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1 20:27 (화)
칠레 이민 최선택 대표 "민생고 누적에 칠레인 화나"
칠레 이민 최선택 대표 "민생고 누적에 칠레인 화나"
  • 산티아고(칠레)= 성태원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20.01.10 1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칠레 이민史의 산증인 …"연금 부실과 교육비 부담 칠레 국민의 인내 한계 넘어 시위폭발"
칠레 국민들 좌우정부 번갈아 선택…좌파 정부가 국고 비우면 우파정부가 국고 채워넣어
제조업은 약하나 지하자원 많고 '규제없는 사업천국'… "이번 사태 업그레이드 계기 될것"
지나친 좌파 포퓰리즘은 경계 … '무노동 무임금' 원칙 철저하지만 노동 생산성 높지 않아
대학서 연극반활동 … "서울 대학로 연극빌딩 구입의 꿈 이루려 78년 칠레로 가 자수성가
24년전 교민회장 이어 세계 한인 무역협회(월드 옥타)서 활동 … 고국 청년 해외진출 지원

중남미 경제 모범국 칠레가 지난해 10월부터 수개월째 폭동 수준의 시위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코노텔링은 성태원 편집위원의 칠레 현지취재 내용을 세차례, '중진국 함정'에 빠진 브라질이 정치불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정을 두차례로 각각 나눠 연말연시 특집으로 실었다. 이코노텔링은 두 나라의 취재를 통해 극단적인 성장과 분배정책의 후유증을 살펴 볼수 있었다. 성 편집위원은 귀국을 앞두고 지난 1월 7일(현지 시간) 산티아고에서 최선택(68) 교민 사업가를 만났다. ▶이번 칠레 시위 사태의 성격과 향후 전망▶ 칠레 경제와 한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민에 얽힌 애환과 사업 이야기 등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인터뷰는 최씨가 산티아고에 운영중인 회사인 ‘칠레 코엑스’에서 진행됐다. 칠레 이민 42년 동안 현지에 터를 단단하게 잡은 그는 이 회사 대표이자 칠레 한국인 이민사(史)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최선택 대표(사진)는 친척의 권유를 받고 78년 칠레로 이민갔다. 1960년대부터 이민이 시작된 브라질·아르헨티나와는 달리 칠레 이민은 막 시작되던 때였다. 칠레서 빨리 돈을 벌어 서울 대학로에 5층짜리 건물 하나 사면 평생 연극하고 살수있겠구나라는 꿈을 이루려했다. 그런데 돈을 꽤 모아 귀국했더니 건물값이 많이 올라 대학로 연극빌딩 구입은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칠레내에서의 사업뿌리는 단단하게 내려 칠례의 대표적인 한인 사업가로 꼽힌다. 사진(산티아고)=성태원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최선택 대표(사진)는 친척의 권유를 받고 78년 칠레로 이민갔다. 1960년대부터 이민이 시작된 브라질·아르헨티나와는 달리 칠레 이민은 막 시작되던 때였다. 칠레서 빨리 돈을 벌어 서울 대학로에 5층짜리 건물 하나 사면 평생 연극하고 살수있겠구나라는 꿈을 이루려했다. 그런데 돈을 꽤 모아 귀국했더니 건물값이 많이 올라 대학로 연극빌딩 구입은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칠레내에서의 사업뿌리는 단단하게 내려 칠례의 대표적인 한인 사업가로 꼽힌다. 사진(산티아고)=성태원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이민은 언제, 왜 오시게 됐나요.

“1978년 대학(고려대 농화학과) 졸업 후 친척 권유로 취직도 마다하고 왔어요. 대학 때 연극반 활동을 했는데 ‘칠레가 좋으니 한번 와봐라’는 말에 솔깃했습니다. 칠레에서 어서 돈을 벌어 대학로에 5층짜리 건물 하나 사서 평생 연극하며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거든요. 1960년대부터 이민이 시작된 브라질·아르헨티나와는 달리 칠레 이민은 막 시작되던 때였습니다. 당시 와서 보니 교민은 6세대(현재 3천여명)가 전부였어요.”

