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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개만도 못한 '시장후보'
[김성희의 역사갈피] 개만도 못한 '시장후보'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0.11.3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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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캘리포이나 소도시서 ' 잡종견 후보 '가 시장에 당선
천안문 사건으로 비난여론 시달리던 중국서 '민주주의' 조롱
"최악의 인재(人災)는 천재악당 아닌 광인이나 바보의 소행"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은 민주주의 망신시킨 일화도 정리
ⓒ이코노텔링그래픽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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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민주주의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종전 후 선거에서 패배해 수상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처칠이 했던가.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실을 하려면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란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집단지성이니 뭐니 해도 대중이 언제나 바람직한 선택을 하는것은 아니기 때문에 '차선'이란 이야기가 그리 틀린 것은 아니다.

198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수놀이란 작은 도시에서 보스코 라모스란 리트리버 잡종견이 시장으로 뽑혔다. 개 주인이 동네 술집에서 말싸움 끝에 화가 나서 보스코를 시장선거에 출마시켰는데 인간 후보 2명을 물리치고 당당히 압승을 거두었단다. 그리고는 1994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10여 년을 시장으로 재임했다. 지금도 보스코의 동상이 서 있는 등 수놀 주민들은 보스코를 좋게 추억하고 있다니 명시장이었던 듯싶다.

보스코는 재임 중 단 한 번 국제적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중국의 천안문 사태 이후 서방의 공격을 받던 중국 측이 보스코를 거론하면서 "서방 민주주의는 인간과 개의 구분이 없다"고 비난했을 때였다. 그러자 보스코는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 영사관 앞에서 중국 유학생들과 함께 민주화 촉구 시위를 벌였다나.

이건 『인간의 흑역사』(톰 필립스 지음, 윌북)에 실린 이야기다. 이 책은 영국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지은이가 말 그대로 인류문명사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화를 모은,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이 중 민주주의를 망신시킨 일화를 모은 '대중의 힘'이란 장에 보스코 이야기가 나온다. 무릇 개인이나 조직이나 묻어두고 싶은 '과거'가 없기란 극히 드물지만 이 책을 보다 보면 '어쩌면 세상에 이런 일이…'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지은이가 전문 역사가가 아닌 만큼 '가짜 뉴스'를 모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이기도 하다.

지은이의 유머러스한 문투는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보스코 이야기를 하면서 이 개가 여러 암캐들과의 사이에 수많은 새끼를 두었다는 소문이 있다면서 "이 역시 상당히 정치가스러운 면모"라고 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저 웃어넘길 내용만 담은 것은 아니다. 히틀러가 게으르고, 독선적이고, 무능했지만 대중을 사로잡는 정치적 수사를 펼치는데 특출난 재주가 있었다면서 나치가 선거를 통해 독일 의회에서 최대 의석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대중의 힘'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역사상 최악의 인재(人災)들은 대개 천재 악당의 소행이 아니다. 오히려 바보와 광인들이 줄지어 등장해 이랬다저랬다 아무렇게나 일을 벌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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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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