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연내 답방은 물 건너간 모양새다. 물론 깜짝 발표로 상황이 급반전 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일각의 관측도 있지만 지금 그렇게 한가한 국면이 아니다.
또 그가 중국을 갈 때마다 경호상의 이유로 뒤늦게 일정이 드러났다고 그렇게 보는 것은 현 상황과 더욱 맞지 않다. 남한으로 건너오는 것은 중국을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빈손으로 올 수도 없고 빈손으로 돌아 갈 수도 없다. 현재 북미간에 2차 정상회담 의제를 놓고 삽바 싸움을 하는 도중에 서울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꺼낼 카드가 마땅치 않을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비핵화 의지’표명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만을 가지고는 우리 국민들의 환영을 받기는 어렵다.
북한의 당정 지도부가 ‘최고 존엄’을 그런 찬 바람 속에 내놓을 리 만무하다. 폼도 나고 성과도 있어야 할 것이다. 북측 입장에서 보면 최고 존엄에 대한 외교적 '옹위'(擁衛)는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다.
우리 정부는 대통령이 먼저 평양에 갔고 그 때 김위원장이 '특별한 일이 없는 한'연내 방문할 수 있다는 의지표명에 그럴 수 있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약속도 간접화법에 의한 것이지 김정은이 직접 언급한 것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답방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지켜보자'고 말한 것도 그런 상황을 감안 했음직하다.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은 서울 방문을 권유받자 “내가 서울에 가서 환영받을 만큼 일을 많이 못 했다”고 언급한 내용을 우리는 곱씹어 봐야한다. 북측은 현실적 계산이 우리보다 더 치열할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그의 답방을 우리는 ‘이벤트 정치’로도 활용할 수 있지만 북측의 입장은 다르다. 체제수호와 최고 존엄의 위상이 걸린 사안으로 보는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가 김정은 답방에 몸이 단 것 처럼 보인 자체가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6개월 새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할 만큼 남북간 소통의 외연은 넓어졌지만 비핵화와 관련해선 시원한 진척이 없는 것은 남북 정상 모두에겐 아킬레스 건이다.
또 서울 답방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선순환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실타래를 풀어보자는 우리의 의지는 트럼프와 시진핑, 트럼프와 김정은간의 투 트랙, 더 나아가선 북중 고위급 회담의 방향타에 따라 달라질수 있는 현실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게 70년간 지속 된 한반도 셈법이다.
그래서 와 봐야 서로 주고 받을 게 불분명하고 북미 관계도 말만 오갈 뿐 이렇다할 진척이 없는 상태에서의 ‘서울 정상회담’은 우리에게도 부담이 아닐수 없다. 그 보다 ‘4월 정상회담’을 앞두고 구축키로 합의 했던 남북 정상간 핫라인을 구축하는 일이 더 급한 일인지도 모른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최근 답방과 관련해 북측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북쪽이랑 전화가 되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겠지요”라고 말한 것으로 미뤄봐선 핫라인이 연결도 안되고 가동도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의 전화접촉 시도에도 불응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서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의 동력을 얻으려고 하다가 우리의 스텝만 꼬일수 있다. 북미가 비핵화 물꼬를 튼 다음 남북 정상이 서울서 만나도 늦지 않다. 두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의 마중물을 넣었던 일을 돌아보는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있다. 내년 초가 아니라도 좋다. 서두를 일도 아니고 더욱이 욕심을 내면 탈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