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9:05 (금)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57) 宋수반에 찍혀 '대기발령'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57) 宋수반에 찍혀 '대기발령'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1.04.0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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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브리핑' 잘못했다며 보직 해임
내각수반 비서실로 가라했지만 직책은 물론 책상도 없어
최고회의와 갈등 빚은 송 수반 물러나면서 '백수' 에 햇살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이 막바지에 달했던 1962년 초,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연두 순시차 경제기획원으로 오게 되어 있었다.

송요찬 내각수반은 박 의장에게 보고할 내용을 자신에게 먼저 브리핑하도록 지시했다. 기획원 간부들이 차례차례 보고를 하는데, 송 내각수반이 유독 쓰루 기획조정관에게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모든 보고가 끝나자 송 수반의 총평은 "기획 조정관(쓰루)은 계획을 잘 모르는구먼"이라는 한마디로 마무리되었다. '무식하다'는 그 총평의 여파는 컸다. 무식하다는 소리는 그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그 후에도 그는 자신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남에게서 들은 적이 없다). 내각수반의 '잘 모르는구먼'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송 수반은 사무실에 돌아가자마자 쓰루를 보직에서 해임하고 밑도 끝도 없이 '내각수반 비서실'로 대기 발령을 냈다. 기획원에서 책상을 빼냈으니 (임무도, 직책도, 하다못해 앉아 있을 책상조차 없는) 자기 사무실에 와서 근신하고 있으라는 얘기였다.

재무부 출신 쓰루는 처음부터 부흥부 출신 틈바구니에서 외인부대로 고생을 했다. 그래서 당시 보직해임을 부흥부 출신들의 등쌀의 결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백수가 되었다. 대기 발령받은 내각수반실에는 사표도 내지 않고 출근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낭인생활을 했다. '뚱뚱한 자'(송 내각수반은 비대했다), '무식한 군인'에 대한 쓰루의 편견은 더욱 굳어져갔다.

송요찬 내각수반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오른쪽)에게 보고할 내용을 자신에게 먼저 브리핑하도록 지시했다. 기획원 간부들이 차례차례 보고를 하는데, 송 내각수반이 유독 쓰루 기획조정관에게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모든 보고가 끝나자 송 수반의 총평은 "기획 조정관(쓰루)은 계획을 잘 모르는구먼"이라는 한마디로 마무리되었다. '무식하다'는 그 총평의 여파는 컸다. 무식하다는 소리는 그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보직에서 해임되어 주변에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그는 '무식한 군인 놈들'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의 자식들이, 검은 안경을 끼고 그토록 무섭게 보이는 군인들이 사실은 '무식한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박정희라는 최고 권위자가 자기를 알아준다는 느낌을 가지기 전까지 그의 입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쓰루가 비운 자리에는 어느 장성 출신 인사가 발령받았다. 김유택 경제기획원 원장은 그의 신임 인사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원장 비서실에서 "신임 기획조정관이 부임 인사 왔습니다"라고 해도 김 원장은 "일없어. 나가 있으라 해"를 거듭했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게까지 전해진 이 소동은, 박 의장(소장)이 군대 선배인 송 내각수반(중장)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된 듯했다. 결국 국정에 대한 군인들의 전횡을 꾹 참아왔던 김 원장이 3월 2일에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그날로 송 수반이 겸임으로 기획원 원장 자리까지 차고앉았다.

김 원장의 사퇴로 송(요찬)-송(정범) 라인은 공식화되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기획원과 그 원장을 둘러싼 권력 구조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1964년 5월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이 기획원 장관으로 올 때까지, 기획원 장관의 평균 임기는 5.1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송-송 라인과 김(유택)-김(학렬) 라인 간의 갈등은, 넓게 보면 졸지에 들어선 군사정권 안에서 군 출신과 민간 출신이 정부 내 역할 분담을 둘러싸고 빚은 마찰이었다. 좁게 보면 군사정권과 더불어 갓 출범한 내각수반실과 경제기획원이 누가 경제정책을 주도할 것이냐, 즉 행정부 안의 위상을 걸고 상호 간에 벌인 갈등이었다.

또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경제개발계획을 내각수반실이 주도하여 의욕적으로 수립할 것이냐, 경제기획원이 주도하여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하며 실행력 있게 짤 것이냐에 관한 정책관의 다툼이었다.

그 후 쓰루는 한동안 오갈 데 없는 낙동강 오리알로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낭인생활은 걱정한 만큼 길지는 않았다. 증권파동, 화폐 개혁 등 주요 정책에 관해 최고회의와 갈등을 빚어온 송 수반이 7월에 사퇴를 한 것이다. 송-송 라인의 다른 쪽 끝자락을 쥐고 있던 송정범도 기획원 부원장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송-송 라인의 와해는 기획원 내의 부흥부 세력을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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