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8 20:08 (수)
이재광의 영화 속 경제사(7)'나의사랑 그리스'㊥ '비극적인 현실'
이재광의 영화 속 경제사(7)'나의사랑 그리스'㊥ '비극적인 현실'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0.03.03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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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에피소드 설정해 경제난을 다각적으로 분석
정치ㆍ경제 '위기 일상화' = '삶의 황페화' 집중 부각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세 편 모두의 핵심 주제는 ‘사랑’이다. 각 에피소드에는 20대와 40대, 그리고 60대 등 세대별 사랑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사랑’ 외에도 세 편의 에피소드가 품고 있는 공통점은 다양하다.

사랑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ㆍ경제ㆍ사회 환경이 사랑의 배경이다. 그래서 지난 ㊤편에서 이 영화가 정치영화, 경제영화, 또는 사회영화로 분류돼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 일단 영화의 내용부터 알고 가자.

영화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 20대(①)와 40대(②), 그리고 60대(③)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 20대(①)와 40대(②), 그리고 60대(③)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메랑’이라는 제목이 붙은 첫 번째 에피소드. 20대인 그리스의 평범한 여대생 다프네(니키 바칼리)와 시리아 난민 청년 파리스(타우픽 바롬)와의 사랑을 담고 있다. 아르바이트 일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다 치한에게 봉변을 당할 뻔 했던 다프네는 지나가다 우연히 이를 보고 자신을 구해 준 난민 청년 파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반면 다프네의 아버지 안토니스(미나스 하치사바스)는 난민 때문에 그리스의 경제와 치안이 망가졌다며 화를 내는 우익이자 파시스트로 그려진다. 그에게 친(親)난민 정책을 펴는 정부는 못마땅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실력행사에 돌입한다. 평소 뜻을 같이 하던 그리스 우익 인사들과 함께 난민집단 거주지인 폐쇄 공장으로 몰려간다. 그들을 내쫓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치 않게 딸 다프네를 만난다.

두 번 째 에피소드. 우울증 치료제 ‘로세프트 50mg’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리스 한 기업의 40대 간부인 지오르고(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형편이 어려워진 회사와 가정, 그리고 아내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한다. 불면증과 우울증, 불안증세에 시달리며 우울증 치료제 로세프트에 의존해 살아간다. 어느 날 그는 한 술집에서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안드레아 오스바르트)를 만나고 하룻밤을 보낸다. 그러나 알고 보니 엘리제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파산위기를 겪고 있는 지오르고의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우선 파견된 구조조정 전문가였던 것이다. 엘리제와 연인 관계가 된 지오르고는 그에게 자신의 친구는 해고하지 말아달라는 청을 한다. 하지만 엘리제는 친구를 해고했고 이후 친구는 자살을 선택한다. 충격을 받은 엘리제도 결국 로세프트에 손을 대게 된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두 번째 기회’라는 뜻의 ‘세컨드 찬스’다. 독일에서 이주해온 역사학 교수 출신 세바스찬(J. K 시몬스)은 어느 날 마트에서 평범한 주부 마리아(마리아 카보기아니)의 도움을 받으며 그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이후 둘은 매주 마트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간다. 권위적인 남편과 살며 삶에 대한 행복감을 모른 채 살아가는 마리아로서는 두 번째 사랑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세바스찬은 그에게 자신이 쓴 책을 선물하며 삶에 대한 희망과 꿈을 심어준다. 60대인 이들에게도 과연 사랑의 결실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이처럼 이 세 개의 에피소드에는 사랑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게 다가 아니다. 세 개의 에피소드 안에는 그 밖에도 눈에 띄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사랑하는 연인들 간 출신 나라가 다 다르다. 세 에피소드의 주인공 한 명씩은 모두 그리스인지만 나머지 한 사람의 출신 나라는 제각각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 ‘부메랑’의 난민 청년 파리스는 시리아 출신, 두 번째 에피소드 ‘로세프트 50mg’의 여주인인 구조조정 전문가 엘리제는 스웨덴 출신, 그리고 세 번째 에피소드 ‘세컨드 찬스’의 남자 주인공세바스찬은 독일 출신이다. 왜 영화는 사랑의 한 쪽 파트너를 이처럼 다른 나라 사람으로 설정했을까?

세 편 에피소드 모두에 폭력이 등장한다는 것 역시 공통점이다. 그리고 이 폭력은, 대부분이 그렇듯, 약자에 대한 강자의 몫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난민을 공격하는 시민권력이 있다. 이들은 난민이 나라를 망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자본권력이 등장한다.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인건비 절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폭력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가부장의 권력이 있다. 전통적인 가부장은 스스로가 가정의 최고 권력자가 돼야 한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힘없는 가족은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우리가 흔히 지나칠 수 있는, 그러나 뭔가 상징성이 강한, 두 개의 장면 또한 에피소드 세 편 모두에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 ‘에로스와 프쉬케’, 그리고 장례식 장면이다. 에로스와 프쉬케 이야기는 그림으로, 비행기 내 잡지로, 그리고 나레이션과 책으로 등장한다. 에로스와 프쉬케 신화를 아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영화와 신화의 ‘사랑 이야기’ 간 연계는 막연하다. 또한 세 개 에피소드에 꼭 등장하는 장례식 장면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주요 주제로 포착되지도 않고 긴 시간 할애되지도 않았으니 영화를 본 관객들조차 이 장면을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학작품 속 상징이나 영화 속 상징의 해석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도 다양한 상징이 나오지만 감독 봉준호는 600회에 이르는 인터뷰 어디에서도 상징의 의미를 밝히지 않는다. 상징의 제조자가 그 의미를 밝히는 순간 그 상징은 이미 의미를 상실할 것이 뻔하다. 의미를 잃어버린 상징은 더 이상 상징일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철저한 관객의 입장, 즉 상징 소비자 입장에서 ‘에로스와 프쉬케 신화’와 ‘장례식’의 의미 분석은 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이다.