-대학로 건물주 꿈은 이루셨나요.

“여기 와서 4~5년 동안 열심히 일해 미화 15만 달러 상당을 벌어 꿈을 이루겠다며 귀국했죠. 나올 당시는 그 돈이면 됐는데 귀국하니 값이 올라 글쎄 전세금 정도밖에 되지 않더라고요. 6개월 만에 칠레로 다시 와버렸습니다. 여기 사업도 곧잘 되고 해서 계속 주저앉아 버렸죠.”

-가족 수는 많이 늘었겠네요. 고향은 어디세요.

“아내와 자녀 둘, 며느리와 손주 둘이 있어요. 아내는 한때 제가 했던 가방 사업을 맡아 하고 있고, 결혼한 아들(40)은 제 사업 파트너가 돼 있죠. 저는 원자재 사업을 하고 세일즈에 능한 아들은 주문품을 만들어 팝니다. 한국 회사 칠레 지사에 몇 년 다녔던 딸(35)도 오빠 일을 돕고 있죠. 고향은 경기도 화성이고, 고교는 서울 대광고를 다녔습니다.”

-여기서 무슨 사업 하시나요. 사업은 잘 되나요.

“광고 실사 대형 프린트물과 롤러 블라인드 커튼, 이 두 가지 사업 아이템을 1대 1 비중으로 하고 있어요. 전자는 PVC에 프린트를 하는 사업인데 3m 20㎝ 짜리를 주로 쓰죠. 찍어서 수십 장을 연결하면 최대 40m×30m까지 제작이 가능합니다. 후자는 원래 상업용·광고용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아파트나 사무실용으로도 많이 합니다. 제가 선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업입니다. 아직까진 그런대로 사업이 잘 되는 편입니다.”

칠레 근로자
최선택 대표는 칠레에서 광고 실사 대형 프린트물과 롤러 블라인드 커튼광고 사업을 하고 있다. 그의 회사 코엑스 공장에서 일하는 칠레 근로자가 롤러 블라인드 공정을 다듬고 있다. 칠레는 노동 관련법이 보수적이다.무노동 무임금이 철저하고 주 40~45시간 근로제가 적용된다. 근로자들의 작업 능률이 동남아 등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어서 인건비만 보고 사업을 펼치면 어려움을 겪을수 있다고 최대표는 설명한다.

-애초부터 이런 사업을 하셨나요.

“아닙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고생을 거쳐 11년 전쯤인 2009년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어요. 최고급 유럽형과 저가 중국형 사이에 있는 틈새시장을 공략합니다. 저가 중국산이 아닌 한국산 원자재를 쓰되 고급 제품을 만들어 최고급과 가격 경쟁을 하는 전략을 써요. 안 그러면 저가 중국산 제품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초창기엔 스웨터 짜는 공장도 했고, 1981년부터는 ㈜대우에서 가방과 핸드백, 텐트 등을 수입해 팔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고생을 엄청 많이 했고, 사업도 배웠습니다.”

-지금 사업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한국과는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글쎄요. 아들 사업과 합하면 연간 약 30억 페소(한화 50억원 상당) 될까요. 종업원은 23명이고요. 원단과 알루미늄, 제품용 시스템 등은 대부분 한국에서 가져 옵니다. 35일 만에 컨테이너 한 대 분량의 원자재가 한국에서 오지요.”

-그러면 최근 칠레 시위 사태의 원인과 핵심 요구 사항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우선 빈부격차가 심하죠. 게다가 연금, 의료보험, 교육비 등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참지 못할 정도가 된 겁니다. 시위대는 연금법의 110세 규정을 80~90세로 낮춰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나온 구호가 ‘더 이상 연금을 내지 말자(NO + AFP)’인데 칠레 곳곳에 이게 쓰여 있죠. 또 개인 의보와 국가 의보 간 혜택 차이가 너무 크다며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해 달라고 합니다. 교육비로는 우선 ‘대학 반값 등록금’을 주장하고 있고요. 이웃나라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대학 등록금이 없거든요. 비싼 교육비 때문에 실제 칠레 대학 졸업률은 평균 30% 정도에 그쳐요. 좋은 학과로 불리는 법대, 의대, 신방과 등은 졸업률이 10~15% 정도에 불과하고요.”

