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그의 학력은 강원도 통천리 송전소학교 졸업이 전부다. 하지만 그의 통찰력과 앞을 내다보는 지혜는 넓고도 깊었다. 한마디로 상황을 알기 쉽게 정리한 뒤 실천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얼핏 무모해 보이지만 결과는 언제나 정주영 편이었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의 중동진출과 서산 간척지 제방 물막이 공사는 정주영의 역발상이 이뤄낸 대표적인 개가였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건설사업. 주베일은 사우디의 동쪽 유전지대에 있는 원유 수출항구다. 1970년대 들어 원유생산량과 원유 수출이 늘자 사우디 정부는 항구를 넓혀야 했다. 현대건설은 외국기업과의 치열한 수주경쟁을 뚫고 이 공사를 따냈다. 단일공사론 당시 세계 최대규모였다. 수주액은 무려 9억 4,500만 달러. 70년대 초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인해 나라의 외환 보유고가 바닥날 무렵이어서 이 천문학적인 오일달러는 가뭄의 단비였다.
그 오일달러가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에 앞서 ‘국가부도의 날’을 맞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청와대가 나서 난방을 줄였을까. 정주영은 주베일 항구 증축공사의 수주를 독려했다. 하지만 경영진의 반대가 극심했다. 설계나 시공기술, 자본력 그리고 장비까지 어느 것 하나 경쟁업체보다 앞선 게 없던 시절이어서 경영진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주영은 이 때 “우리는 부족한 게 많다. 그러나 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다. 낮이 뜨거워 공사가 어려우면 밤에 하면된다. 건설에 필요한 자갈과 모래가 지천이라고 하니 이보다 좋은 건설환경이 어디 있는가”라며 독전했다. 결국 극적으로 사업을 따냈고 공기마저 단축했다. 공사기간(1976년 6월~ 1979년 12월)동안 연인원 250만명을 동원한 대역사였다. 현대건설은 이후 연거푸 중동의 주요 건설 현장을 장악해 세계 건설업계를 놀라게 했다.
84년 서산간척지의 제방 물막이는 난공사였다. 양쪽 끝단에서 조금씩 제방을 쌓아갔는데 양 둑 사이의 간격을 약 270m를 남겨두고 공사가 중단됐다. 유속이 빨라져 20t에 이르는 거대한 매몰 바위마저 속절없이 쓸려나가자 비상이 걸렸다. 정통적인 토목 역학의 계산으론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때 정주영은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라며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 270m 간격과 길이가 비슷한 유조선을 가라앉히면 물살을 이겨내 제방의 양 끝단을 연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과연 유조선에 물을 넣어 침몰시키자 돌과 흙을 넣을 수 있었다. 공기단축은 물론 공사비도 290억원 가량 아꼈다. 그 결과, 서울 여의도면적의 33배에 달하는 4천700만평의 국토가 새로 만들어졌다. 서산 간척 현장에서 무전기를 들고 ‘유조선 물막이 공사’을 진두지휘하는 작업복 차림의 정주영 회장이 눈에 선하다. 나중에 세계 토목학계는 이를 ‘정주영 공법’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정주영의 지혜는 현장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34년전 그는 중국이 미국과 맞서는 G2국가로 떠 오를 것이라고 예단했다. 그것도 세계 외교현장을 주물렀던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의 간담회에서다.
1985년 7월 전국경제인연합 초청으로 방한한 키신저는 중국의 부상을 반신반의했다. 중국의 ‘죽의 장막’을 걷어내 개혁개방의 물꼬를 텄줬지만 중국 공산당 1당 체제 아래서의 경제발전이 한계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키신저는 전망했다. 이때 정주영은 “중국사람들은 수천년전부터 정치와 외교, 특히 장사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험과 수완을 가지고 있다. 36년(1949년~1985년)간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았다고 해도 이들의 뼈속깊이 자리 잡은 장사꾼 기질이 변했다고 말할 순 없다. 박사께서 염려하는 것 처럼 다소의 혼란과 차질을 빚을지 몰라도 몇 십년안에 중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부상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말을 하자 키신저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정주영의 ‘중국진단’은 정확히 맞았다. 올해는 미중 수교 40주년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미국과 맞서는 유일한 나라가됐다.
1971년 키신저가 파키스탄에서 몰래 중국으로 들어가 죽의 장막은 걷어 냈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그게 ‘부메랑’이 된 셈이다. 소련에 대한 견제구였지만 중국은 이미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공개적인 경쟁 무대는 요즘 벌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간 무역 전쟁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17일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미국이 될 수도 없고, 미국을 대체할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속내를 누가 알까. 중국은 경제 최강국의 힘을 앞세워 ‘한반도 비핵화 국면’에서 김정은을 네 차례나 중국으로 불러들이는 등 적극적인 입김을 불어 넣고 있다.
한반도의 운명이 구한말처럼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북한과의 경협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정주영 회장이 살아있었으면 오늘날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했을까. 정주영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한국사사전략연구소 공동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