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9 01:15 (금)
◇김수종의 취재여록⑮대통령궁으로 초대받은 '상추軍納'
◇김수종의 취재여록⑮대통령궁으로 초대받은 '상추軍納'
  • 김수종 이코노텔링 편집고문(전 한국일보 주필)
  • diamond1516@hanmail.net
  • 승인 2020.12.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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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는 남극 주둔군의 필수 식품…한국인이 공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통령 감탄
농장에 닭 기르게 해달라고 대통령에게 요청하자 즉석에서 "군수송기로 닭 보내 주라"
아문젠이 남극탐험 때 전초기지 였던 호텔에 투숙…'빙산의 사람' 흑백사진 눈길 끌어

비행기 안에서 문명근씨는 우수아이아 농장이야기를 꺼내 들려주면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과 자신이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우수아이아 바닷가 외딴 곳에 우리 농장이 있는데 농장 입구에 아르헨티나 국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매일 걸어놓아요." 그런데 어느 날 군사정권의 대통령이 지나다가 깃발을 보고 부하한테 물어보았던 모양이죠. 그래서 대통령이 농장에 들아 와서 시찰했는데 현지 사령관이 "파블로 문(문명근씨의 세례명)이 재배한 상추가 남극에 주둔한 군인들에게 제공되고 있습니다."고 보고한 겁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수도로 돌아간 대통령이 얼마 후 나를 불렀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대통령궁을 방문했죠. 대통령이 수고한다며 "나한테 부탁할 게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농장에 닭을 한번 길러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통령이 군복을 입은 비서를 부르더니 "파블로 문이 원할 때 군 수송기로 닭을 실어다 줘라."고 지시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때 수도에서 닭을 구입해서 군 수송기로 날라다가 닭을 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군사정권의 대통령이 지나다가 깃발을 보고 부하한테 물어보았던 모양이죠. 그래서 대통령이 농장에 들아 와서 시찰했는데 현지 사령관이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의 대통령이 지나다가 농장에 걸린 태극기 깃발을 보고 부하한테 물어보았다고 한다.대통령이 농장에 들아 와서 시찰했는데 현지 사령관이 "파블로 문(문명근씨의 세례명)이 재배한 상추가 남극에 주둔한 군인들에게 제공되고 있습니다"고 보고해 문명근씨는 그 덕에 아르헨티나 대통령궁으로 초대를 받았다고 한다. 사진(티에라델후에고 섬을 거닐고 있는 필자.마젤란이 이 지역을 처음 탐사하였을 때 반나체의 원주민들이 불을 피우는 것을 보고 '불의 섬'을 의미하는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란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이코노텔링 김수종 고문.

나는 믿기지가 않아서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가 설명해줬다."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전쟁 때까지만 해도 군인의 나라였어요. 최남단의 티에라델후에고 섬은 전략적 군사 요새입니다. 게다가 남극대륙은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곳이오. 3천명의 군인을 거기 주둔시킬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점을 두니 남극기지로 가는 우수아이아에는 대통령이 정례적으로 매년 방문하는 곳입니다. 상추는 남극주둔군의 필수 식품입니다. 그걸 한국인 이민 농장에서 공급한다는 얘기를 듣고 감탄했던 것이죠. 아무튼 우리 농장은 우수아이아에서는 유명한 곳이오."

보잉737 비행기는 오후 3시 넘어 우수아이아 공항에 착륙했다. 군 공항에 민간항공사가 얹혀사는 기지였다. 남위 54도에 위치한 우수아이아는 5월인데도 눈에 하얗게 덮여 있었고 황혼 구름에 남태평양 바다가 하얗게 반짝였다. 그 바다가 찰스 다윈이 1832년 탐험했던 비글해협인 것은 뒷날 알았다.

눈에 덮인 우수아이아는 도시랄 것도 없는 바닷가 소읍 규모였다. 나의 취재여행을 도와줄 문명근씨의 둘째 아들 문병경씨가 시골버스터미널 같은 공항 대합실에 나와 있었다. (스크랩 북을 상실하여 문씨의 둘째 아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다가 최근 블로그에서 그의 이름을 알게 됐다.)

문씨가 아들에게 집으로 먼저 가서 저녁을 먹은 후 나를 호텔로 안내하라고 말했다. 날이 어두워 주변경치를 볼 수 없었고 문씨 집은 동네에서 한창 떨어진 외딴 곳 같았다. 창문에 불이 비친 것이 시골집 분위기였다.

문 씨 부부와 아들 그리고 사위 등 서너 명의 한국인이 저녁을 함께 했던 것 같다. 이곳엔 문 씨가 터를 잡고 친인척을 불러들여 다섯 가구가 산다고 전해줬다. 농사는 문 씨네만 짓고 나머지는 시내에서 장사를 하지만 필요할 때는 농장 일을 도우며 살고 있었다.

저녁이 끝나고 잡담을 나누다 아들이 나를 차에 태우고 읍내 바닷가 언덕 위의 안타르타다(ANTARTADA)호텔에 여장을 풀게 했다. 로비 벽 이곳저곳에는 빙산을 걷는 사람들의 옛날 흑백사진이 붙어 있었다. 문 씨 아들은 "여기가 아문젠이 남극탐험을 할 때 기지였던 장소"라고 말해주었다. 유서 깊은 곳에서 아문젠과 인연을 맺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호텔방을 잡은 후 내 소매를 끌며 와인을 한 잔 하자고 했다. 피곤해서 그냥 자고 싶었지만 사흘간 내 심부름을 맡을 사람이란 걸 눈치 챈 나는 감기는 눈을 비비며 그를 따라 근처 맥주집으로 들어가 얘기를 나누었다.

우수아이아 이야기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의 나이가 30세란 걸 알게 되었다. 순간 문명근 씨에 꽂혔던 나의 취재 감각이 이 젊은이로 옮겨졌다. 편집국장이 한국일보 30주년 창간기념일이어서 세계 곳곳에 사는 30세 청년의 스토리를 모으고 있으니 찾아보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 얘기를 했더니 그가 흥미롭게 생각했다. 한 잔 더하자는 그에게 내일 비글해협에서 사진 찍자는 말을 하며 그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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