-이번 시위 사태를 어떻게 보시나요.

“언젠가 올 일이 드디어 왔다고 봅니다. 연금과 퇴직금, 의료보험 등이 열악한 상황이거든요. 하지만 칠레 국민들은 많이 깨어 있어요. 인터넷이 발달하고 뉴스도 잘 접해 사정을 많이 알다 보니 참기도 잘 합니다. 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칠레가 한발 짝 더 나아갈 거라 봅니다. 시위도 특정 장소는 심하지만 그 밖의 일반 장소는 크게 위험하지 않고요. 칠레 사람들은 교육도 인성교육을 중시해 웬만하면 평소 서로 다투지를 않습니다. 술집에서도 싸우는 걸 잘 못 봤어요.”

-앞으로 사태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4월 개헌 국민투표에서 ‘언젠가는 해야 할 일’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가 되면 정세가 안정되리라 봅니다. 하지만 요구가 계속되고 시위가 격화되면 나라가 수렁에 빠지겠죠. 칠레 국민들은 현명하고 계산을 잘 합니다. 극단적인 사회주의로 가서 재정이 거덜 나는 걸 경험상 원치 않아요. 정당도 좌우파가 잘 발달한 편입니다. 심지어 공산주의도 투표로 채택한 경험이 있습니다. 칠레 국민들은 좌우파가 번갈아가며 집권토록 해 국고를 결코 다 못 쓰게 하죠. 집권 좌파가 국고를 비우면 우파에 권력을 줘 국고를 채워 넣게 해요. 중남미에서 제일 잘 살던 베네수엘라가 3년 만에 망하다시피 한 사실을 결코 좌시하지 않습니다. 현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우파 출신으로 공공요금과 세금 등을 올려 국고를 채워 넣는 숙제를 떠맡았어요. 그런데 못사는 사람들이 싫어해서 이번에 큰 딜레마에 빠진 셈이죠. 그래도 정부는 시위 진압에 소극적인 편입니다. 원래 칠레는 공권력이 센 나라였는데 인권을 생각하고 국민 눈치를 봐서 그런지 요즘은 좀 변했어요. 야당이 ‘대통령은 겁쟁이’라고 공격할 정도니까요. 전반적인 칠레 치안 수준은 중남미 상위권입니다. 아직도 칠레는 중남미에서 드물게 ‘텐트 갖고 놀러 갈 수 있는 나라’에 속합니다.”

-칠레 경제에 영향은 없나요.

“왜 없겠어요. 칠레는 거의 완전 개방형 경제거든요. 외국인 투자가 줄고 돈을 들고 나가죠. 달러 환율도 시장에 완전히 연동돼 있어 최근 달러 값이 오르는 만큼 사업에 손해가 나죠. 칠레는 FTA(자유 무역 협정) 대상국이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10여국이 넘을 정도로 시장이 완전히 열려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도 칠레는 자원이 많고 국민들이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를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처럼 자원도 없는 나라가 좌파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져 못 돌아 올까봐 걱정이 좀 되죠.”

원자재창고
최선택 대표는 주요 광고프린트용 원자재를 한국에서 수입한다. 원자재 창고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칠레 사업 환경은 어떠세요.

