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한진창업주"건너지 않으면 선 자리에서 고사"
조중훈 한진창업주"건너지 않으면 선 자리에서 고사"
  • econotelling(이코노텔링)
  • 승인 2019.01.0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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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창립 50주년 대한항공 창업주 조중훈회장. 박정희대통령의 권고받아들여 국영항공사 인수

한진그룹의 대표기업이자 주력업체인 대한항공이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1969년 3월1일 이륙한 대한항공은 한국의 날개로 반 세기동안 세계를 누볐다.

올해 매출25조원의 ‘세계 10대 항공사’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저가항공의 거센 공세속에서도 지난해 가장 경영을 잘한 항공회사로 꼽혔다. 미국 항공월간지 에어 트랜스포트 월드(ATW)는 2018년 세계 최고의 실적을 낸 항공사로 대한항공을 선정됐다. ATW의 리포트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전년 대비 최고의 당기순 이익을 낸 항공사(Best Airline Performer) 1위로 뽑혔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6년 약 5억5000만달러(약 6185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면서 고전했지만 2년만인 지난해엔 약 8억5000만달러(약 955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

대한항공은 여객운송 뿐 아니라 국제 항공화물 운송 분야도 강하다. 한때 항공화물 수송에서 세계 1~2위를 달렸다. 최근 비록 3~4년 새 5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단 기간에 세계 항공화물 시장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는 항공업체다.

이처럼 대한항공이 세계적 항공사로 급성장 했지만 출발은 초라했다. 보유한 항공기는 30~40년대 만들어져 거의 수명이 다한 프로펠러 비행기 7대에 제트기는 1대 뿐이었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적자투성이던 국영 항공업체(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1969년 대한항공을 출범시켰다. 창립 5년안에 당시 세계최대 비행기인 신형747를 사들인데 이어 이를 태평양 횡단  미주노선 투입하면서 국제항공사의 명함을 내밀었다. 가난한 동방의 작은나라의 항공업체가 세계항공시장에 도전장을 낸지 반세기만에 대한항공은 세계 10대 항공업체로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적자투성이던 국영 항공업체(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1969년 대한항공을 출범시켰다. 창립 5년안에 당시 세계최대 비행기인 신형747를 사들인데 이어 이를 태평양 횡단 미주노선 투입하면서 국제항공사의 명함을 내밀었다. 가난한 동방의 작은나라의 항공업체가 세계항공시장에 도전장을 낸지 반세기만에 대한항공은 세계 10대 항공업체로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대한항공 홈페이지)

한진은 우연한 기회에 항공사업에 진출했다. 조중훈(2002년 타계) 창업 회장은 1967년 정부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운송사업에서 베트남 전쟁의 특수를 누렸던 한진은 본격적으로 해운업에 나설 채비를 갖추던 때였다. 조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보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을 잇따라 만났다. 적자가 쌓여 정부의 골치덩어리로 전락한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맡아달라는 정부 제안을 받았다. 물론 조 회장은 항공사업에는 관심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누적적자가 30억원에 달해 항공공사 인수보다는 아예 새로 설립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섰다. 당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인수를 외면한 이유가 다 있었다. 그래서 조 회장은 세 번이나 인수를 사양했다.

그러자 이번엔 박 대통령 나서 조 회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박 대통령은 “국적기 타고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순방하는 게 소망”이라며 간곡히 권했다. 청와대에서 돌아와 경영진들과 머리를 맞댔지만 중역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셌다. 하지만 조 회장은 이미 굳은 마음을 먹으며 청와대를 나선 상태였다.

조중훈 회장은 40대초반에 베트남전쟁의 특수에 힘입어 국내 최대 물류업체을 운영한다. 이어 항공과 해운과 조선업으로 사세를 키워 세계적인 종합운송그룹으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때 기계업체에 근무해 기계조립에 수완이 있었다. 이는 항공기정비와 국산 전투기 '제공호'의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조중훈 회장은 40대초반에 베트남전쟁의 특수에 힘입어 국내 최대 물류업체을 운영한다. 이어 항공과 해운과 조선업으로 사세를 키워 세계적인 종합운송그룹으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때 기계업체에 근무해 기계조립에 수완이 있었다. 이는 항공기정비와 국산 전투기 '제공호'의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여러분의 말 처럼 무모한 모험이다. 그렇다고 건너야 할 강인데 빠져죽을지 모른다고 건너지 않는다면 선 자리에서 그냥 죽고 말 것이다. 이익만 생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업은 진정한 의미의 사업이 아니다.”

아시아 꼴찌나 다름없던 항공사가 민영화 됐지만 임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고 경영효율은 형편없었다. 심지어 부서간, 직원간 칸막이가 심한 모래알 조직이었다. 조 회장은 전원 고용 승계하겠다며 직원간 협력을 호소했다. 그러는 한편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국내선 투입 항공기를 늘리고 국제선 취항을 염두에 둔 마스터플랜을 가동했다. 사이공(지금 호치민시)노선을 확보하고 홍콩 운항도 재개했다. 일본의 지방도시 국제 승객을 붙잡는 서울경유 유럽과 미국 노선의 신설을 생각해 일본과 항공협정을 했다.

그리고 1971년 미국 정부를 설득해 미국으로 가는 태평양 노선을 뚫고 이듬해 보잉 707기를 띄웠다. 그 다음 450만개의 정밀 부품이 들어간 보잉747 점보 비행기를 도입했다. 세계 처음으로 보잉 747를 화물기로 투입했다. 신생 민영항공사로서 세계 항공사와 겨루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이어 파리 노선 취항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에어버스 비행기를 사들였다. 프랑스로 가는 하늘길이 열리자 대한항공은 드디어 미국과 유럽,동남아 노선을 확보한 국제항공사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국제 항공시장에서 설움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때론 배짱있게 노선을 발굴하고 신형 비행기를 도입하자 일본 등 세계항공업계가 대한항공의 발빠른 사세확장에 긴장했다.

대한항공은 정비시업에도 눈을 돌렸고 여기서 쌓은 정비 노하우를 기반으로 국산 전투기 1호인 ‘제공호’까지 만들었다. 낡은 프로펠러기 몇대로 출발한 대한항공은 ‘세계의 날개'로 비상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조중훈의 마법’이 만들어낸 ‘항공 신화’였다. <이코노텔링·한국사사전략연구소 공동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