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7 07:05 (월)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⑳상영시간 10분의 선전영화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⑳상영시간 10분의 선전영화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kpb11@hanmail.net
  • 승인 2021.09.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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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본드'는 채플린이 제작비도 스스로 대고 일주일새 뚝딱 만든 '단편'
영화는 또 다른 전쟁 선전장…독일 카이저"전방아닌 후방에서 졌다"

<어깨총>은 정부나 대중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한편 작품성도 인정받는다. 채플린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글이 관심을 갖는 영화 <더 본드>는 성격이 <어깨총>과 완전히 다르다. 이 영화에는 '선전영화'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리버티 본드의 홍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맥락 상 채플린이 맡았던 채권 세일즈와 같다. 채플린 평생에 유일한 선전영화일 것이다. 게다가 러닝 타임도 짧다. <어깨총>이 36분으로 당시로서는 준수한 시간대였던 반면 <더 본드>의 상영시간은 고작 10분에 불과하다. 채플린이 며칠 사이에 뚝딱 만들어내는 단편영화 수준이다. 거기에 제작비를 스스로 댔다. 자비로 찍은 국가 선전영화. 정부는 좋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는 성격 자체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보통 '공채'라는 제목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원 제목 그대로인 <더 본드>를 쓰겠다고 했다. 당연히 이유가 있다. 채플린이 영화의 제목 '본드(bond)'를 다중 의미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을 보면 명사 '본드(bond)'는 ➀유대ㆍ끈, ➁채권(債券), ➂보석금, ④굴레ㆍ속박 ⑤접착(제) 등 최소한 5가지 의미를 갖는다. 채플린은 10분짜리 짧은, 그것도 전시채권을 선전하는 선전영화에서 '본드'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적절하게 쓰고 있다. 보는 이에게 재미를 주며 '채권'이라는 금융 용어의 딱딱함을 줄여준다. 게다가 '유대' 등 '본드'라는 단어가 갖는 특별한 의미를 부각시키며 '채권'이 갖는 또 다른 특성을 부각시킨다. 채플린의 영민함을 볼 수 있는 '워드플레이(wordplay, 말장난)'다.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에서 성공한 채플린의 제1차 세계대전 관련영화 '어깨총'의 한 장면.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에서 성공한 채플린의 제1차 세계대전 관련영화 '어깨총'의 한 장면.

자, 그럼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는 4개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원어로, 'The Bond of Friendship'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제 왜 필자가 이 영화의 제목을 <공채>로 부르려 하지 않는지 알 것이다. 이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으로 쓰인 '본드'는 '채권'의 뜻이 아닌 것이다. '유대'나 '끈'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니 제목은 '우정의 끈' 정도가 맞다. 내용은 단순하다. 떠돌이 찰리가 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다. 반갑게 인사하며 얘기를 나눈다. 얘기를 마친 찰리는 바쁘다는 듯 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는 가려고 하는 찰리를 붙잡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것도 여러 차례. 결론은 '돈'이었다. 찰리는 그에게 '돈'을 주고 나서야 그와 헤어질 수 있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원어로, 'The Bond of Love'다. 이때의 'bond'는 첫 번째 에피소드보다 뜻이 더 다양할 수 있다. '유대'나 '끈' 외에 '굴레'나 '속박' 심지어 '접착(제)'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시 내용은 간단하다. 찰리는 우연히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난다. 그는 한 눈에 반한다. 여자도 싫지 않은 듯 그를 유혹한다. 둘은 데이트를 즐긴다. 그러다 어린 '사랑의 신(神)' 큐피드가 등장한다. 큐피드는 찰리의 엉덩이에 '사랑의 화살'을 맞춘다.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진다. 큐피드는 벤치에 앉아 있는 그들을 하얀 끈으로 묶어준다. 이로써 에피소드의 적당한 제목이 나올 수 있다. '사랑의 끈' 정도가 좋을 것 같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원어로, 'The Bond of Marriage'다. 이때의 'bond'에 대한 해석은 두 번째 에피소드와 같을 것이다. 스토리도 단순하다. 찰리는 교회에서 여자와 결혼한다. 첫 에피소드에서 만난 친구는 하객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모든 인간관계가 '돈'이라는 사실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여자에게는 (돈으로 산) 반지를 주고 목사에게는 주례의 대가로 돈을 준다. 교회 집사는 모자와 지팡이를 돌려주며 보관료를 달라 하고 하객으로 왔던 친구도 와줬으니 돈을 달라고 한다. 찰리는 이들 모두에게 돈을 준다. 그리고 갓 결혼한 아내와 떠나려 한다. 이때 친구가 신발을 던진다. 찰리는 신발을 맞고 기절한다.

