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9:50 (토)
'정주영-김우중' 조선 등 중공업서 '미묘한 힘겨루기'
'정주영-김우중' 조선 등 중공업서 '미묘한 힘겨루기'
  • 성태원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19.05.12 2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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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은행 돈 빌려 남이 애써 지은 공장 덜렁 사서 사업 하면 장사꾼이지 기업인 아니다"
김우중 ‘수출과 기업인수ㆍ합병(M&A)’이란 차별화전략… 재계 판도 바꾸는세계 경영 응수
남북경협에서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쟁… 김우중은 '김일성-YS' 정상회담 추진 막후 역할
정주영 현대 회장과 김우중 대우 회장은 조선을 비롯해 자동차,건설 등 중후장대한 사업에서 라이벌의식을 갖고 있었다. 정 회장은 직접 공장을 지어서 사업을 해야 진짜 기업인이라고 주장했고 김우중 회장은 발빠르게 사업을 확장하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위해선 기업인수와 합병은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두 사람은 수출에는 온 힘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같은 입장이었지만 사업전개 방식을 놓고 미묘한 의식의 차이를 보였다.
정주영 현대 회장과 김우중 대우 회장은 조선을 비롯해 자동차,건설 등 중후장대한 사업에서 라이벌의식을 갖고 있었다. 정 회장은 직접 공장을 지어서 사업을 해야 진짜 기업인이라고 주장했고 김우중 회장은 발빠르게 사업을 확장하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위해선 기업인수와 합병은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두 사람은 수출에는 온 힘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같은 입장이었지만 사업전개 방식을 놓고 미묘한 의식의 차이를 보였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이 20년 만에 다시 민영화의 길을 걷게 됐다.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지난 3월 8일 인수 본 계약을 맺고 필요한 절차를 밟아나가는 중이다. 향후 한국 조선업계는 현대중공업·대우조선·삼성중공업 등 소위 ‘빅3 체제’에서 ‘슈퍼 빅1(현대중공업+대우조선)과 빅1(삼성중공업) 체제’로 개편될 공산이 커졌다. 국내는 물론 세계 조선업계도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로써 대우조선은 IMF 사태 때 공기업 산업은행에 몸을 맡긴 지 20년 만에 라이벌인 현대중공업을 다시 새 주인으로 맞이하게 됐다. 그 동안 수조원의 공적 자금을 수혈 받으며 지냈다. 하지만 알려진 대로 올 연말쯤 인수 절차가 다 끝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양사 노조가 인력 구조조정 등을 이유로 크게 반대하고 있다. 또 국내 공정위와 해외 경쟁국들에 의한 인수 관련 경쟁제한 심사 등 풀어야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 조선업계의 맏형 현대중공업이 오랜 라이벌이었던 대우조선 인수에 나서는 걸 보노라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지금부터 약 28년 전인 1991년 8월쯤의 일로 기억된다.

당시 정주영(76)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인터뷰했던 나는 그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기업인이라면 마땅히 정부 허가 받아 공장 터에 말뚝을 박고, 땅을 고르고, 건물을 짓고, 기계를 넣고, 종업원을 훈련시켜 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은행 돈 빌려 남이 애써 지은 공장 덜렁 사서 사업하는 사람은 장사꾼이지 기업인이 아닙니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정주영 회장은 남북경협을 필생의 사업으로 여겨 적극적으로 대북지원에 나선 기업인이다.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한 정 회장. 오른쪽은 정 회장의 넷째아들인 정몽헌 회장이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정주영 회장은 남북경협을 필생의 사업으로 여겨 적극적으로 대북지원에 나선 기업인이다.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한 정 회장. 오른쪽은 정 회장의 넷째아들인 정몽헌 회장이다.

그 말이 대우 김우중(55) 회장을 두고 하는 얘기란 걸 나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천하의 정주영 회장이 21살이나 아래인 김우중 회장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느낀 나머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정 회장은 80년대 후반까지 10년 째 전경련 회장을 맡으면서 이병철 회장이 이끄는 삼성 정도를 라이벌이라 여기며 지냈다. 관리에 능하고 인재 제일의 삼성을 표방했던 삼성에 맞서기 위해 현대는 추진력과 무한 도전력을 무기로 내세웠다.

정 회장과 삼성 이 회장은 반도체, 백화점, 중공업, 건설업 등에서 경쟁을 벌였다. 재계에 먼저 터를 잡은 삼성에 현대가 저돌적으로 추격전을 벌여 80년대에는 양측이 호각지세(互角之勢)라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다섯 살

위였던 이병철 회장이 1987년 11월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두 사람의 라이벌전은 일단 막을 내린다.김우중 회장과 정주영 회장 간의 라이벌 의식은 그 이후에 더 커진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정 회장은 전경련 회장 임무를 완수했고 맞수라 생각했던 이병철 회장도 작고한 뒤라 명실 공히 한국 재계를 평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음 직하다.

