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22:15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 英소드(sword)라인의 품격
[김성희의 역사갈피] 英소드(sword)라인의 품격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0.11.02 0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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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당서 여야 마주 보게 앉게하고 긴 칼 휘둘러도 닿지 않도록 '격리'
우석대 박상익 명예 교수의 『사진인문학』에 덧붙여진 인문학적 성찰
으르렁 거리면서도 파국 맞지 않는 길냥이 행동서 '동물 국회' 꼬집어
1차세계대전때 귀족 청년들의 자진 참전 이어져 대 끊긴 명문가 많아
ⓒ이코노텔링그래픽팀

"항상 여론을 좇아서 사는 것도 쉬운 일이며, 또한 고독 가운데서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은 대중의 한가운데 살면서도 고독에서 지닐 수 있는 독립성을 좋은 기분으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19세기 미국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말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이 구절은 『박상익의 사진인문학』(정한책방)에서 만났다. 진영이 모든 것에 우선해서, 오랜 친구는 물론 가족 사이에서도 얼굴을 붉히는 일이 드물지 않은 만큼 꼭 새겨들어야 할 쓴 소리가 아닌가 한다.

우석대학교 명예교수인 지은이는, 서양사학자이자 뛰어난 번역가로 눈 밝은 이들이 좋아하는 저자 중 한 명이다. 뒤늦게 사진에 취미를 붙인 그가 출퇴근길에 찍은 일상의 사진에 인문학적 성찰을 덧붙인 글을 모은 것이 이 책이다. 영화, 책은 물론 예전의 금성라디오까지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주로 역사, 그중에서도 서양사의 일화들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국의 하원 의사당은 여야가 마주 보고 앉게 좌석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사이에 두 줄의 빨간색 '소드 라인Sword Line'이 그어져 있단다. 의회정치 초기에 의원들 사이에 폭력 사태가 빈발하자 긴 칼을 휘둘러도 상대방에 닿지 않도록 2.5미터 너비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그은 것이란 설명이다. 이 글은 길냥이 두 마리가 서로 쏘아보고 있는 사진에 곁들여진 것인데 이렇게 마무리된다. "금방이라도 상대를 덮칠 것처럼 보이지만 둘은 보이지 않는 '소드 라인'을 넘지 않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제 갈 길을 떠난다. 동물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21세기에 동물만도 못한 국회는 부끄럽지 않은가."

'진짜와 가짜'란 제목의 글은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를 화두로 제1차 세계대전 때 많은 영국 귀족 가문의 대가 끊겼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귀족 청년들이 앞 다퉈 초급 장교로 전방 근무를 자원하는 바람에 전사자가 는 탓이었는데, 1915년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재학생의 3분의 2 이상이 군 복무를 자원했고 그중 30%가 목숨을 잃었단다. 국가의 기둥들이 스러지자 당황한 영국 정부는 우수한 두뇌를 활용해서 후방에서 참모나 정보장교로 근무하는 것도 애국하는 것이라 호소할 지경이었다나. 우리 사회 일부 권력층의 모습과 영 대조되지 않는가.

지은이는 이를 두고 이것이 '보수'의 진정한 면모, 보수는 명예롭다며 가짜 보수도 많다고 지적하는데 필자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가졌는가 아닌가의 문제라고 보아서다. 이른바 '진보'라 해도 권력을 가지면 사람이, 행태가, 말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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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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