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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 '모던 타임스' ⑭친(親)공산주의 '꼬리표'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 '모던 타임스' ⑭친(親)공산주의 '꼬리표'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1.1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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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시각에 언론들 '친(親)공산주의 영화'로 대서 특필
채플린이 흔든 '붉은 깃발'이 논란에 불지펴…영화에 대한 '입체적 해석' 아쉬워

<모던 타임스>는 개봉 전부터 '친(親)공산주의 영화'로 언론을 탔다. 영화가 개봉된 1930년대 중반은 세계적인 혼란기였다. 대공황의 와중에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와 파시즘 간 권력투쟁이 한창이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적색공포'와 함께 파시즘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어느 한쪽에 서면 누군가의 적이었다. 대중영화에 붙은'친공산주의 영화'라는 꼬리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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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스>는 진짜 '친(親)공산주의 영화'일까? 답하기 쉽지 않다. '친공산주의 영화'라는 기준이 모호한 탓이다. 결국 이 답은 '친공산주의 영화'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친공산주의 영화라···. 이렇게 규정해 보면 어떨까. ➀공산주의 체제나 사상ㆍ운동 등에 우호적이거나 또는 그를 찬양하는 영화(공산주의 찬양 영화), ➁공산주의 체제의 나라(당시 소련)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또는 그를 찬양하는 영화(친소련 영화), ➂기업보다는 노동에 우호적인 영화(노동 친화적 영화), 그리고 ➃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영화(자본주의 비판 영화) 등으로 말이다. 이런 영화라면, 크던 작던, '친공산주의 영화'로 입에 오를 만하다.

그러나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노동 친화적이거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영화를 '친공산주의 영화'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건 그렇다. 몇몇 영화나 드라마를 거론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노조 입장에서 접근한 코미디 영화 <상사부일체(2007년, 감독 심승보)>나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카트(2014년, 감독 부지영)>, 비판적 시각에서 자본주의의 빈부격차를 그린 <기생충>(2019년, 감독 봉준호)이나 <오징어 게임(2021년, 감독 황동혁)> 등을 '친공산주의적'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확실히 이들은 '친공산주의'보다 '노동 친화적' 또는 '자본주의 비판' 등의 이름이 더 어울려 보인다.

■ 채플린이 흔든 '붉은 깃발'의 의미는?

그렇다면 '친공산주의 영화'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일단 내용에 ➀공산주의 찬양이나 ➁소련 찬양 또는 친화적인 내용이 있는지 알아보자. 직접적인 '찬양'이 담겨있으니 '친공산주의 영화'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➂노동 친화적 내용이나 ➃자본주의 비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해서 무조건 '친공산주의'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미 말했듯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동조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친노동'이나 '자본주의 비판'은 얼마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은 일단 '유보'하는 게 좋을 듯싶다. 이들에게는, 다소 주관이 개입하겠지만, '친공산주의 성향'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를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전체 맥락이나 영화 속 다른 주요 요인들, 나아가 감독의 개인 성향까지 파악해야 할 것이다.

주인공 '떠돌이'가 우연히 트럭에서 떨어진 붉은 깃발을 들고 있다. '모던 타임스'가 '친공산주의' 영화로 거론되는 주요 근거다.
주인공 '떠돌이'가 우연히 트럭에서 떨어진 붉은 깃발을 들고 있다. '모던 타임스'가 '친공산주의' 영화로 거론되는 주요 근거다.

자, 그럼 이제 분석에 들어가 보자. 영화 <모던 타임스>는 '친공산주의 영화'인가? 앞에 제시한 내용이 담겨 있나? 모호하다고? 그럼 전체적인 맥락과 감독의 평소 행태와 어떻게 연결되나? 이런 기준으로 다시 한 번 영화를 보도록 하자.

