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 수입 33년'…예전엔 '무역역조의 주범' 눈총
'외제차 수입 33년'…예전엔 '무역역조의 주범' 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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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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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개방 첫 해엔 고작 10대 팔려 …2011년에 10만대 돌파
현대ㆍ기아차, 자극 받아 '기술'과 '서비스' 월드 클래스 진입

최근 4월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될지 모른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만약 적자가 현실화되면 2012년 5월부터 약 7년간 이어져온 흑자 행진이 일단 멈추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로 큰 고통을 겪은 터라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이란 말만 들어도 놀란 새처럼 가슴이 뛴다.

1980~90년대엔 수입차는 여론의 표적이 되다시피 했다. 경상수지가 나빠졌다는 소리가 들리면 곧잘 수입차는 눈총을 받았다.수입차를 타는 사람들은 몰지각하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수입차가 들어오면서 국내 완성차업계는 자극을 받아 기술과 서비스를 대폭 개선하는 전기를 마련했다./수입차 업체 각사 공개
1980~90년대엔 수입차는 여론의 표적이 되다시피 했다. 경상수지가 나빠졌다는 소리가 들리면 곧잘 수입차는 눈총을 받았다.수입차를 타는 사람들은 몰지각하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수입차가 들어오면서 국내 완성차업계는 자극을 받아 기술과 서비스를 대폭 개선하는 전기를 마련했다./수입차 업체 각사 공개

이 보도를 접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상품이 있다. 바로 수입자동차다. 1980~90년대엔 수입차가 언론의 표적이 되다시피 했다. 경상수지가 나빠졌다는 소리가 들리면 곧잘 수입차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무역수지 악화에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부유층이 고급외제차 구매에 열을 올린다며 공격의 날을 세우곤 했다. 수입 통계까지 인용해가면서 그랬다.

당시 수입외제차에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외화 낭비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 초래 ▷겨우 성장기에 접어든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위축 초래 ▷과소비 및 사치 풍조 조성 ▷외제 선호로 인한 계층 간 위화감 조성 등등. 지금 시각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지만 그런 시기가 엄연히 있었다. 외제차 수입상 입장에선 억울할 법도 했다. 세금 낼 것 다 내 가며 적법하게 수입해다 파는데도 눈치란 눈치는 다 봐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시절에 비하면 요즘 수입차 시장은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다.

지금은 주변 곳곳에서 국산차처럼 흔히 볼 수 있는 게 외제차다. 국내 승용차 판매 시장의 약 17%(2018년)를 수입차가 차지할 정도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림잡아 10대 중 2대꼴로 수입승용차가 팔린다는 얘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인식의 변화다. 요즘 수입차 산다고 누가 뭐랄 사람 잘 없다. “집은 전·월세로 살아도 차는 외제차 몬다”는 게 세태(世態)가 되다시피 했다. 젊은 층의 구매 참여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부유층의 신분 과시용 쯤으로 여겨졌던 수입차가 요즘은 일반 대중이 꼭 갖고 싶은 애호용품 중 하나로 변했다.

국내 수입차 시장 역사는 올해로 33년째를 맞았다. 1987년 외제차 수입이 허용된 이래 실로 험난한 여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87년 1월, 전두환 정부는 2.0L 이상 대형차와 1.0L 이하 소형차 시장을 우선 개방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88년 4월(노태우 정부 초기) 전 차종에 대한 배기량 규제를 풀고 완전한 개방체제에 들어갔다. 험악한 국내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자동차 수입개방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86~88년)의 정치·경제적 호조건에 힘입은 바 크다. 이때는 소위 3저 호황 덕분에 보기 드물게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된 시기였다. 88올림픽도 국제 사회에 개방된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 주는 정책 결정에 호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개방 초기 판매 대수는 미미했다. 첫해 87년 판매 대수는 불과 10대(승용차 시장점유율 0.004%)였다. 88년엔 판매량이 263대(0.08%)로 약간 늘었다. 이어 89년 1,293대(0.25%), 90년 2,325대(0.37%)로 시장이 커진다. 50%였던 관세도 단계적으로 내려가 90년엔 20%가 됐다. 이처럼 초창기 판매 대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판매 증가율에 초점을 맞춰 비판을 계속했다.

그 후에도 수입차 시장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97년의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은 수입차 시장에도 대어급 악재가 됐다. 그런 가운데 한국이 점차 자동차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외제차 판매 전선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한국에 직접 판매 교두보를 구축하고 나선 것. 95년 BMW를 시작으로 크라이슬러, 포드가 국내 법인을 설립했다. GM도 99년부터 본격 판매활동에 들어갔다. 볼보·사브가 승용차 직판체제를 갖췄고, 2000년 토요타도 국내 법인을 설립했다.

2011년 수입차 판매가 처음으로 10만대를 넘어섰다. 10만5,037대로 국내 승용차 시장의 7.98%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2012년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10%(10.01%)를 기록했다. 2015년 점유율 15% 돌파(15.53%, 24만3900대)에 이어 지난해엔 16.73%(26만705대)로 올라섰다. 현재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는 승용 및 상용차 20개 회원사가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지내놓고 보니 수입차는 국내에서 험난한 여정을 걸으면서도 긍정적인 기여를 많이 했다. 무엇보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글로벌 강자(6위권)로 크기까지 묵과할 수 없는 순기능으로 작용했다. 판매시장에서 고객을 중시하는 문화를 전파했고, 고객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다. 성능이나 애프터서비스, 기술, 차세대 신차 개발 등의 면에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을 자극해 한국 차의 국제경쟁력 강화에도 일조했다.

이처럼 수입차의 자극을 받는 가운데 한국 자동차 산업은 70년에 가까운 여정을 달리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다. 2018년 기준 생산 402만8천대, 내수 155만2천대, 수출 244만9천대를 실현해 세계 6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글로벌 5위권까지 진입했던 국산차는 수입차 상승세와는 달리 2016년부터 생산과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는 등 후진을 계속해 주목된다. <성태원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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