김우중 회장은 국내 기업인으론 김일성 북한 주석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다. 황해도 남포에 서 섬유 임가공 사업을 하는 등 남북경협사를 돌아보면 정주영 회장 못지 않게 남북경협에 팔을 걷었고 한 발 빨랐다는 평가도 있다. 김 회장은 비록 김일성의 급사로 이뤄지지 않았으나 '김일성-김영삼' 정상회담을 성사 시키는데 막후역할을 했다. 1992년 방북한 김우중 회장(사진 앞줄 왼쪽에서 네번째)이 김일성 주석(가운데) 옆에 서있다.
김우중 회장은 국내 기업인으론 김일성 북한 주석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다. 황해도 남포에 서 섬유 임가공 사업을 하는 등 남북경협사를 돌아보면 정주영 회장 못지 않게 남북경협에 팔을 걷었고 한 발 빨랐다는 평가도 있다. 김 회장은 비록 김일성의 급사로 이뤄지지 않았으나 '김일성-김영삼' 정상회담을 성사 시키는데 막후역할을 했다. 1992년 방북한 김우중 회장(사진 앞줄 왼쪽에서 네번째)이 김일성 주석(가운데) 옆에 서있다.

정 회장은 같은 창업 1세대라지만 나이로 보나 사업 이력으로 보나 김 회장을 한 수 아래로 보았을 수 있다. 하지만 김 회장 입장에서는 사업에 관한 한 선배 정 회장을 향해 치고받으며 도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공업(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물론 자동차, 건설, 종합상사 등 업종 전 방위에 걸쳐서 그랬다. 오너들이 그런 만큼 임직원들의 상호 라이벌 의식도 컸다.

당시 4대 그룹으로 불리던 삼성·현대·LG·대우 오너 중 사업 기질 면에서는 현대 정 회장과 대우 김 회장이 그래도 제일 비슷했다. 일단 저돌적으로 사업 판을 벌여 놓은 다음 정리하고 관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부딪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대우 김 회장은 1900년대 후반부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1967년 단돈 500만원으로 출발한 대우실업을 모체로 30여년 만에 국내 2위이자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래서 그는 ‘수출과 기업 인수·합병(M&A)’이라는 두 가지 차별화된 방법을 썼다. 한국 기업들이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파란을 일으켰다. 1년에 평균 280일을 해외에서 뛰며 ‘대우신화’를 창조했다. 1993년께부터는 ‘세계경영’의 간판스타로 부상했다. 이 무렵부터 정치(대권)와 남북 경협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면담(1992년)하기도 했다. 말년(99년)엔 전경련 회장직도 맡았다. 여러 면에서 정주영 회장과 라이벌 의식을 가질 만 했다.

울산 현대중공업과 옥포(거제) 대우조선은 수주나 제조기술, 노사분규 등의 면에서 한 치의 양보 없이 경쟁하며 ‘글로벌 1위 한국 조선업’을 견인해왔다. 현대중공업은 1971년 4월 부지조성, 1972년 3월 조선소 기공, 1973년 3월 선각(船殼)공장 준공 및 9월 골리앗크레인 가동을 거쳐 그해 12월 회사(현대조선중공업) 설립에까지 이른다. 물론 정주영(설립 당시 58세) 창업자의 피와 땀과 투지가 밑바탕이 됐다. 조선소 기공 때부터 치면 회사 나이는 올해 47살이 됐다.

대우조선의 운명은 좀 기구했다. 출발 시기는 현대중공업과 비슷했다. 1973년 10월 당시 대한조선공사가 옥포조선소 건설에 나선다. 1978년 대우조선이 설립(김우중 회장 42세)되면서 대우가 넘겨받아 조선소 종합준공 및 골리앗 크레인 완공(1981년), 제2도크 완공(1983년) 등을 이루게 된다. 올해 회사 나이 41살이 됐다.

처음 21년은 김우중 창업자를 주인으로 삼다가 2000년 공기업인 산업은행 손에 넘어가 20년을 보냈다. 이번에 다시 라이벌 현대중공업 품에 안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어찌 기구하지 않은가. 2001년 작고한 정주영과 노환을 앓고 있는 김우중(83) 간의 첨예했던 라이벌 의식도 세월 앞에서 빛이 바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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