“규제가 없는 사업 천국이라고 봐야겠죠. 신고만 잘 해 두면 한국에서 들어 온 물건이 하루 이틀이면 회사에 도착할 정도입니다. FTA 대상국이 많아 관세가 없는 경우가 많고 있는 나라도 6%에 지나지 않습니다. 칠레가 한국과는 상당히 호혜적인 교역국이란 점이 저희들에겐 다행이죠. 개인들도 사업하기 참 좋아요. 그러다 보니 칠레 사람들이 원래는 온건하지만 사업에 관한 한 저돌적이라는 얘길 듣습니다. 이웃 아르헨티나나 페루에 칠레 사업가들이 많이 진출하다 보니 그들이 좀 시큰둥하죠. 그런가 하면 노동 관련법도 보수적입니다. 무노동 무임금이 철저히 지켜지죠. 하지만 주 40~45시간 근로제가 적용되고 근로자들의 작업 능률이 동남아 등에 비해 상당히 낮아 제조업이 약한 게 단점입니다. 자동차는 물론 이쑤시개까지 수입하고 있죠. 인건비만 보고 칠레 사업 진출을 꾀하는 건 단견입니다.”

-이제 칠레 교민 사회 얘기 좀 해주시죠.

“3천여 명의 교민들이 의류 수입 등 주로 수입업을 해서 삽니다. 저처럼 제조업 종사자는 잘 없어요. 자녀들은 고등학교까지는 여기서 다니고 대학 공부는 세 갈래로 갈립니다. 미국, 유럽 등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경우, 칠레에 남아 공부하는 경우, 한국에 가서 공부하는 경우 등으로 비슷하게 나뉩니다. 칠레 교민 사회는 다툼 없이 지내는 전 세계 모범 교민사회로 소문나 있죠. 지방색이나 정치색을 잘 안 드러내고 서로 편을 안 가르는 것도 특징이죠. 이곳 정계 진출도 꺼리는 게 교민 사회 분위기입니다. 교민회장도 역대 회장 등으로 구성된 교민자문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사람이 돌아가며 맡아 말썽 없이 봉사합니다. 이번 시위 때도 회장 등을 중심으로 자경단을 구성해 가게 피해 등을 거의 입지 않도록 했죠. 칠레에서 한국 교민 사회 위상은 숫자에 비해 큰 편이라 생각합니다. 평소 대사관과도 협조를 잘 하고요. 이번 시위 때도 대사관과 카톡방을 열어 정보를 교환하는 등 대처를 잘 했습니다.”

-교민들의 지역적 분포는 어떻습니까.

“90%가 수도 산티아고에서 살죠. 교민회가 소통 창구 역할을 하려 애씁니다. 교민은 한국에서 이민 온 경우나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등 근접 국가에서 넘어온 사람들 등으로 구성되죠. 한국 회사의 칠레 지사 근무자나 지사 임기가 끝나고 남는 회사원, 미국 등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등도 교민 사회 구성원이 됩니다.”

-교민 회장, 월드 옥타 칠레지회장 등으로 봉사하기도 했다면서요.

“녜, 11대(1996~97년) 교민회장을 했지요. 벌써 23~24년이 지났네요. 당시 교민 소통 강화를 위해 ‘교민 인터넷 신문’을 고생하며 만들어 운용했는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신문이 막 생길 무렵이었으니 빨리 시작한 셈이죠. 보람이 큽니다. 월드 옥타(세계 한인 무역협회)는 한국이 중심이 돼 세계 각국에 130개 지회를 둔 사단법인입니다. 2013년 전북 부안에서 열린 세계 대표자대회를 비롯해 1년에 두 차례씩 고국 행사에 참석했죠. 전 세계 회원사가 6천개나 됩니다. 한국 주요 도시별 대회를 통해 세계 각지의 한인 중소기업들의 사업과 수출입을 연결하고 한인 청년들의 일자리도 만들어 주는 글로벌 협력 단체입니다. 지금도 명예위원장으로 봉사하고 있죠.”

-이제 곧 70대를 맞는데 여생을 여기서 보내실 생각인가요.

“그만 둘 때가 되긴 했지만 앞으로 2~3년 정도는 사업을 더 해야죠. 은퇴하면 ‘칠레 반, 한국 반’으로 여생을 보낼 생각입니다. 칠레에서 산 기간(42년)이 한국에서 산 기간(26년)보다 훨씬 길다 보니 여기에 정도 들었어요. 과일이 너무 맛있고 풍성한 게 좋아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