네 번째 에피소드가 결론이다. 제목을 주의 깊게 보자. 'The Bond of Liberty'다. 이 제목만 보면 판촉 대상인 'Liberty Bond'를 풀어쓴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러니 두 개 이름에서 나오는 단어 'bond'는 모두 '채권'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앞의 세 개 에피소드와 연관시켜 보자. 'bond'는 '우정' '사랑' '결혼'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유대'나 '끈' '굴레' 등으로 번역된다. 'The Bond of Liberty'도 마찬가지다. 'Liberty Bond'와 연결시켜 'bond'에 '채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우정'이나 '사랑' '결혼'과 연결시켜 'bond'를 '유대'나 '끈' '굴레'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목은 '자유의 유대'가 된다. 이는 곧 '자유와 맺어진 유대'라는 뜻이다.

채플린의 유일한 선전 영화로 알려졌던 '더 본드'
채플린의 유일한 선전 영화로 알려졌던 '더 본드'

'Liberty Bond'와 'The Bond of Liberty', 즉 '자유채권'과 '자유의 유대'라는 이름의 차이를 음미해 보자. '자유채권'은 '자유'보다 '채권'에 방점이 찍힌다. 이로써 '어려운 경제 용어'가 되며 '돈'이나 '부담'으로 다가선다. 하지만 '자유의 유대'는 다르다. '자유'와 '유대'가 균형을 이루며 '부담'보다는 '편안함'을 준다. '자유'는 앞선 에피소드에 등장한 '우정' '사랑' '결혼' 등 따뜻하고 친근한 정서적 용어와 동급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유'와 그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는 미국의 상징이다. 따라서 'The Bond of Liberty'라는 제목은 'Liberty Bond'는 물론 미국의 민주주의와도 연결된다. '자유와 유대'를 맺은 우리는 '미국과 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유채권'을 사야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 에피소드의 첫 장면에 '자유의 여신'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영화는 독일의 카이저가 '자유의 여신상'으로 분장한 여배우를 희롱하자 미국의 평범한 군인이 이를 막아준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 에피소드의 스토리도 단순하다. '국민'을 대표하는 찰리가 '정부'를 대표하는 엉클 샘에게 돈을 주면 엉클 샘은 찰리에게 채권을 준다. 엉클 샘은 또 이 돈을 '산업'의 대표 기업에게 줘 무기를 생산하게 한다. 찰리의 돈이 국가의 산업과 군사력을 강화시킨다는 의미다. 찰리는 '리버티 본드'라고 쓰인 망치로 카이저를 때려잡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채플린이 천재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영화 <더 본드>는 그런 그가 일주일 만에 후다닥 만든 10분짜리 선전영화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그만이 갖는 영민함이 배어 있다. 그는, 언뜻 보기에 단순한 스토리를 갖는 네 편의 에피소드로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어 냈다. <더 본드>는 미국 정부의 전시 채권인 '리버티 본드'의 홍보를 위한 선전물이다. 채플린은 이를 '리버티'와 '본드'로 나눈다. 그리고 '리버티', 즉 '자유'를 네 편의 에피스드를 통해 '우정' '사랑' '결혼'과 병치(竝置)시킨다. 그를 통해 '본드'는 그저 '채권'이 아닌 '유대'의 의미를 갖게 만든다. 우정, 사랑, 결혼처럼 우리는 '자유와의 유대'를 지키기 위해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채플린이 영화를 통해 영국과 미국 정부에 기여한 것은 이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10년 전인 2011년 얘기가 확 바뀌고 만다. 그해 6월 '기록 왕' 채플린이 영화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 채플린 영화가 한 경매시장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젭트(Zepped)>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1916년 제작된 7분짜리 선전 코미디물이었다. 제목 <젭트>의 정확한 의미가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 본토를 폭격한 이력이 있는 독일의 비행선 제플린(Zeppelin)에 대한 불안을 없애기 위해 제작됐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애니메이션 기법 중 하나인 스톱 모션(Stop Motion)의 초기 형태까지 삽입돼 있어 귀한 영화로 대접받았다. 그 결과 당시 경매에 10만 파운드(당시 달러 환산 약 16만5000달러)가 넘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그 가격에 응찰하는 이가 없어 최종 낙찰은 없었다.

