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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135년 전 경복궁에 전등불
[김성희의 역사갈피]135년 전 경복궁에 전등불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8.2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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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고종 24년)봄 날 에디슨의 전기 회사서 백열등 설치
중국 자금성 이나 일본의 궁성보다 약 2년 앞서 전깃불 밝혀
1900년4월10일 종로의 전차 정류장 등 가로등 불빛도 켜져
에디슨은 1886년 전기 기사 맥케이 등 2명을 조선에 파견해 한국 최초의 발전소 '전기등소'를 경복궁 북쪽 후원에 설치하도록 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확실히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아침에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돌 정도다. 자연히 전력 수급을 걱정하는 이야기도 쑥 들어갔다. 전력예비율이 역대 최저여서 에어컨 가동 등 여름 성수기엔 부분 단전 등이 있을지도 모른다던 얘기가 돌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 우리나라엔 언제 전기가 들어왔을까. 흥미로운 역사 상식을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정리한 『역사ⓔ』(EBS 역사채널ⓔ 지음, 북하우스)에 이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1887년(고종 24년) 봄날 어느 밤 경복궁 내 건청궁에 상궁과 내관들이 북적거렸다. '마귀불'이 들어오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궁내 연못 향원지 가운데서 물 끓는 소리가 들리더니 천둥 소리와 함께 주위가 대낮같이 밝아지더란다. 작은 유리 안에서 뻗어나온 빛의 작품이었다.

이날 건청궁을 밝힌 전등은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한 지 불과 8년 만의 일로 중국 자금성이나 일본의 궁성보다 약 2년 앞선 서구 문명 도입이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조선은 다음 해인 1883년 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했다. 보빙사 일행은 서구 문명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감탄했는데 특히 수행원이었던 유길준은 '마귀불'의 도입을 강력 주장했다. 일행이 에디슨 전등회사와 설비 도입을 상의하자 회사에서 아시아무역을 관장하던 프레이저를 뉴욕주재 조선 명예총영사로 임명하고 사업 추진을 맡겼다.

이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에디슨이 1886년 전기 기사 맥케이 등 2명을 조선에 파견해 한국 최초의 발전소 '전기등소'를 경복궁 북쪽 후원에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겪은 고종이 밤에 병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새벽까지 궁궐을 훤하게 밝히려 한 점과 개화 노력이 상승작용을 한 결과였다. 여기에 "동양에서의 판촉을 위한 모델 플랜트가 필요하다"는 에디슨 회사 측의 속셈도 한몫했다. 이렇게 조선의 밤을 밝힌 전등은 물을 이용한다 해서 '물불', 괴상하다고 해서 '괴화', 멋대로 꺼졌다 켜졌다 한 대서 '건달불'이라고도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한데 모두 이 문명의 이기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뜨거워진 발전기를 식힌 냉각수를 향원지에 방류하는 바람에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자 "증어망국"이라며 수근거리기도 했고 황현은 "전등 한 개를 하룻밤 밝히는 데 엽전 천 꿰미의 비용이 든다"고 비판했다. 전 교리 임원상 역시 전등 설비에 대한 과도한 투자를 빌미로 왕실의 낭비를 질타했다.

그러나 1900년 4월 10일 종로 전차 정류장 등에 가로등 3개로 민간에도 전등이 들어오고, 1901년에는 일본인 상점이 몰려 있던 진고개(현 충무로)에 조명용 전등 600개가 보급되는 등 문명개화의 도도한 물결은 거침없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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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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