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9 17:16 (화)
◇新남방정책과 華商역사⑤終戰과 화교재벌 등장
◇新남방정책과 華商역사⑤終戰과 화교재벌 등장
  • 홍원선 이코노텔링 대기자(중국사회과학원박사ㆍ중국민족학)
  • wshong2003@hotmail.com
  • 승인 2019.10.14 12: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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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후 동남아 '민족정부' 들어서면서 한 때 화교의 지위 추락
토착민 경제우대 정책 시행으로 활동공간 위축 돼 일부는 동남아 이탈
공업화 과정서 '화교 자본' 역할론 대두돼 일부는 '그룹규모'성장 발판

제2차 세계대전은 세계사적인 대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동남아 화교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엄청난 충격을 줬다. 종전이 되자 태국을 제외한 동남아의 국가들이 서구 식민세력의 통치에서 벗어나 속속 독립했다. 이에 따라 동남아 각국의 정치사회구조가 극적으로 달라졌다. 

 지배계층의 서열이 바뀌었다. 예전엔  정점에 서구 식민세력이 자리잡았고, 바닥에는 현지의 토착민이, 중간단계에 화교가 위치해 있었다면 화교보다 아래 집단으로 인식되었던 토착민이 새로운 정치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들이 사회 상층부로 올라서면서 화교는 그 아래로 지위가 떨어졌다.

華商(화상)들은 2차세계대전이후 식민지 동남아국가들이 잇달아 독립하면서 존립 근간을 잃기도 했다. 나라마다 민족정권이 들어서고 자국민들과 다른 차별 정책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 정부 관료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시업전선을 넓혔고 이제는 글로벌 재벌이 여럿 탄생했다. 벤츠코리아도 화상 재벌이 지분의 절반 가량을 갖고 있다.사진(벤츠코리아의 서울 강남 전시장판매장)= 벤츠코리아.
華商(화상)들은 2차세계대전이후 식민지 동남아국가들이 잇달아 독립하면서 존립 근간을 잃기도 했다. 나라마다 민족정권이 들어서자 자국민들과 다른 차별 정책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 정부 관료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시업전선을 넓혔고 이제는 글로벌 재벌이 여럿 탄생했다. 벤츠코리아도 화상 재벌이 지분의 절반 가량을 갖고 있다.사진(벤츠의 서울 강남 전시장판매장)= 한성자동차.

새로 권력을 잡은 민족정부는 완전한 정치독립을 이루기 위해 주류민족의 경제력 강화가 필수적인 과제라고 여기고 토착민에 대한 강력한 경제적 우대조치를 취하면서 화교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조치를 시행했다. 많은 화교들의 경제활동 자체가 힘겨워졌다. 그러자 인도네시아나 등지의 적잖은 화교들은 정부의 규제조치로 도저히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해 고국인 중국이나 대만 홍콩 등지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동남아 민족정부의 정치지도자들이 화교자본을 보는 생각이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화교자본을 배제하고 토착민을 우대하는 경제시책을 전개했지만 주민들의 경제가 나아지지 않았고 혹독한 식민지 경험에 따라 외국자본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경제가 살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레이지아에 기반을 둔 레이싱홍 그룹은 아시아 최대 벤츠 딜러망을 갖는등 유통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라우 회장(사진)은  벤츠를 판매하는 한성자동자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한다.
말레이지아에 기반을 둔 레이싱홍 그룹은 아시아 최대 벤츠 딜러망을 갖는등 유통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라우 회장(사진)은 벤츠를 판매하는 한성자동자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한다.

 이들은 화교자본이 중국이나 대만자본이 아닌 바로 국내 자본이고 이들의 자금을 활용하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고, 세계적인 경제흐름에 마춰 1차산업 위주의 경제를 넘어 공업화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

 60년대 후반 이후 선진국 중심의 경공업이 높은 인건비 등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자 생산공장을 인건비가 저렴한 개발도상국으로 옮기는 흐음에 편승했다.

  이런 글로벌 산업체계의 변동애 따라 동남아 각국 정부는 외자를 도입하여 수입대체 및 수출지향적인 산업을 육성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일본 등의 자본이 동남아로 들어왔고 현지기업과 합작으로 공장을 세우면서 공업발전을 통한 경제개발이 본격화됐다.  이들 일본자본 등과 손잡은 동남아기업 대부분이 바로 화교ㆍ화인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이었다. 독립이후 동남아 각 민족정부엔 이렇다 할 자본이 없었다. 식민세력은 이미 철수하였고 토착민의 자본의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자본이라면 화교자본 정도였다. 정부의 정책전환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활용하여 화교기업인들은 자신의 경제규모를 극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정부는 화교 자본을 공업자본으로 유도하였고 자본력이 빈약한 토착민의 자본을 상업자본으로 유도 육성한다는 정책방향을 수립한 것이다. 화교와 화인기업인들은 정부정책에 적극 호응하였다. 이처럼 국내외 경제환경이 변하면서 상업유통자본 중심의 영세규모의 화교자본이 공업화를 계기로 점차 자본규모가 커졌고 일부 화교기업들은 그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정치권력을 장악한 토착 고위관료, 군인들들이 화인기업인들과 결탁한 점이다. 화인 기업들은 이를 통해 현지 정부의 지원과 협력을 이끌어냈다. 정치 권력자들은 화인 기업의 보호막, 울타리 역할을 했다. 즉 정치권력과 화교자본이 만나 독특한 정치경제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세상사에는 공짜가 없듯이 동남아 각국에서 화교자본에 대한 시각이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보인 것은 정치권력이 자신의 힘으로 경제력을 확보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동남아 각국의 정치권력은 화교들의 경제실력이 아무리 커진다 해도 그것이 자신의 정치권력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화교들의 자본을 국가적으로 또 사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교자본은 특성이 주로 금융과 부동산 그리고 상업부문에 집중 투자됐다. 말하자면 전문화된 자신의 영역을 심화, 발전시키기보다는 상업부문에서 금융, 부동산으로 다각적인 경영방식으로 발전을 추동해왔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새로운 서비스업종인 호텔업과 여행업, 오락업 등도 추가되었다.

이러한 사업경영범위의 다각화를 통한 사업성장의 도모는 위험의 분산이라는 측면을 고려한 것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분야로의 사업다각화는 위험의 분산이라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이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기업경영에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이런 경영방식은 1997년 동남아를 덮친 금융위기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1970년대 이후 승승장구하던 화교자본은 금융위기로 엄청난 좌절을 겪게 되고 일부 경쟁력이 약한 화교재벌은 무너지거나 그 세력이 지리멸렬 수준으로 약화됐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다시 발판을 다지고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더욱 발전한 화교기업그룹도 물론 많이 나타났다.

또 다른 특성으로는 업종다각화에 이어 경영의 지역적 범위가 세계적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글로벌 경영이다. 동남아 화교ㆍ화인기업의 글로벌화는 두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다. 동남아가 독립한 이후 민족정부는 실질적인 경제적 독립을 위해 외국자본과 함께 화교자본에 대한 혹독한 규제를 가했고 이런 상황에서 국내사업이 여의치 않자 화교기업인들이 해외로 진출, 홍콩이나 다른 동남아국가로 사업지역을 확장했다. 다른 시각은 이후 세계적인 경제흐름의 변화에 따라 화교들도 확장을 위한 국제화 전략을 펴게된다. 즉 초기에는 민족정부의 규제와 압박을 피하기 위해, 이후에는 기업 본연의 사업확장 욕구에 의해 글로벌화가 추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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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2019-10-21 16:24:31
국가산업의 진행과 발전과정을 알 수 있는 유익한 기사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