채플린의 또 하나의 선전 영화로 밝혀진 1916년 작 '젭트'. 채플린의 영화 목록에 없던 '젭트'가 2011 경매시장에 나와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채플린의 또 하나의 선전 영화로 밝혀진 1916년 作 '젭트'. 채플린의 영화 목록에 없던 '젭트'가 2011년 경매시장에 나와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볼 수는 없어도 이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몇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그가 제작 또는 출연했던 제1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 즉 <어깨총>이나 <더 본드>보다 무려 2년이나 앞서 있다는 점이다. 1916년이면 영국이 지원제에서 징병제로 병역제도를 바꾼 뒤며 영국의 언론인 노스클리프가 채플린의 병역기피를 의심하며 격렬하게 비난했던 시점이다. 이 무렵 채플린이 제작이든 출연이든 영국의 선전영화에 간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외관상 그럭저럭 잘 넘어간 것으로 보였던 채플린의 병역 문제가 갖는 이면(裏面)의 한 부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젭트>의 제작이 채플린에 대한 노스클리프의 비난 시점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또한 이 영화에 대한 채플린의 간여도와 간여 배경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영화에 관한 한 결벽에 가까운 완벽주의를 추구하던 채플린이 탄생배경조차 모호한 선전물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 채플린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영국정부에 대해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넘을 만큼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사실이다. 대외비(對外秘)로. 이 분명한 사실에서 '가설' 하나를 만들 수 있다. 1917년 다시 점화된 채플린의 병역문제에 대해 영국정부는 매우 이례적으로 채플린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면죄부를 줬다. 왤까? 혹시 채플린의 이 같은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 <더 본드>, 선입견 깨고 100년 평가 바꿔야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 열두 번째 시리즈는 1918년 제작된 채플린의 유일한 선전영화 <더 본드>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 나갔다. 이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다양한 경제 상황을 되돌아 봤다. 이제 시리즈를 마무리할 시점이다. 돌이켜 보면 이 시리즈는 매우 길었다. 할 얘기가 아주 많았던 것이다. 자료도 많았고 읽기도 많이 읽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할 얘기가 아직도 많이 남았다. 그러나 이 정도에서 멈춰야 할 것이다. 시간도 많이 갔고 글의 양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다음 두 가지는 꼭 해야 할 것 같아 간단히 짚고 넘어가련다.

첫째는, 영화 <더 본드>에 대한 재평가 또는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이 영화에는 '전시 채권 선전영화'라는 꼬리표가 붙어 건성으로만 읽혔던 경향이 강하다. 병역, 결혼, 영화계 업적 등 채플린 본인이 맞았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고 영화의 구성 요소를 재배치하면 이 영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또는 완전히 거꾸로 된 새로운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이에 대한 글을 상당량 써놨지만 너무 길고 '기사'라는 형식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게재는 포기했다. 향후 필자는 시간이 닿는 한 기사가 아닌 논문 등 다른 형식을 빌려 이 영화의 재해석 및 재평가를 다뤄 볼 생각이다.

둘째, 1917년 창설돼 제1차 세계대전의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운 미국의 선전기구 '공보위원회(CPI, 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에 대한 얘기를 못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선전ㆍ선동 등을 거론하면 나치의 히틀러나 레닌, 스탈린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 의미에서의 선전ㆍ선동은 이 기구, 즉 미국의 CPI가 원류다. CPI의 활동은 진짜 중요했다. 전쟁과 연준, 러시아 혁명, 영화, 채플린 등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역사의 물줄기를 한곳에 담은 저수지였다. 독일의 카이저는 "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졌다"며 영국과 미국의 선전에 패했음을 고백했다. 훗날 정보왜곡과 언론조작으로 악명을 떨쳤던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베네이즈(Edward Bernays)도 여기 출신이다.

CPI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중요한 역할을 계속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볼셰비키 혁명 직후 러시아에 상륙, 볼셰비키와 싸우던 반혁명 세력을 위한 선전ㆍ선동을 주도했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다. 이때 CPI가 내세웠던 주요 무기가 바로 영화였다. 높은 문맹률과 정치ㆍ경제적 후진성에 찌든 러시아의 대중을 설득하는 데 이만한 무기가 없다고 봤다. CPI는 아직 볼셰비키의 손이 닿지 않는 지방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들의 주 업무는 엄청난 양의 영화를 틀어주며 공산주의의 폐해와 자유민주주의 필요성을 대중에 알리는 것이었다. CPI의 이 같은 활동은 이후 소련 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초기 러시아 영화의 비약적인 발전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베르토프, 에이젠슈타인, 푸도프킨 등 세계영화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이들은 어떻게 영화를 접했을까? 게다가 혁명 후 볼셰비키가 전국을 장악할 수 있었던 1922년 경 이들은 모두 20대에 불과했다. 유럽 그 어느 나라보다 후진적이었던 러시아였다. 난리통에 영화를 상영할 곳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들 젊은이들은 어떻게 그 거대한 영화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몇몇 해석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에도 CPI의 역할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영화에 관한 한 CPI가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을까? 영향을 줬다면 얼마나 줬을까? 어쩌면 이 같은 시각이 러시아 초기 영화의 발전사를 가렸던 어두운 베일을 벗겨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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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2013)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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