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기자 위해 저녁자리 마련하고 둘이서만 밤샘 노래
전경련 회장 시절, 전경련 출입 기자들이 정 회장에게 붙여준 별명이 '단벌 신사'였다. 아주 특별한 행사 때가 아니면 항상 짙은 감청색 양복만 입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달리 새 옷을 입고 전경련 기자실에 나타났다. "회장님, 오늘은 어쩐 일이십니까?"
"어때. 내가 입으니까 좋아 보이지? 이거 싸구려야."
그러자 기자 한 명이 농담을 건넸다.
"회장님은 뭘 입어도 폼이 안 납니다."
"예끼 이 사람."
기자들과 격의 없이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룹 회장이 또 있을까.
하루는 정 회장이 전경련 기자들에게 "마북 연구소로 놀러 가자"라며 초대를 했다. 자신이 돈과 정성을 쏟아부어 만든 현대자동차 마북 연구소를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냥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가서 소프트볼 하고 놀자"라는 제의였다.
당시 60대 중반의 대기업 회장이 30대 중후반 기자들과 함께 운동한다는 게 어울리지 않는 그림 같지만 20대인 현대 신입사원들과도 씨름하던 정 회장인지라 기자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소프트볼을 하는데 정 회장은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도 열심히 놀았다. 뭐든 열심히, 재미있게 하는 게 정 회장의 본 모습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은 아들뻘 기자들과 흉허물없이 어울리는 정 회장의 모습을 보면서 솔직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회장이 기자들과 허물없이 지내니까 홍보실이 기자 상대로 따로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경련 출입기자 중 정 회장과 평소 가까웠던 서울신문 정신모 기자(나중에 편집국장)가 출입처를 옮기게 됐다. 정 회장에게 출입처를 옮긴다고 인사하자 정 회장이 매우 서운해했다. 그는 전경련 홍보 담당 이사에게 기자단 만찬을 준비하게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정 회장이 말했다.
"이봐, 오늘 이 자리가 어떻게 마련된 건지 알아? 당신 전경련 떠난다고 해서 서운해서 마련한 거야."
만찬을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정 회장이 불렀다.
"이봐. 둘이 한 잔 더 하고 싶으니까 내 차를 타"
정 회장은 종로로 가자고 했다. 노래 부르는 술집이었다. 회장과 기자 둘이서 밤늦게 노래 부르고 놀았다고 한다.
이런 그룹 회장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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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