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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지방(脂肪)이 '공공의 적'이 된 사연
[김성희의 역사갈피] 지방(脂肪)이 '공공의 적'이 된 사연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0.09.28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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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병리학자. 67년전 고지방 위주의 국민 '심장병 발병률 높다' 연구서 발단
오일 듬뿍 넣는 지방 요리 즐기고도 심장병 적은 프랑스와 이태리 배제오류
채소 잘 못먹고 동물성 지방 많이 먹는 '에스키모'의 건강한 삶도 설명 못해

책 제목에도 유행이랄까 사랑받는 패턴이 있다. 그중 하나가 '거의 모든'이다. 이건 2000년대 초반에 나온 『거의 모든 것의 역사』(빌 브라이슨 지음, 까치)의 영향이라 확언할 수 있다.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로 과학사를 섭렵하는 이 책은 좋은 책이란 평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그 후 메인 제목이나 부제(副題)에 '거의 모든'이란 표현이 들어간 책이 쏟아졌다. 인터넷서점에 검색해보니 200종이 넘을 정도다. 마치 '완결판'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살짝 빠져나갈' 여지도 있는 표현이어서 그만큼 애용되는 듯하다.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번에 소개하는 책도 그 부류에 속한다. 제목이 『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마틴 고언 지음, 부키)이니 말이다. 지은이는 영국의 철학자. 당연히 요리법이나 음식문화사, 맛집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이런 이야기도 있긴 하다) 대신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 현명한 식생활을 위한 조언을 다룬, 색다른 음식 관련 책이다.

데카르트, 니체며 마르크스가 영양소, 화학성분과 나란히 등장하는 이색적이면서도 꽤 진지한 책이랄까.

여기 '날씬해지려면 지방을 먹어라'란 챕터에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지방(脂肪)이 '공공의 적 1호'로 꼽히게 된 것은 앤셀 키스라는 미국 병리학자의 작품이란다. 그는 1953년 미국, 일본 등 6개국을 비교해 고지방 식사를 하는 나라일수록 심장병 발병률도 높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3년 후 키스와 그의 친구는 '지방이 심장병을 일으킨다'는 미국심장협회의 보고서를 썼으며 이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농림부는 국민을 위한 '건강 가이드라인'을 제작했다.

이 도도한 흐름의 출발점엔 함정이 있다. 키스는 오일이 듬뿍 들어간 고지방 요리를 즐기지만 심장병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조사에서 배제했다. 무엇보다 채소는 거의 먹지 않고 동물성 지방 위주의 식사를 하는 에스키모(이누이트)들이 균형 잡힌 식단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보다 건강하다는 '이누이트의 역설'을 설명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심장질활 발병률이 높아진 것은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심장질환이 발생하는 나이까지 생존하게 된 것도 원인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대세는 키스의 것이었다. 뜻있는 의사들은 압도적 여론에 밀려 키스의 이론을 공개적으로 반박할 의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지방 섭취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고, 나아가 치즈와 올리브유는 날씬하게 해주는 음식이라고 일러준다. 한데 이 책에서 얻는 자양분은 그런 지식보다 전문가의 말이라도 생각해가며 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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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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