장기로 치면 차, 포에 마까지 잃어버렸다. 4년을 고집해온 조직력과 전술이 한꺼번에 무너졌으니 어떤 감독이라도 손을 들 수밖에 없다.

벤투 감독을 더 궁지에 몰아넣은 일이 생겼다. 궁여지책으로 내세운 조규성(24·전북 현대)과 이강인이 맹활약을 펼친 것이다. 벤투 감독이 자기 고집을 꺾고 유연해졌다고 좋아한 사람들도 있으나 이건 아니다. 조규성과 이강인이 벤투의 '플랜 B'가 아니었으니까.

방송 해설위원인 안정환도 "벤투는 아마 이강인을 쓰지 않을 거다. 아무리 잘해도 자기 스타일이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발을 맞추지 않았던 이강인이 후반 교체 선수로 들어가자마자 팀 분위기가 살아났으니 벤투의 4년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두 경기에서 한국이 얻은 2득점이 모두 조규성의 머리에서 나왔으니 이것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왕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다. 잘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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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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