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23:10 (화)
중국 구석구석 탐색⑤장량의 사당
중국 구석구석 탐색⑤장량의 사당
  • 홍원선 이코노텔링 대기자(중국사회과학원박사ㆍ중국민족학)
  • wshong2003@hotmail.com
  • 승인 2019.03.30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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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머물 법한 신비한 기운 서려… '공을 이루고 물러간다'(功成身退) 눈길

중국에 온 후 처음으로 아침에 중국중앙방송 뉴스를 시청하다. 이란핵협상과 그리스사태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핵협상과 관계없이 미국과의 투쟁은 결코 끝날 수 없다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이란의 행보는 어떤 각도에서 보면 여전히 페르시아제국의 연장인 것 같다. 어느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주체와 자존을 드러내고 지켜가고자 하는 것을 보면 현재 어느 세계 패권국 못지 않다는 생각이 잠시 든다. 이어 일기예보다. 북경과 하북 일대의 온도가 40도, 산서성은 37-40도의 고온이고 그 밖의 중동부 지역도 35-37도의 고온이다. 서울도 35도 이상이라는 소식도 듣다.

장량사당의 한 전각의 편액 ‘功成身퇴’공을 이루면 물러난다. 장량은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 과업을 완수한 후 미련없이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 쯔보산 중턱에서 은거하며 말년을 유유자적 신선처럼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후세에 귀감이 되는 것은 제왕의 스승이라는 높은 식견이나 뛰어난 지략이기 보다는 바로 이러한 확고한 進退觀에 있지 않았을지.
장량사당의 한 전각의 편액 ‘功成身退’공을 이루면 물러난다. 장량은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 과업을 완수한 후 미련없이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 쯔보산 중턱에서 은거하며 말년을 유유자적 신선처럼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후세에 귀감이 되는 것은 제왕의 스승이라는 높은 식견이나 뛰어난 지략이기 보다는 바로 이러한 확고한 進退觀에 있지 않았을지.

이어 특집방송에서 하얼빈에 소재했던 일본 관동군의 생체실험부대로 악명높은 731부대에 대한 방송이 나온다. 필자는 몇해 전 하얼빈을 여행하면서, 이 부대의 유적지를 참관한 바 있다. 이들의 소름끼치는 만행을 갖은 자료로 자세히 분석해둔 중국인의 의지와 집념에 경의를 표했던 기억이 아주 생생하다. 이날 방송에서는 부대원 규모가 3000-4000명 정도의 731부대의 연간 예산규모가 1천만엔 정도로 이보다 규모다 압도적으로 큰 관동군 일년 예산 2천만엔의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는 중국 전문가의 코멘트가 한동안 머리 속에 남았다. 중국전문가의 코멘트가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엄청난 경비를 쓴 부대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각종 독성물질의 생체실험과 화학가스 생물가스에 대한 실험과 함께 모골이 송연한 생체실험과 해부 얘기를 듣자니 살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조정에 나가서는 재상이요 물러나서는 신선이라.또 다른 편액에서는 ‘高尙絶倫’ ( 아주 고상하다 ), ‘明哲風高’ ( 명철하고 기품이 높다 )란 글귀도 보인다. 그의 높은 식견과 빼어난 인품을 엿볼 수 있는 편액이었다.
조정에 나가서는 재상이요 물러나서는 신선이라.또 다른 편액에서는 ‘高尙絶倫’ ( 아주 고상하다 ), ‘明哲風高’ ( 명철하고 기품이 높다 )란 글귀도 보인다. 그의 높은 식견과 빼어난 인품을 엿볼 수 있는 편액이었다.

아침은 이 지역에서 생산된 복숭아와 어제 사둔 사천지역의 특산과자를 먹었다. 이 과자는 각종 견과를 넣고 바삭바삭하게 구운 것으로 고소한 맛이 나고 영양도 풍부할 것 같은데 한근( 500g )에 10위안 전후 가격이다. 호텔방에서 식사가 미진하여 시내를 한참 돌아다닌 후에 국수 면발이 1.5cm는 될 정도의 넓은 냉국수를 주문해 먹었다. 이 국수는 간장과 식초 그리고 기름이 서로 어우러져 여름철에 먹기 좋다. 산서와 섬서 일대에 식초문화가 아주 발달해 있고 우리의 식초와 달리 아주 구수한 느낌을 준다. 튀기고 볶는 기름 위주의 중국 요리에서 또 다른 맛의 세계가 바로 식초라고 여겨지고 식초와 함께 향채( 우리말로는 고수 )라는 향신료를 넣으면 웬만한 중국음식은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냉국수(涼面)는 보통 2-3위안 한다. 향채는 먹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 그 맛이 역겨워 힘들지만 일단 입맛에 적응하면 이것 없이 중국음식의 맛을, 조화된 중국음식의 맛을 알기 어렵다고 생각되고 향채는 필수적인 야채 아니 향신료가 된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시외버스터미날로 가다. 한이 천하통일을 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개국의 원훈인 장량을 모신 사당이 있다는 류빠( 留壩 )행 버스표를 18.5위안에 샀다. 버스는 20여분 정도 시가지를 달리고 이어 깊은 계곡길로 들어섰고 울창한 숲이 눈앞에 나타났다. 댐이 보이고 계속 물과 숲을 구경하면서 주변 산천을 감상한지 2시간여 만에 류빠 현성에 닿았다. 버스를 내려 북쪽으로 약 2백미터 이동하여 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다. 양파목이버섯 무침과 계란고추채볶음 요리 등 2가지와 밥을 먹었다. 버섯무침에는 기본적으로 식초가 들어가고 기름과 특이하게도 산초도 좀 가미되어 구수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낸다. 각각 14위안씩이었다.

