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말 파리 패션商 마네킹을 외국에 보내 새 시즌 유행 스타일 소개
英佛무력 대치 중 英귀부인 요청으로 패션 인형에 '불가침 통행증' 발행
며칠 새 때아닌 연미복이 항간의 화제가 됐다. 친일과 연관 지은 정치권의 이전투구 덕분이다. 제비가 강남으로 떠나려면 아직 한참 남긴 했지만 논쟁 와중에 국민은 연미복이 19세기 유럽에서 등장했다는 둥 때아닌 상식 공부를 하게 됐다.
패션사 관련 책을 뒤적이려니 『스타일 나다』(조안 드잔 지음, 지안)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의 프랑스학과 석좌교수가 패션과 유행의 역사를 짚은 책인데 흥미로운 사실이 그득하다. 이 중 눈에 들어온 대목은 전쟁을 이겨낸 '패션 인형' 붐. 요즘 보는 마네킹과 비슷하지만 말 그대로 인형만 한 소형이 초기패션 마케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단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옷을 대량 생산하는 '패션산업'은 유럽에서도 17세기에서야 등장했다. 때맞춰 고객층을 넓히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 고안되었으니 처음은 미디어였다. 167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비제란 이가 처음으로 최신 유행을 다루는 〈르 메르퀴르 갈랑〉이란 신문을 창간했다. 파리 외곽의 소비자들에게 패션 정보를 전달하던 이 신문은 1670년대 후반부터는 스타일을 상세하게 묘사한 판화를 싣는 혁신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막대한 비용 탓에 얼마 못 가 중단되었다.
이어 해외 패션니스타들을 겨냥한 새로운 마케팅 도구가 등장했으니 바로 '패션 인형'이다. 옷을 입히기 편하도록 관절 인형 형태로 만들어진 이 인형들은 실제를 방불케 하는 최신 스타일로 꾸며졌다. 17세기 말에 이르면 파리 패션 상인들은 이런 작은 마네킹을 외국 상점에 보내 새 시즌에 유행할 스타일을 소개하며 여인들의 소비욕구를 부추겼다. 효과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현지 여성들은 패션 인형의 도착을 학수고대했고 신문에서는 슈퍼 모델이 방문하기라도 한 듯 대서특필하곤 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보스턴이나 뉴욕 같은 곳에서는 패션 인형을 한번 보는 데 관람료를 내야 했고, 자세히 보기 위해 빌리려면 웃돈을 세 배나 줘야 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특히 런던에는 프랑스의 패션 인형이 다달이 공급되었는데 전쟁의 열기를 비껴갈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712년 일이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 동안 군사적 대치 상태였다. 이는 무역전쟁으로 번져 프랑스 패션 인형이 영국 패션매장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그러자 다급해진 귀부인들이 전쟁에 반대하며 '나무 마드무아젤'을 다시 들여올 수 있게 해달라고 로비를 펼쳤다. 결국 "프랑스제라면 모조리 비난받는" 상황에서도 패션 인형에 한해 '불가침 통행증'을 발행해주기로 양국이 합의하기에 이르러 종전 한 해 전에 패션 인형이 런던에 재등장할 수 있었다.
가히 프랑스 스타일의 외교적 승리라 할 이런 에피소드를 접하자니 연미복이 가엾어진다. 제비꼬리 모양의 이 예복은 그렇잖아도 좀처럼 보기 힘든데 애꿎게도 정치판의 구설에 올랐으니 말이다.
---------------------------------------------------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