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8 23:47 (월)
강태선회장 '블랙야크25년 동행'…등산의류 세계등정
강태선회장 '블랙야크25년 동행'…등산의류 세계등정
  • 고윤희 이코노텔링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19.07.01 1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코노텔링 창간 1주년 특별취재/세계적 등산의류 브랜드 블랙야크)

히말라야서 안질에 걸린 야크(Yak) 치료 인연… 실의에 빠졌던 강 회장에게 브랜드 작명 영감
유럽시장 공략 7년만에 올 'ISPO어워드' 5개 휩쓸어… "세계1등 고지의 8부능선까진 올랐다"
블랙야크는 산악인(등산인) 들이 디자인하는 의류임을 표방하고 있다. 그만큼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실제로 산악인 강태선 회장이 히말라야에서 만난 블랙야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브랜드다.

‘야크(Yak)의 보은(報恩)인가.’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70)은 1993년 히말라야 등반에 나섰다. 엄홍길 대장과 함께 떠난 산행이었다. 그 때 가파른 산길을 힘차게 걷는 블랙야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가. 좀 더 가까이 다가서 보니 안질에 걸린 듯했다. 급한 대로 배낭을 뒤져 연고를 꺼냈다. 약을 건네 받은 목동이 야크의 눈물을 딱고 연고를 발라줬다. 그러자 야크는 고맙다는 인사인지 고개를 한 번 휙 돌리고 나서 뛰쳐 나갔다.

그 때 강 회장은 무릎을 쳤다. “그래, 우리 회사의 새 브랜드는 블랙야크로 한다.” 사실 그 산행길 내내 강 회장은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1992년 국립공원, 산에서의 야영과 취사를 금지하는 법이 통과돼 주력제품인 등산용품 판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매출의 90%를 차지하던 물품이 재고로 쌓였다.

누가 봐도 앞길이 꽉 막힌 회사였다. 의류 쪽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하지만 등산의류는 당시 전문산악인이나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강해 의류 시장 진출은 히말라야 등반길 만큼이나 멀어 보였다.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은 세계 산악의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시장 공략에 최근 팔을 걷었다. 7년째 유럽시장에 공을 들였고 올해 열린 세계 최대 아웃도어 스포츠의류 박람회인 ISPO에서 5개의 상을 휩쓰는 개가를 올렸다.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은 세계 산악의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시장 공략에 승부수를 던졌다. 7년째 유럽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고그런 노력에 힘입어 올해 열린 세계 최대 아웃도어 스포츠의류 박람회인 ISPO에서 5개의 상을 휩쓰는 개가를 올렸다/블랙야크 제공

  어려운 결정을 할 때 마다 산행에 나서는 강 회장은 그 때 굳은  마음을 먹었다. 등산관련 사업을 포기하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정면승부를 해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등산 의류 시장의 진출이란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의류 브랜드명을 ‘블랙야크’로 마음먹고 귀국길에 올랐다. 야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엄홍길 대장도 맞장구를 쳤다. 기내에서 “형님, 느낌이 좋은 데요. ”

강 회장은 “한번 히말라야 산행을 하면 몸 무게가 약 12kg가 빠져요. 보통 두 달 정도 머무는데 일반인들은 베이스캠프에서 며칠 견디기가 쉽지 않죠. 그런 고통을 이겨내면 정신이 맑아져요. 큰 결정을 내릴 때 산행을 하는 이유입니다. 또 몸도 가벼워지니 이만한 다이어트가 따로 없어요. 하하.” 그렇게 탄생한 ‘블랙야크’는 이젠 회사이름으로 거듭났다. 세계적 등산 의류 브랜드의 하나가 됐다. 브랜드명은 결정됐지만 디자인이 문제였다. 국내외의 자료를 샅샅이 뒤졌지만 브랜드 디자인에 영감을 줄 만한 자료가 부실했다. 그렇다고 큰 돈을 들여 외부 광고업체에 맡길 형편도 못됐다. 디자인팀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사내 ‘산악 전문가’들도 가세했다.