우선 ‘에로스와 프쉬케 신화’의 스토리를 보자. 한 왕국의 공주 프쉬케는 이 세상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미모를 갖춘 인물이다. 하지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신보다 아름다운 인간이라니.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신인 아들 에로스에게 프쉬케의 불행을 지시한다. 사랑의 화살로 인간이든 신이든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에로스에게, 그의 화살로 프쉬케가 세상에서 가장 추한 인간과 사랑에 빠지도록 하라는 얘기였다. 에로스는 어머니의 명을 따라 프쉬케를 찾는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 에로스는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는 순간 너무나 놀라 자신이 쏘려는 화살에 찔리고, 그만 프쉬케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후 그들은 온갖 고난을 겪지만 결국 이겨내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기쁨’이라는 이름의 딸은 그 결실인 셈이다. 과정은 힘들지만 결론은 ‘기쁨’을 얻고 행복하게 끝난다는 ‘해피 엔딩’ 스토리다.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 외에 장례식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를 ‘에로스와 프쉬케 신화’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이야기’는 ‘죽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이야기의 핵심은 ‘고난의 극복’과 그 과실로서의 ‘기쁨’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신화의 죽음’ 해석에서 세 가지 가설을 찾아낼 수 있다. ①고난을 극복하려 하지 않았거나(극복을 회피했거나) ②극복하기에는 너무 큰 고난이어서 실패했거나 ③고난을 극복했음에도 행복이 오지 않았거나이다. 어떤 가설을 받아들이던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필자는 두 번째 가설을 받아들인다. 세 편의 에피소드 주인공들은 모두가 사랑했고, 모두가 자기에게 주어진 고난을 극복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은 실패로 끝났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여주인공 다프네는 아버지의 동료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고 연인 파리스는 자신이 꿈꾸던 캐나다로 갔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엘리제는 연인 지오르고와 헤어진 뒤 공항에서 다시 보지만 외면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세바스찬과 마리아는 조금 다르다. 헤어진 뒤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과연 ‘기쁨’이라는 자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영화는 그 결론을 관객의 상상에 맡기지만 왠지 부정적이다.

④⑤⑥⑦⑧⑨ 세 편의 에피소드 모두에 공통된 ‘에로스와 프쉬케 신화’ 및 ‘장례식’ 장면. 두 상징은 ‘사랑이란 고난이며 이 고난을 극복한다면 기쁨이 온다’는 ‘에로스와 프쉬케’ 신화에 종말이 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위기의 일상화’는 ‘사랑의 고난’을 극복할 수 없는 상태인 ‘일상의 위기’ 국면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④⑤⑥⑦⑧⑨ 세 편의 에피소드 모두에 공통된 ‘에로스와 프쉬케 신화’ 및 ‘장례식’ 장면. 두 상징은 ‘사랑이란 고난이며 이 고난을 극복한다면 기쁨이 온다’는 ‘에로스와 프쉬케’ 신화에 종말이 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위기의 일상화’는 ‘사랑의 고난’을 극복할 수 없는 상태인 ‘일상의 위기’ 국면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이로써 세 개 에피소드의 마지막 공통점이 나온다. 영화 속 주인공 모두가 불행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동료의 총에 죽어가는 딸을 품에 안고 오열한다, 이후 정신병자처럼 넋을 놓고 살아간다. 딸은 그렇게 죽고 그 딸의 연인은 그리스를 떠난다. 40대 직장인 지오르고는 해고당한 친구의 죽음과 연인 그리고 아내와 헤어지는 쓰라린 아픔을 겪는다.

엘리제 역시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회사의 미션을 중도 포기하고 연인과 헤어진다. 그리고 우울증 환자로 살아가데 된다. 세바스찬과 마리아는 비록 다시 만나기는 하지만 미래는 부정적이다. 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까? 영화가 그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시퀀스에서 보여주는 뜻밖의 사실은 이들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점이다. 안토니스와 마리아는 부부이고 지오르고와 다프네는 이들의 자녀이다. 지오르고와 다프네는 친남매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의 현실을 보자. 딸은 총 맞아 죽고 이 충격에 남편은 폐인처럼 살아간다. 과연 마리아는 남편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갈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라며 마냥 좋아 할 수 있을까? 영화는 비록 이 둘 간의 미래를 열어놓고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국 영화는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에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당대 그리스, 아니 어쩌면 세계가 안고 있는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상황은 사랑의 힘으로 극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사랑과 인간관계, 가족관계를 짓밟는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위기의 일상화’는 이처럼 ‘일상의 위기’를 불러들이고 결국 우리의 일상세계를 파멸로 몰아가는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위기는 이처럼 삶을 황폐화시킨다. 어제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가 다르고, 나의 세계와 그들의 세계가 다른 것이다. 영화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라.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는 ‘다른 세계’, ‘멀리 있는 세계’, ‘산산조각 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비극적인 현실은 삶에서 비극적인 결론을 이끌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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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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