쯔보산 중턱에 자리잡은 장량의 사당은 가히 신선이 살았음직한 아름답고 그윽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쯔보산 중턱에 자리잡은 장량의 사당은 가히 신선이 살았음직한 아름답고 그윽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한중에서 류빠로 이동 중에 계곡에서 거대한 토목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을 보았다. 식당주인은 섬서성의 주요도시인 한중과 다음 여행 행선지인 빠오지(寶鷄 )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공정이라고 한다. 길을 내는 과정이 주로 계곡에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었고 간혹 강줄기가 길을 내기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구간에서는 터널을 뚫는 모습이 보였다. 옛날 옛적 길은 자연지형을 약간 변형하여 만든 것이었고 산악지역에는 잔도라 하여 노폭이 겨우 한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험하고 위험한 길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제는 산허리를 잘라내고 길을 만드는 과정을 넘어서 아예 교각을 세워 다리로 길을 만들고 교각을 건설하기 적절하지 않은 곳은 터널을 뚫어 길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되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4년 이후면 한중-빠오지간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지금 6시간 정도 소요되는 이 구간이 2시간내외로 단축될 것이라고 한다. 고속도로 건설현장을 보면서 이 넓은 대륙은 선진지역이 개발이 마무리되면 더 오지에, 덜 발전된 지역의 무궁무진한 건설수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곳 현성에서 장량의 사당까지는 다시 17km의 거리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나 출발 30분전인데 마을 주민인 듯한 사람이 모두 버스좌석을 차지하고 있다. 날씨도 덥고 피곤할 듯 하여 30위안에 오토바이택시를 타기로 하다. 3륜 오토바이에 차체를 얹은 엉성한 교통수단이다. 뒷자리에 앉아 시속 30km정도의 속도로 산길을 달렸다. 이 도로에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어 30분 동안 장량묘로 가는 과정에 만난 차량은 채 10대도 되지 않았고 친링(秦嶺)의 쯔보(紫柏)산 자락을 아주 느린 속도로 맑은 공기와 울창한 수목의 주변풍광을 즐기면서 가는 길이 아주 여유롭고 좋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곳 쯔보산에 은거한 장량은 바로 이 초정에서 가야금을 연주하거나 시를 읊는 등 신선처럼 생활했다고 한다. 은퇴 후 삶의 중심이 바로 이곳이었던 셈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곳 쯔보산에 은거한 장량은 바로 이 초정에서 가야금을 연주하거나 시를 읊는 등 신선처럼 생활했다고 한다. 은퇴 후 삶의 중심이 바로 이곳이었던 셈이다.

장량의 사당은 친링(秦嶺)산맥 남쪽 쯔보(紫柏)산록에 자리잡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장량의 10세손이 사당을 처음 지었으나 지금 전해오는 사당은 명, 청조시기 건물군이다. 사당에는 크게 6개 대원(大院)이 있고 모두 156칸의 방으로 이뤄졌으며 전체 부지는 14,200평방m에 이른다. 수많은 전각 가운데 한 편액에 쓰여진 글 “功成身退”( 공을 이루고 물러나다 ) 가 강하게 눈길을 끌었다. 환난과 고통은 함께 할 수 있어도 공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한 점이 돋보인다. 권력과 권세를 앞두고 이를 절제하는 것이 아주 어려울텐데 장량은 이를 실천하고 쯔보산 기슭에서 말년을 보내며 낮에는 농사도 짓고 밤에는 악기도 연주하며 신선같은 삶을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군왕의 스승이라는 그의 높은 식견보다도, 건국의 공헌보다도 높은 자기억제와 진퇴를 분명히 한 점이 범인이 더욱 따라 하기 힘든 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장량 사당을 참관하고 다시 오토바이택시를 타고 류빠 현성으로 되돌아오다. 류빠에서 다시 한중으로 가기위해 버스표를 구입했는데 노선이 동일함에도 차비는 17.5위안으로 올 때보다 좀 싸졌다. 왜 같은 구간을 운행하는데 올 때와 갈 때가 왜 가격이 다른지? 언뜻 19세기말 중국에서 20여년간 선교활동을 한 미국인 선교사 Arthur H. Smith가 쓴 중국인의 성격 ( chinese characteristics )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났다. 중국인들의 거리관념에 대해 쓴 부분으로 A와 B사이의 거리가 갈 때와 올 때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오르막이 있고 가기가 힘든 방향으로 거리는 더 멀리 표시되고 역의 방향으로 거리는 짧게 표시되더라는 구절이다. 지금 상황은 그 당시와는 다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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