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0 19:40 (금)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⑬ 사라진 金본위제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⑬ 사라진 金본위제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5.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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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본위제 화폐 발행은 헬퍼리히가 고안…이를 땅으로 바꾼 샤흐트, 통화량 지켜내
상상을 초월하는 獨하이퍼인플레이션 잡아 … 현재 金본위제하는 나라 한 곳도 없어

'땅'을 담보로 화폐를 찍어낸다.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1920년대 독일은 달랐다. 그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나라 전체를 망치는 극한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렌텐마르크는 그렇게 태어났다. 전문가들은 '신용사기'라 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사기극'이 대성공을 거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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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본위제. 생소했다. 하지만 했다. 그리고 해냈다. 프랑스혁명 때에는 어설프게 했다가 그야말로 박살이 났었다. 하지만 130년 뒤 독일은 성공했다. 천정부지의 인플레이션을 잡으며 자국 화폐를 안정시켰다. 화폐가 안정되니 경제가 살아났고 정치도 사회도 모두 활기를 띠었다. 1920년대 중반 독일은 비로소 가야할 길을 제대로 가는 것으로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 대목에서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첫째,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땅본위제'라니. 보통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디어만 좋으면 뭘 하나. 그것을 제대로 수행할 인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둘째 의문이 든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누가 성공시켰냐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의문이 든다. 화폐의 '땅본위제'가 가능했으니 '금본위제'는 필요 없는 것 아닐까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금'은 없어도 '땅'은 있지 않은가 말이다.

‘호밀본위 화폐’를 처음 추창했던 독일의 경제학자ㆍ정치가ㆍ외교관 칼 헬퍼리히
'호밀본위 화폐'를 처음 주창했던 독일의 경제학자ㆍ정치가ㆍ외교관 칼 헬퍼리히

일단 아이디어의 '원천'을 보자.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재정가 겸 정치가ㆍ외교관이었던 칼 헬퍼리히(Karl Helfferich)가 꼽힌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재무장관으로 활약했고 전쟁 직후에는 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1923년 독일이 혹독한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릴 때 그는 러시아에서 돌아와 독일국민당(DNTP) 소속 정치가로 활동 중이었다. 그가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고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마침내 '답'을 찾았다. '금본위제'가 '정답'이기는 했다. 하지만 금이 없었다. 그 다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금'에 대한 '대체재'였다. 그가 프랑스의 토지 기반 화폐 '아시냐(Assignat)'를 알았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금본위제'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뤄졌을 테고, 아시냐라는, 실제 역사 속에서 금본위제를 대체했던 실험을 검토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땅본위제 화폐' 아시냐가 실패했다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 돈을 찍을 때 필요한 것은? 금? 땅? 호밀?

그래서였을까? 그는 '금'의 대체물로 '땅'이 아닌 다른 것을 찾았다. '호밀'이었다. 주로 중부ㆍ동부유럽에서 생산되는 호밀은 독일 국민에게 매우 친숙한 곡물이었다. 특히 북부 독일은 호밀빵에 대한 선호가 높아 '유럽 최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당연히 '호밀'도 값이 나간다. 전쟁이나 흉년이 때면 금보다 비싸다. 거기에 농산물은, 땅과 달리,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고 운송도 가능하다. 확실히 '땅'에게는 없는 장점이었다.