강태선 회장이 올 4월 히말리야 쓰레가 정화캠페인을 펼치러 네팔에 갔을때 만난 블랙야크를 촬영했다. 과연 얼굴에 흰털이 있거나 몸총주변에 난 하얀털이 보인다. 강 회장은 새벽에 일어나 야영지에서 본 산봉우리는 '황금산'이었다고 한다/ 강탸선 블랙야크 회장 촬영
강태선 회장은 올 4월 히말리야 쓰레기 정화캠페인을 하러 네팔에 갔다. 그때 만난 블랙야크를 근접 촬영했다. 과연 얼굴에 흰털이 있거나 몸통주변에 난 하얀털도 보인다. 강 회장은 새벽에 일어나 야영지에서 본 산봉우리는 '황금산'이었다고 한다/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촬영

“야크를 가만히 지켜 보면 검은 털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온 몸이 하얀 야크도 있어요. 점박이도 있고요. 처음엔 하얀 점을 브랜드에 넣어 디자인했어요. 그런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시행착오를 거듭했죠. 결국 블랙야크의 얼굴을 형상화하면서 얼굴의 반반을 흑백으로 나눠 디자인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고 지금의 브랜드가 만들어졌어요.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그래서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블랙야크 브랜드디자인은 블랙야크 사내 디자인팀이 독자적으로 일군 개가였던 셈이다. 블랙야크는 누가 뭐래도 ‘세계 일류 브랜드 꿈’을 꾸는 곳이다. 세계 등산 의류를 쥐락펴락하는 유럽시장의 '빙벽'을 공략 중이다. 이미 베이스캠프는 쳐졌고 정상 정복팀 역시 꾸려졌다. 2012년 세계 스포츠 아웃도어 박람회인 독일 뮌헨 ISPO에 첫 선을 보인이래 '알프스'의 가파른 산을 넘어서고 있다. 1년만에 ‘올해의 아시아 제품상’ 수상을 기점으로 올해는 ‘ISPO어워드 5관왕’을 차지했다. 지금까지 모두 24개의 상을 받아 단일브랜드론 최다 수상기록을 세웠다.

소재와 디자인에서 블랙야크는 유럽에서 ‘혁신제품’으로 꼽힌다. 유럽의 주요 백화점 등 200여개의 매장에 ‘블랙야크’는 이미 둥지를 텄다. 현지 백화점들이 돈을 먼저 내고 제품을 사간다. 올해 1천만달러 어치가 유럽으로 갈 예정이다.

 “유럽시장의 8부 능선에 올랐이요. 남은 2부능선 공략에서 승부가 나겠죠. 정상 정복에는 험난한 코스가 아마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정상에 서지 않으면 2류나 3류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죠. 비박(Bivouac · 날씨가 나쁘거나 더이상의 산행이 불가능할 때 급조한 야영지서 밤을 지새는 일)을 숱하게 해야 할 것같고 그럴 각오가 돼 있다."

1970년대 블랙야크의 전신인 '동진레저'는 남대문에서 손 꼽히는 산악용품 매장이었다.
1970년대 블랙야크의 전신인 '동진레저'는 남대문 시장 한복판에 손 꼽히는 산악용품 매장을 갖고 있었다/블랙야크 제공.

 이렇게 말하는 강 회장은 창업 46년간 숱한 고비를 넘었다. 1973년 서울 종로5가에 등산용품 가게인 ‘동진’이란 간판을 내건 이래 여러 크레바스(crevasse·빙하의 갈라진 틈)를 건너야 했다. 간판을 동신산악-동진레저 등으로 바꿔 달며 ‘자이언트’, ‘프로 자이언트트’란 브랜드를 앞세워 등산용품 사업의 기반을 닦았지만 부침이 적지 않았다. 첫 위기는 5공 군사정권 때다. 사회분위기가 얼어붙자 산행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 이어 내려진 ‘야영금지’조치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일부 대기업들 마저 두 손을 들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IMF 외환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금회전이 되지 않아 자금을 돌려 막는게 하루가 일과가 됐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IMF외환위기가 전화위복이 됐다.

