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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⑱채플린 발목 잡은 '추문'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⑱채플린 발목 잡은 '추문'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08.3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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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영화가 두 배의 상영시간으로 늘려져 방영되면서 '저작권 싸움'에 휘말려 곤욕
출생지를 프랑스로 만들고 아버지를 비롯한 지인을 '악인'으로 그린 불법 서적 나돌아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 채플린의 병역 미필 문제 꼬집어

이게 다가 아니었다. 4월에는 새로운 시련이 그를 찾았다. 채플린이 앞서 일했던 영화사 에사네이가 채플린의 영화 <카르멘에 대한 찰리 채플린의 희작>을 개봉했던 것.

채플린의 영화가 맞기는 했지만 사전 동의 없이 상영 시간을 두 배나 늘렸던 게 문제였다. 채플린은 이 영화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엉성하고 허접한 영화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 있어 며칠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고심 끝에 그는 결국 법에 호소하기로 결정했다. 저작권을 침해받았다며 배급금지요청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재판은 쉽지 않았다. 배급금지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이후에도 이 사건은 오랜 기간 그를 괴롭혔다. 최종 판결 역시 그에게 불리하게 나왔다.

그해 9월 그는 또 다른 시련을 겪어야 했다. 뜬금없이 자신의 자서전이 출판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찰리 채플린 자신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급하게 이 책을 구해본 채플린은 경악했다. 날조된 내용이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채플린의 출생지를 프랑스로 만들었고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인들을 망나니나 악인으로 그렸다. 나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채플린)'는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는 시각이었다. 채플린은 이 책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는, 당연히, 이겼지만 상처가 컸다. 공식적으로 팔리지는 않았지만 몇 권의 책이 빠져나갔고 이후 상당 기간 채플린의 이미지를 깎아 먹었다.

채플린의 병역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 메일’의 사주이자 언론인 알프레드 노스클리프. <br>
채플린의 병역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 메일'의 사주이자 언론인 알프레드 노스클리프.

1916년 채플린은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든 한 해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를 괴롭혔던 것은 병역 문제였다. 왤까?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는 그의 국적 문제다. 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영국인이었다. 영국 국적을 포기한 적도, 미국 시민권을 받은 적도 없었다. 이 문제는 당시에도 많은 이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하지만 지금껏 명쾌한 해석은 없다. 그저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한 질문과 그가 한 대답이 인구에 회자될 뿐이다. 기자는 "왜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느냐"라고 질문했고 이에 대해 채플린은 "나는 세계시민이며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멋있는 말 같지만 이 역시 흔쾌히 답을 주지는 못한다.

두 번째는 전쟁의 양상이었다. 앞서 말했듯 전쟁 초기 영국은 물론 대부분의 참전국에서 전쟁을 보는 시각은 비교적 낙관적이었다. 단기전, 그리고 국지전으로 끝날 것으로 봤다. 그래서 영국은 지원자 중심으로 병력을 구성했다. 그래도 200만의 병력이 모였다. 하지만 전쟁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전쟁이 장기전ㆍ소모전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의 범위도 넓어져 더 이상 국지전으로만 보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각 나라들은 결국 '총력전(Total War)' 체제에 돌입했다. 전쟁의 승패에 국가의 모든 것을 걸었다. 영국도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해야 할 상황이었다. 더 이상 지원자로만 병력을 메꾸기 어려웠다.

■ 징병제 도입 英, 좌불안석 채플린

영국도 결국 징병제를 도입하기로 한다. 하지만 지원제에서 징병제로 바로 간다는 것은 무리가 따랐다. 그래서 절충안이 나왔다. 지원적 징병제(Voluntary Conscription). 지원제와 징병제의 혼합형 충원제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군 입대 대상 연령자들은 "나라에서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입대하겠다"는 내용의 '입대희망증명서'를 쓴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 제도는 당시 새로 임명된 충원 책임 장성이었던 더비 백작(Earl Derby)의 이름을 따 '더비계획(Derby Scheme)'으로 명명됐다. 계획은, 일단은 성공적이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국가의 요구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지원하겠다는 청년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었다. 결국 1916년 1월 영국 역시 전격적인 징병제를 도입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 채플린의 병역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1916년 3월. 징병제를 도입한 지 두 달이 지난 뒤였다. 영국 정부와 언론은 국민의 사기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 '병역=애국', '병역기피=배신'의 등식을 만들어야 했다. 채플린은 좋은 표적이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영화 스타요 감독인데 미국에서 활동하며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이런 자를 그냥 내 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국민정서가 필요했다. '데일리 메일'이 뮤추얼 영화사와 채플린의 계약을 정면으로 비판한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었다.

칼럼을 쓴 알프레드 노스클리프(Alfred Northcliff)는 세계 최대 잡지그룹인 '아말가메이티드 프레스(Amalgamated Press)'와 일간신문 '데일리 메일'의 사주이면서 언론인이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회에 주는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채플린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스클리프는 일단 그 정도에서 그쳤다. 더 이상의 비난은 없었다. 채플린은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전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1917년 들어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전'을 선언했고 윌슨은 마침내 미국의 참전을 결정했다. 그러자 노스클리프의 날카로운 펜 끝이 다시 채플린을 향했다. 1917년 6월 그가 『위클리 디스패치(Weekly Dispatch』)에 남긴 칼럼을 보자.

"(채플린은) 비록 몸집은 작지만 ······ 두 다리만큼은 아주 튼튼하다. ······ 호각 소리를 듣고 참호에서 뛰어 나와 돌격할 능력이 있음을 암시한다. 찰리의 친구들은 그가 전시 34개월 동안 12만5000 파운드를 훨씬 웃도는 돈을 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내년에는 ······ 퍼스트 내셔널 이그지비터(First National Exhibitor)와 100만 파운드가 넘는 금액으로 계약돼 있다. ······ 만약 채플린이 ······ 군에 입대한다면 현재 미국에서 연기하고 있는 최소한 30명의 다른 영화 연기자들 역시 더 이상 영국군에 입대하지 않는 구실을 댈 수 없을 것이다. ······ 신병으로 자원해 자신이 자랑스러운 영국 국민임을 보여주는 것은 찰리의 의무이다."

이번 비판은 이전 것보다 훨씬 노골적이다. "남들은 전장에서 죽어 가는데 너는 돈이라 버느냐"는 말과 다름 아니었다. 비판은 '병역기피'라는 법적 영역을 넘어 윤리ㆍ도덕적 영역으로까지 넘어갔다. 여기에 '돈' 문제까지 제기됐다. 독자들의 시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이로써 자칫 채플린은 교묘한 눈속임으로 전쟁을 기피하는 비열한에, 전쟁에 나설 용기가 없는 겁쟁이,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돈이나 버는 이기주의자가 될 판이었다. 실제로 이후 채플린에 대한 비판자들은 이 칼럼이 덧씌운 이미지로 채플린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채플린도 변해야 했다.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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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이코노텔링 대기자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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