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7:55 (토)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13) '정치인 김학렬'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13) '정치인 김학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0.06.01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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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추진위해 '국회와 광폭 소통'… 여의도국회의사당 건립 지원
여야 재경委 의원들과 골프 라운딩 후 기획원 회의실에서 '경제 브리핑'
유머 풍부…내년경제 전망 묻자 "내년까지 이자리에 있을지" 폭소유도
DJ민원 들어주고 YS가르친 경험있어 여야 의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
정해영 전 국회부의장과는 '아삼륙'…국회네트워킹은 구태회 도움받아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야당이 자리 잡은 여느 때 같으면 고함 소리와 꾸지람 같은 것이 요란했겠지만, 화기 넘실거린 일요국회에서는 폭소가 솟구치기도. 삭감됐던 의사당(지금의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립비를 경제개발 특별회계에 넣은 데 대해 김학렬 부총리가 ‘여러 의원님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하시면 경제개발이 잘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자 한바탕 폭소가 터졌는데 어떤 의원은 요란한 박수까지.” 나라 살림을 맡고 있는 쓰루가 국회의원 중에 가장 자주 접촉하는 상대는 재경위 소속 의원들이었다. 부총리가 되어 맞이한 첫봄 3월의 첫 일요일, 그는 국회 재경위 소속 의원들을 골프장에 초대해 한 라운드를 돌았다.

그러고는 그들을 집에 보내지 않고 기획원 회의실로 데리고 가서 ‘번영의 70년대’라는 주제의 경제 브리핑을 했다. 그가 “앞으로도 종종 이런 모임을 가지겠다”고 했을 때 의원들도 싫지는 않은 눈치였단다.

그들 대부분은 쓰루가 예전부터 정기국회에서 국정감사, 결산, 그리고 예산 심의가 있을 때 주로 상대해온 사람들(결산, 예산 심의는 대부분 각 당의 재경위 소속 국회의원이 하는 게 당시의 관행이었다)이었다. 쓰루와 그들은 서로가 익숙하고 전문가로서 상대를 인정하고 때로는 존경하는 사이였다.

재경위 국회의원 중에서 특히 여당 공화당의 구태회(훗날 국회부의장), 김성곤(공화당 재정위원장), 야당 신민당의 정해영(훗날 국회부의장), 이중재(만년 재경위 소속 6선 위원) 등과 ‘아삼륙’ 수준으로 친했다. 예산 통과 같은 중요한 국회 일정이 마무리되는 날이면, 통금이 지난 시간에 그와 함께 만취한 서너 명이 그의 집에 쳐들어와서 “제수씨, 술상 좀 차려주소” 하며 2차 술자리를 벌이곤 했다. 그의 자식들이 집이 가까운 정해영, 이중재 등 야당 의원 집에 새해 인사를 갈 정도의 친분이었다.

부총리 재임이 길어지면서 그는 점점 더 국회의원을 ‘국정의 파트너’로 보는 의식이 강해졌다. ‘(선거 등 때문에) 방만해지거나 빈틈이 생길 수 있는 나라 살림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견제 세력(야당)’ 또는 ‘국민의 바람을 직접 듣고 그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의의 대표(여야 공히)’로 여기게 된 것이다.

김유택 부총리 시절부터 국회에 출석해 장관을 대신해 예산설명이나 정책대변을 해 온 쓰루에게는 국회와 거기에서의 답변이 익숙한 자리였다. 나라살림 관련 계수까지 꾀어차고 있는 그에게 국회 발언은 그의 능력을 한껏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국회발언 속도로  신기록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진은 재무장관이 된 후 첫 국회발언 장면.
김유택 부총리 시절부터 국회에 출석해 장관을 대신해 예산설명이나 정책대변을 해 온 쓰루에게는 국회와 거기에서의 답변이 익숙한 자리였다. 나라살림 관련 계수까지 꾀어차고 있는 그에게 국회 발언은 그의 능력을 한껏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국회발언 속도로 신기록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진은 재무장관이 된 후 첫 국회발언 장면.

국회 자체를 보는 시선도 변했다. 예전에는 ‘불려 나가서’ 경제정책이 옳음을 설명하고 호소하는 곳으로 여겼으나, 부총리가 되고 나서는 주요 국정과제를 국민에게 전하는 국정홍보의 채널로 활용해나갔다. 주요 과제에 대한 국회 설명과 답변은 주요 일간지 1면에 실렸다.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그를 좋아했다. 적어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야당 의원이 그를 좋게 본 것은 막힘이나 숨김이 없고 민감한 사안조차 명쾌하게 답변하기 때문이었다. 여당 의원이 그를 부담 없이 대하였던 것은 그가 국회나 정치에 뜻이 없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개적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를 할 생각이 없고, 최고의 관료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곤 했다. 덕분에 그와 국회의원은 (그들이 자주 썼던 일본 말로 표현하자면) 서로 ‘아싸리한(깔끔한) 관계’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아부를 할 필요도, 일부러 좋은 낯을 할 필요도 없는 사이였다.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경계심을 거두게 하는 쓰루의 가장 큰 장기는 뭐니 뭐니 해도 그 특유의 유머였다. (그를 이은 많은 부총리들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유머 없는 건조한 국회 답변’이라는 데에 경제관료 간에 별 이견이 없다.)

어느 국회의원이 다음 해 경제 전망에 관해 묻자 “내년 이때까지 이 자리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경솔히 말할 수 없다”고 답변해 일단 웃음이 일게 한 다음 장시간을 들여 경제 이론을 설파하는 식이었다.

솔직함과 유머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교분을 나누는 상대가 점점 늘어났다. 당시 ‘뜨는 별’로서 만만치 않은 국민 지지를 누리던 야당 국회의원 김대중, 김영삼과도 친하게 지낼 정도였다. DJ도 민원이있으면 수시로 녹실에 찾아와서 그를 만났고, YS는 8・15 광복 후 경남중학교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 가까운 사이였다. 그는 구태회 의원을 통해서 국회 관련 네트워크를 넓혀갔다. 혹 국회의원과 불편한 일이 있으면 구 의원이 주선하여 중재, 해결해주곤 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때였다. 혜화동 집에 선물 하나가 들어왔는데, 부인이 좋아하는 노란색 실크 옷감, 악어가죽 핸드백, 그리고 JOY라는 향수 세트가 그 내용물이었다. 거기에 붙어 있는 쪽지에는 ‘미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분기탱천한 부인이 퇴근길의 그에게 ‘어느 기생년’인지를 책문한 결과, 미희는 김성곤 씨의 부인 이름이란 게 밝혀졌다. 이 부부싸움은 대통령에게까지 전해져, 박통에게 “신문로(김성곤 씨 자택, 지금의 성곡미술관 자리) 미희 씨 집에 잘 다니시는가”라고 놀림을 당했다고 한다.

김성곤 의원은 공화당 정치자금 관리를 책임지는 4인방 중 한 사람으로, 쓰루가 부총리가 된 이후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쓰루와 김성곤 두 사람 사후에도 쓰루의 부인은 그의 자식과 함께 문제의 ‘미희 씨’에게 때때로 문안 인사를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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