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공장서 일하다 공산당 입당 후 얼마 안 가 차우셰스쿠 만나 결혼
학위 욕심 많아 해외 순방 때마다 명예학위 욕심냈지만 미국서 퇴짜
허영심 학위에 그치지 않고 부통령에 오르는 등 ' 정치 야심 '도 대단
엘레나 차우셰스쿠란 여성이 있다. 맞다. 1989년 동유럽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권좌에서 떨려난 후 처형된 루마니아 대통령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부인이다. 1980~89년 부통령을 지내기도 한 이 '영부인'-이는 남의 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대통령 부인이란 뜻이 아니다-은 참으로 희한한 인물이었다.
열네 살 때 수예와 노래, 체조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에서 낙제한 탓에 초등학교를 중퇴한 엘레나는 오빠가 다니던 한 제약회사에서 일하며 자신이 화학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섬유공장에서 일하다가 1937년 공산당에 입당하고 얼마 안 가 니콜라에를 만나 결혼한다.
화학 야간반을 수강하던 중 시험 때 부정행위가 발각되어 쫓겨나는 등 암울한 생활을 하던 엘레나는 남편이 권력의 정상에 오르면서 운명이 눈부시게 바뀐다. 1960년 대학 교육을 받지 않고도 박사학위를 받고, 65년엔 루마니아 화학연구소의 소장이 된다. 루마니아 언론은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여성 화학자"로 칭송하기 바빴고 다른 학자들이 쓴 여러 논문이 엘레나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엘레나의 이름을 맨 앞에 싣지 않고서는 루마니아 화학자 누구도 논문을 발표할 수 없었던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엘레나는 남편과 외국에 갈 때마다 여러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기를 써 루마니아 정보부는 방문국의 유명 연구소와 협상해 명예 학위를 받도록 사전교섭하는 중책(?)을 수행해야 했다. 그 결과 75년 테헤란대학교와 암만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필리핀 방문 시에는 기부금을 내는 조건으로 마닐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공작이 매번 성공한 것은 아니었으니 영국을 방문했을 때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명예학위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각 대학이 엘레나의 학술 업적을 인정해 학위를 주는 것을 거부해 일리노이주 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영국의 센트럴 런던 폴리테크닉과 왕립화학회 같은 곳은 "선천적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관대하게도 명예 학위를 주기도 했다.
자신이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음에도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지 않는 데 불만을 가졌던 엘레나의 허영심은 학문 분야에만 그치지 않았다. 1977년 당 최고 지도위원이 되고, 1980년 3월 남편에 의해 부통령에 임명되었을 만큼 정치적 야심도 만만치 않았다.
이는 노르웨이 정치평론가가 세계 각국의 독재자를 패러디한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법?』(미칼 헴 지음, 에쎄) 중 '가까운 사람과 나눠 가지는 법'에 실린 이야기다. 이 책은 최소한의 효용이 있으니 역대 독재자들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읽다 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우리정치는 그나마 나은 편'이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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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