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2 01:40 (목)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모던 타임스' ➁채플린의 이념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모던 타임스' ➁채플린의 이념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1.1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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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포드 휴 더글러스의『사회신용론(Social Credit)』에 매료됐다는 전기의 대목 눈길 끌어
빈부격차의 원인은 은행신용 (Bank Credit)의 '이자 놀이'서 나온다는 '더글러스 통찰'에 감명
기술진보의 결과는 '대량실업'이라는 더글러스는 '사회신용'의 창출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

안토니오 그람시. 사회당의 보수성이 싫다며 당을 뛰쳐나와 공산당을 만든 이탈리아 공산당의 시조(始祖), 옥살이 11년 동안 3000쪽 분량의 글을 쓴 이론가. 이 『옥중수고』는 전후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새 장(章)을 연다. 그리고 그의 글'미국주의와 포디즘'은 영화 <모던 타임즈>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인다. 양쪽 모두 다른 한 쪽을 참고했다 해도 믿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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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책 『옥중수고』에 수록된 '미국주의와 포디즘'과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는 찰떡궁합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채플린이 그람시의 옥중수고를 보고 영화에 참고했을까? 아니면 그람시가 채플린의 영화를 보고? 이것저것 따져 보면 이 두 가지 가능성은 모두 전무(全無)하다. 그람시가 『옥중수고』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26년 체포 후 3년이 지난 1929년부터였다. 그리고 건강악화로 로마의 퀴시사나(Quisisana) 병원으로 옮겨지기 직전인 1935년에 끝난다. 퀴시사나 병원에서의 그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람시의 본래 형기는 1948년까지였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지자 감형을 받았다. 그래서 받은 출소일이 1937년 4월 21일. 하지만 그날도 그는 자유를 얻지 못했다. 병원에서 나갈 몸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대신 6일 후 그는 영원한 자유를 얻는다. 4월 27일 사망한 것이다. 사망 직후 그의 처형인 러시아인 타티아나가 그의 노트 33권을 빼냈고 이후 러시아로 가져가 그의 글이 빛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죽은 지 10년이 지난 1948년 이탈리아에서 최초 발간됐고 이후 1951년까지 전 6권으로 간행을 마쳤다.

처형인 러시아인 타티아나. 그람시의 죽음과 함께 했던 그는 그람시 사후 그의 노트를 비밀리에 반출, 세상의 빛을 보게 한 결정적 인물이다.
처형인 러시아인 타티아나. 그람시의 죽음과 함께 했던 그는 그람시 사후 그의 노트를 비밀리에 반출, 세상의 빛을 보게 한 결정적 인물이다.

영화 <모던 타임즈>가 개봉된 것은 1936년. 그람시의 『옥중수고』는 당연히 출간 전이었다. 그람시가 영화를 봤을 리도 없다. 그 무렵 그는 로마의 한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결국 1920~30년대 정치ㆍ경제ㆍ사회에 대한 그람시의 '글'과 채플린의 '영화'가 갖는 공통된 인식은 단순한 '우연'이거나 또는 두 천재가 갖고 있던 '혜안'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혜안'을 꼽지 않을까? '단순 우연'이라는 말 안에는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는다.

■ 『사회신용론』에 빠진 채플린

우선 그람시를 보자. 사회에 대한 그의 '혜안'에 이의를 달 필요는 없다. 빼어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요, 공산주의 정신으로 무장된 활동가였다. 정치ㆍ경제ㆍ사회에 대한 생각과 분석을 잠시라도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갖는 사회에 대한 '탁견(卓見)'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채플린은 어떨까? 공산주의자로 몰렸던 그는 실제로 마르크스 공부를 좀 했을까? 그의 정치ㆍ경제ㆍ사회관에는 마르크스주의의 흔적이 묻어 있을까? 우리는 몇몇 자료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그것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데이비드 로빈슨(David Robinson)이 쓴 전기 『채플린』에서, 약간이기는 하지만,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채플린이 클리포드 휴 더글러스(Clifford Hugh Douglas)의 『사회신용론(Social Credit)』에 감명 받았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더글러스는 경제학계에서 '괴짜'로 통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퇴한 뒤 엔지니어로 일하다 1924년 매우 독특한 경제학 책 『사회신용론』을 썼다. 초기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대공황이 터지자 얘기가 달라졌다. 대공황의 원인과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그의 이론이 꽤 설득력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신용론』은, 그때나 지금이나, 영향력이 적잖다. 케인스도 책 『고용, 화폐, 이자에 관한 일반 이론(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에서 그를 "과소소비론 중 가장 유명한 저자"로 꼽았다. 또한 그의 이론은 캐나다나 호주 등에서 상당한 정치적 지지를 받았다. '사회신용당'이 생길 정도였다. 이 모두는 사물을 보는 그의 통찰력 덕분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는 군에 입대해 회계업무를 맡았었는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조사한 모든 기업에서 노동자가 받는 임금총액은 기업의 판매총액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를 ➀기업은 필요 이상의 상품을 생산하고 ➁노동자는 생산물 총량에 대해 쓸 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채플린이 크게 매료됐던 ‘사회신용’의 창시자 더글러스
채플린이 크게 매료됐던 '사회신용'의 창시자 더글러스