실직한 가장들이 넥타이 차림으로 산행에 나서면서 산악의류 판매에 햇볕이 들었다. 가장의 기를 살린다면 집마다 등산복을 샀다. 생산만 하면 팔렸다. 또 2000년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자 동진레저는 사세확장의 전기를 마련했다.

강 회장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어요. 산행이 그렇듯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어려워도 등산관련 사업과 거리를 두지 않고 한 눈을 팔지 않은 게 오늘날 블랙야크를 만든 것 같아요.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안돼요. 블랙야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한발 앞서 간파하는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블랙야크가 2015년 미국의 대표적 아웃도어 브랜드인 나우(nau)를 인수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친환경 소재의 아웃도어 제품이 두각을 나타낼 거란 시장의 흐름을 앞서 꿰뚫었다. 강 회장은 “글로벌 아웃도어 업체로 거듭나기위해선 일류 브랜드를 때론 사는 것이 더 빠를수 있다”며 “유럽진출에 이어 나우의 인수는 블랙야크가 또 다른 고봉을 넘어서는 전초기지가 될 것:‘아러고 말했다.

 ‘나우’는 인수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점차 경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북미시장의 특성에 맞는 제품 차별화가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이에 힘입어 블랙야크의 북미시장 진출의 교두보도 마련됐기 때문이다. “내가 원정대 대장을 맡거나 지원해 내로라하는 세계의 높은 산을 우리 산악인들이 다 올랐어요. 저는 아웃 도어 의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야죠. ”

올해 블랙야크가 글로벌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비전 선포식을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한다. '당신의 삶속에 베이스캠프'(Basecamp in your life)란 새 CI에는 '도전과 존중,나눔' 등 블랙야크가 지향하는 비즈니스 가치가 담겨져 있다.   

고교시절부터 산행에 매료됐던 강태선 회장은 지금까지 59엋례의 히말라야 원정대를 지원했고 때론 자신이 대장을 맡아 현지 산행을 했다. /블랙야크 제공
고교시절부터 산행에 매료됐던 강태선 회장은 지금까지 50여 차례의 히말라야 원정대를 지원했고 때론 자신이 직업 대장을 맡아 현지 산행을 진두진휘 했다 /블랙야크 제공

 강 회장은 1979년 엄홍길 대장과 거봉산악회를 만든 이래 지금까지 50여회의 해외 원정대를 지원했다. 한 번에 수 억원씩 자금지원을 했고 엄 대장을 비롯해 오은선 여류 산악인,김미곤 대장 등 국내 대표적 산악인들의 등정과 함께했다. 또 자신이 세운 블랙야크강태선나눔재단을 통해 ▲네팔 학교 건립및 히말라야 쓰레기수거 정화활동▲ 중국 쿠부치 사막 나무심기 운동을 펼치고 있고▲국내에선  백두대간 ‘클린 마운틴 365’캠페인 등에 앞장서고 있다. 강회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체육훈장 백마장(2004년)과 국민훈장 모란장(2012년)을 각각 받았다.

 강 회장은 26년전에 만났던 그 블랙야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히말라야에서 야크를 만나기만 하면 셔터를 누른다.<위 왼쪽 사진> "저의 머리속에 있는 그 블랙야크는 우리 브랜드안에 살아 있어요. 그 녀석의 눈 병은 나았을까요." 강 회장의 ‘비즈니스 산행’엔 언제나 히말라야의 검은 소 ‘블랙야크’가 동행중이다.

ISPO=The Internatio nale Fachmesse für Sportartikel und Sportmode의 약자로 독일식 표현이다. 흔히 아웃도어 스포츠의류의 세계 최대박람회로 불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