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 출범 땐 한국 제조업 수출에 새 지평 열어… 농수산물 '타격 우려'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4일 타결됐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호주·일본·인도·뉴질랜드 등 16개 국가가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메가 FTA'로 불린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총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FTA 타결로 교역·투자 활성화와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한국의 신남방정책을 더욱 가속하는 동시에 보호무역주의 확산 상황에서 자유무역의 가치를 강조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 계기에 협상 개시를 선언해 28차례 공식협상과 16차례의 장관회의, 3차례 정상회의를 개최한 지 7년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해당국 정상이 참여해 이날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RCEP 정상회의는 인도를 제외한 15개국 간 협정문 타결을 선언했다.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향후 시장개방 등 협상을 마무리해 2020년 최종 타결·서명을 추진키로 했다. 아울러 현대적이고, 포괄적이며, 수준 높은 상호호혜적 협정을 통해 규범에 기반한 포괄적이고 개방적인 무역 시스템 조성, 공평한 경제발전과 경제통합 심화에 대한 기여 필요성 등 RCEP의 지향점을 재확인했다. 인도는 주요 이슈와 관련해 참여국들과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추후 입장을 결정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의에서 "RCEP 타결로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총생산의 ⅓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이 시작됐다"며 "아세안을 중심으로 젊고 역동적인 시장이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RCEP이 타결됨에 따라 한국 기업의 수출길이 더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전자, 자동차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낮아진 무역장벽을 넘어 15개국으로의 수출이 활발해질 뿐만 아니라 인프라 확충처럼 투자유치 수요가 있는 역내국가로의 진출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한국은 RCEP에 참여한 15개국 중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와 양자 FTA를 맺고 있다. 시장 접근성은 양자 FTA를 통해 확보하고, 나라 간 다른 원산지와 통관 규정으로 발생하는 한계는 RCEP로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됐다.
그러나 RCEP 참여국에는 중국, 호주, 뉴질랜드 등 농산물 강국이나 수산업에 경쟁력이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등이 포함돼 있어 한국 농수산물 분야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이번 RCEP에서 참여국 간 통합 원산지 기준을 설정해 기업의 FTA 편의성을 제고하고, 역내 가치사슬 강화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은 현재 아세안 등 RCEP 역내국에 지속적 투자를 통해 다양한 역내 생산기반을 확보한 만큼 RCEP 체결은 기존 FTA의 제약을 허물고 FTA의 활용률을 더욱 높이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제품 생산 과정에서 역내 여러 국가를 거친 제품도 특혜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게 됨에 따라 참여국 간 가치사슬이 강화되고 미국·중국 등 주요 2개국(G2)을 넘어 신남방 핵심국가들로 교역망을 다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대외경제연구원은 2017년 2월 발간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추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RCEP 협상 참여국들은 이미 양자 간 FTA를 맺고 있어 RCEP으로 인한 무역창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체결 FTA의 개선 및 규범의 조화 등을 통해 이익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협상 참여국은 원산지 규정, 통관절차 및 표준의 간소화와 통일 등을 통해 역내거래 비용 절감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종별 관세율이나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아 어떤 품목이 수혜를 입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일지 구분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역내 수요가 높은 전기·전자,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 분야에서 수출과 투자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코트라(KOTRA)는 2015년 1월 내놓은 'RCEP 협상 동향과 참여국별 전략 및 산업계 반응' 보고서에서 "RCEP이 체결되면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등을 생산기지에서 전자, 자동차 등 대규모 산업설비 투자가 필요해질 것"이라며 국내 관련 산업의 진출 또한 함께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잇는 물류, 금융 등 서비스산업 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코트라 보고서는 "한국은 이미 RCEP 참여국에 고르게 진출해 있는 상황이지만, 투자 진출 기업 간 유기적인 분업과 협력 시스템 구축을 통해 연구개발(R&D), 조달, 생산, 유통, 사후관리(A/S) 등의 프로세스를 보다 전략적으로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한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수산업 부문은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참가국 중 중국, 호주, 뉴질랜드는 농산물 수출이 많은 나라이고, 아세안의 수산업도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2017년 2월 '포스트-FTA 농업통상 현안 대응 방안'에서 "RCEP 협상이 타결될 경우 율무, 고구마, 녹두, 팥과 같은 곡물류와 배추, 당근, 수박, 양파, 마늘, 고추, 생강 등과 같은 과채 채소류의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사과, 배, 복숭아, 감, 감귤과 같은 품목은 현재 검역으로 수입이 제한되고 있지만, 향후 RCEP 협상 타결이 검역에 영향을 주게 되면 과일류의 영향도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