그는, 모든 문제가 '은행신용(Bank Credit)'에서 출발한다고 봤다.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을 근거로 그 몇 배의 돈을 또 다른 고객에게 빌려준다. 이게 '신용'이다. 은행은 이때 양쪽 모두에게서 이자를 주고받는다. '돈을 맡긴 고객'에게는 '예금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준 고객'에게는 '대출이자'를 받는다. 당연히 '대출이자'가 더 많다. 그래야 은행이 먹고사니까. 문제는 은행이 돈을 더 벌겠다는 욕심이다. 돈을 계속 빌려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는 촘촘한 '빚의 그물'에 덥힌다. 개인도 기업도 이 '빚'에서 헤오나오기 어렵다. 기업은 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노동자에게 줄 몫이 줄어든다. 노동자도 빚을 갚아야 한다. 쓸 돈은 더 준다.

더글러스가 보기에 현대 자본주의 경제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은행이 자기 돈이 아닌 신용을 만들어 세상을 온통 빚으로 엮어놓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은행 이자 갚다 볼 일 다 본다. 빚을 안내면 되지 않느냐고? 그럼 돈이 안돈다. 당장 돈이 없는 기업은 투자를 못 하고 가계는 쓸 돈이 없다. 혹시 이자 없이 빌릴 수 있는 돈, 갚지 않아도 되는 빚, 이런 건 없을까? 작은 돈은 그냥 받아쓰고 조금 큰돈은 이자 없이 빌린다···. 그럼 이 문제가 해결되는 거 아닐까? '사회신용'은,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바로 이런 고민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답까지 냈다.

더글러스가 쓴 책 『사회신용』
더글러스가 쓴 책 『사회신용』

방법은 이렇다. 은행이 아닌 국가가 직접 돈을 찍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돈은 아예 국민에게 거저 주고 조금 큰돈은 이자 받지 말고 국민에게 빌려주라는 얘기다. 말이 안 된다고? 아니다. 먼 얘기 남의 얘기가 아니다. 큰 걸음은 이미 뗐다. 지역에서 운영되는 지역화폐가 이 같은 '사회신용'으로 간주할 수 있다. 거기에 '기본소득' 얘기도 나온다. 더글러스는 '국민배당(National Dividend)'이라 불렀지만 같은 의미다. 우리는 이들을 모두 '사회신용'이라 부를 수 있다. 사회나 국가가 거저 주거나 이자 없이 대출해 줄 수 있는 돈, 즉 '신용'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더글러스는 시간이 갈수록 사회신용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봤다. '은행신용'은 더 많아지고, 즉, 세상은 더 많은 빚에 시달리게 되고, 그럴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그럴수록 가난한 서민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봤던 것이다. 특히 그는 '실업의 증가'가 큰 문제일 것으로 생각했다. 인류에게 진보는 '문화적 유산(Cultural Heritage)'이다. 그리고 이 '진보'는 '기계'와 함께 한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인류는 진보를 거듭하게 되고 이는 기술과기계의 발전을 의미한다.

기술ㆍ기계의 발전의 결과는 무엇일까? 더글러스는 한 마디로 '실업'이라 말한다. 기술과 기계는 궁극적으로 노동을 대체하게 될 테고 이는 거대한 실업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실업은 비참하다. 개인에게도 나라에도 마찬가지다. 실업은 개인의 구매력을 없앤다. 이는 기업의 이윤저하로 드러나며 경제성장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더글러스는 이에 대한 유일한 방안으로 '사회신용'의 창출을 제시한다. 국가나 사회가 개인에게 거저 돈을 주거나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라는 것이다. 그래야 개인의 구매력이 살고 이업이 이윤을 내고 나라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더글러스는 100년 전 오늘의 우리 모습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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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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