만일 헬퍼리히가 화폐개혁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면, 어쩌면, 독일은 '금본위제' 대신 '땅본위제'가 아닌 '호밀본위제' 통화를 만들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세계 화폐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일을 수행한 인물로 기록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정부의 재정 담당 장관도 아니었고 중앙은행의 총재나 위원도 아니었다. 중앙은행 총재 자리를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1923년 10월 전후, 화폐개혁의 총책임자 자리에는, 이미 말했듯, 샤흐트가 앉아 있었다. 그 역시 없는 금을 만들 수는 없었다. 당연히 대체물을 찾았다. 헬퍼리히의 '호밀본위제'도 검토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샤흐트는 달랐다. 금의 대체물로 '호밀'이 아닌 '땅'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이유도 추정이 가능하다. 농산물은 땅보다 큰 결점이 있었으니, 바로 변동폭이었다. "전쟁이 나면 금보다 비싸다"는 곡물의 성격이 샤흐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샤흐트에게는 통화가 무엇과 연계되느냐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발행량'이었다. '땅본위제'는 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임기응변식 정책이었다. 국제적으로 렌텐마르크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명백했다. 금본위제를 추진하려는 나라에 '땅본위제'는 '신용사기'에 가까웠다. 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성공시켜야 했다. 그게 조국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오직 하나. 통화량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었다.

금본위제를 실시하는 이유도 실상 통화남발을 막자는 것이었다. 단순한 신용화폐는 정부가 보증하든 왕실이 보증하든 아무 의미가 없었다. 늘 마지막에는 통화남발과 그로 인한 화폐의 가치하락으로 끝을 맺었다. 돈은 누구에게나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정부도 마찬가지. 돈에 대한 욕망을 막지 못하고 돈을 찍어낸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아무리 금본위제를 도입한다 해도 돈을 마구 찍어낸다면 제도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고 만다.

1971년 8월 15일 달러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는 닉슨. 이로써 닉슨은 인류의 금본위제 통화제도에 사형선고를 내린 인물이 됐다.
1971년 8월 15일 달러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는 닉슨. 이로써 닉슨은 인류의 금본위제 통화제도에 사형선고를 내린 인물이 됐다.

1923년 11월 샤흐트는 약 6억 달러에 해당되는 24억 렌텐마르크를 발행하며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그러자 인플레이션은 기적처럼 사라졌다. 그렇다면 돈에 대한 욕망도 사라졌을까? 당연히 아니다. 1차 통화발행 후 나라 곳곳에서 돈이 더 필요하다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정계와 재계, 금융계 모두 같았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통화량의 법정 상한선을 끝까지 지켜냈다.

이로써 두 번째 의문이 풀린다. 첫째 의문, 즉, '땅본위제 화폐'는 누구 아이디어였나. '답'은 헬퍼리히다. 물론 샤흐트의 일부 공(功)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헬퍼리히가 주창했던 아이디어는 '호밀본위제'였고 이를 '땅'으로 바꾼 것은 샤흐트였기 때문이다. 둘째 의문. 누가 했나. 이것은 명확하게 1인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바로 샤흐트였다. 그는 아이디어를 '호밀'에서 '땅'으로 바꿨고 목숨 걸고 통화량을 지켜냈다. 상상을 초월하는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결국 그의 손에 의해 목이 날아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 의문에 답을 내 보자. 독일은 금도 없이 땅본위제로 새로운 화폐제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그러니 그때까지 '통화제도의 왕도(王道)'로 불리던 금본위제는 의미가 없어진 것 아닐까? 답은 '절반의 예스(yes)'일 것이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니다. '절반의 예스'란 의미는 이렇다. 즉, 실상 금본위제는 필요가 없는 제도다, 다만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역사는 이미 세계 통화시장에서 금본위제가 필요 없음을 입증했다. 오늘날 금본위제를 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코로나로 미국이 달러를 너무 많이 찍었다, 그 결과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그러니 금본위제로 돌아가야 한다···. 이런 논리가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이사로 지명했다 상원의 거부로 무산됐던 주디 셸턴(Judy Shelton) 트럼프 대통령 경제자문이 대표적인 인사일 것이다.

21세기 금본위제는 가능할까? 한 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나라경제, 세계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둘째고 실현 자체가 불가능하다. 주요 선진국 중 금을 보유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 이해관계가 어긋날 테고 어느 나라도 자국의 통화량 조절 수단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인 2021년은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지 꼭 50년이 되는 해였다. 금본위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쏟아져 나왔지만 금본위제 회기 논리는 '소수의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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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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