첫째, '공산주의 찬양' 항목에 대한 것이다. 영화 <모던 타임스>에는 공산주의 체제나 사상ㆍ운동 등에 우호적이거나 또는 그를 찬양ㆍ선동하는 내용이 있을까? 애매하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장면은 ··· '있다'! '작은 떠돌이(Little Tramp)'가 정신병원을 나와 길을 걷다 벌어진 해프닝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우연히 깃발을 들고 재미삼아 흔들어 보다 갑자기 뒤에서 노동자 시위대가 나타나자 그는 졸지에 노동운동의 리더로 오인 받아 체포된다. 그리고 감옥행이다.

흑백 영화라 깃발은 검정색으로 보이나 정황 상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Red Flag)'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채플린의 영화 속 '떠돌이'는 '가난하고 약하고 착한 캐릭터'다. 또한 이 캐릭터는 단순히 영화 속 인물이 아니다. 영화 밖 세상에서는 유명인사 채플린 그 자체다. '작은 떠돌이=찰리 채플린'인 것이다. 그런 그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들다니.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 자체가 공산주의에 대한 동조이고 선동적일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깃발의 주인을 찾아주려는 '선한 행동'을 하다 감옥까지 간다. '선(善)'을 탄압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강압적인 모습은 '악(惡)으로 비칠 수 있다.

둘째, 공산주의의 상징이자 리더인 소련을 찬양하는 내용이 있는가의 문제다. 이건 없다. 영화 밖 세상에서 그가 소련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기록과 연구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최소한 <모던 타임스>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이 요인으로 <모던 타임스>를 '친공산주의 영화'로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순ㆍ반복노동으로 신경쇠약에 걸린 노동자 얘기를 그려 '친노동 영화'로 분류되는 '모던 타임스'의 명장면. 기계와 인간이 하나가 된 '결합노동'의 상징이 됐다.
단순ㆍ반복노동으로 신경쇠약에 걸린 노동자 얘기를 그려 '친노동 영화'로 분류되는 '모던 타임스'의 명장면. 기계와 인간이 하나가 된 '결합노동'의 상징이 됐다.

셋째, 노동친화적인 것은 어떤가? 이는 영화 전편에 깔려 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그렇다. 지하철에서 나오는 노동자들을 양떼에 비유한다. 한가롭게 퍼즐놀이를 하다 기계조작을 지시하는 기업인과 그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중간 관리들은 기계와 함께 노동해야 하는 착한 노동자 '떠돌이'를 억압하는 세력으로 비춰진다. '떠돌이'는 지나친 반복 노동 끝에 결국 정신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직장을 구하러 다니던 중 본의 아니게 시위에 가담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감옥까지 간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잘 살겠다며 찾은 직장은 또 쫓겨나고···. 피곤하고 고단한 노동자의 삶은 애틋하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불쌍한 노동자 '작은 떠돌이'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넷째, 자본주의 체제에 비판적 내용이 있나? 이 역시 전편에 깔려 있다. 착하고 불쌍한 노동자를 정신병원에다 감옥까지 보내야 하는 잔인한 자본주의 체제가 있고, 말 한 마디로 사람 잡을 일을 시키는 냉혈한 자본가가 있다. 선한 실업자가 있고, 불쌍한 그 자녀들은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해야 하고, 그가 끝내 길거리에서 명을 달리하자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그의 형제자매가 있다. 주인공 '떠돌이'와 사랑하는 소녀는 열심히 살려고 애를 써도 그게 잘 안 된다. 자본주의 체제 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영화'다.

자, 여기까지 보면 <모던 타임스>는, 그 자체만으로는 '친공산주의 영화'로 규정하기 어렵다. '노동자 시각에서 그린 자본주의 체제 비판 영화' 정도로 평가하는 게 좋아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가 지나치게 1차원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채플린 영화의 '다층 의미 구조(Multiple Meaning Structure)'를 지적한다. 몇몇 채플린의 다른 영화처럼, <모던 타임스> 역시 복잡한 의미구조를 갖는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끝을 맺기에는 뭔가 미심쩍다. 영화에 대한 입체적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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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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