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2:40 (토)
[김성희의 역사갈피] 정치우화 '동물농장'의 롱런
[김성희의 역사갈피] 정치우화 '동물농장'의 롱런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11.1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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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내전 참전한 조지 오웰이 통일노동자당 당원들이 공산주의자에게 죽자 전장 이탈해
인간이 이데올로기를 수단으로 다른 인간을 억압하는 메커니즘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묘사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인간이 이데올로기를 수단으로 다른 인간을 억압하는 메커니즘을 냉정하고도 정확하게 묘사한 정치우화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60~70년대 '국민학교'를 다녔던 이들은 '도덕'책에 실렸던, 동물이 등장하는 반공 우화를 기억할 터다. 그때는 그저 재미있게 읽었던 그 우화들의 원조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이다.

오웰은 트로츠키 성향인 마르크스주의자 통일노동자당에 들어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프랑코 반군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일선에서 싸우는 통일노동자당원들이 모스크바를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쫓기며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장을 이탈했다.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이데올로기를 수단으로 다른 인간을 억압하는 메커니즘을 냉정하고도 정확하게 묘사한 정치우화가 『동물농장』이다.

농장의 동물들이 단결해 술주정뱅이 농부와 그의 아내를 내쫓고 '동물들의 농장'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소설은 러시아혁명을 비판한 것으로 읽힌다. "두 발 달린 것은 모두 적이다" "네 발이나 날개가 있는 것은 모두 동지다"라며 혁명의 사상적 지도자 돼지 올드 메이저(마르크스), 혁명 과정에서 권력투쟁을 벌이는 돼지 나폴레옹(스탈린)과 돼지 스노우볼(트로츠키) 등 주역들의 면면부터가 그러하다.

그렇게 '주인'이 된 동물들이 처음 만든 헌법에는 그 유명한 문장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란 구절이 들어간다. 하지만 돼지들이 혁명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한 후 이 문제의 구절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라고 바뀐다. 끝에 가서는 돼지가 인간과 축배를 드는 모습이 나오며 농장의 일반 동물들에게는 결국 '실패한 혁명'으로 각인된다. 인간이나 돼지나 권력을 쥐게 되면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풍자한다.

한데 오웰은 이 소설을 한동안 출간하지 못했다. 1943년 탈고했으나 이를 출간하겠다는 출판사가 없었다. 겨우 한 곳이 출간 의사를 밝혔으나 영국 정보부가 개입한 결과 이마저도 무산돼 1945년이 되어서야 겨우 출판할 수 있었다. 영국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인 소련의 비위를 건드리고 싶지 않은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작품은 당연히 공산진영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으니 동구권 국가에서는 80년대 말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금서목록에 들어 있었다. 동독에서는 『동물농장』을 비롯해 오웰의 대표작인 『1984년』을 읽으면 감옥행이었다. 이렇게 양쪽 모두에서 권력의 냉대를 받은 작품은 드물 것이다.

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명언들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낸 『단 한 줄의 역사』(헬게 헤세 지음, 열음사)에 실린 내용 중 일부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동서 양 진영에서 핍박받던 이 작품의 의의도 사라질 법하지만 『동물농장』은 의연히 살아남았다. 공산주의 비판에 그친 게 아니라 차별적 지위를 누리는 특권층의 욕망과 추악한 수단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마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자칭 특권층이 존재하는 한 오웰의 작품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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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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