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방송 조명 후 칭찬은 어느새 비꼼이 됐고,'젊은 감각의 중년'은 '나잇 값 못하는 세대'로
영포티는 40대 패션 아닌 생존 방식일 뿐…"이 나라 자랑스러운 중심 축임을 강조하고 싶어"
SNS에 자주 등장하는 '영포티'(Young Forty)는 'Young(젊은)'과 'Forty(40대)'의 합성어다. 2010년대 중반, 젊은 감각과 소비 성향을 유지하는 40대를 가리키는 마케팅 용어로 탄생했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소비력이 높은 세대를 긍정적으로 부르던 말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표현은 조롱의 상징어가 되었다. 최신 스마트폰과 스트리트 패션을 즐기는 40대 남성을 희화화(戲畫化)하는 표현으로 변질됐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한국 '영포티'를 조명하며 젊은 차림의 중년 남성을 묘사했을 정도로 이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통한다. 칭찬은 어느새 비꼼이 되었고, '젊은 감각의 중년'은 '나잇값 못하는 세대'로 밀려났다.
그렇다고 영포티의 패션을 단순한 허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들의 선택은 '동안(童顔) 패션'이라기보다 '비노안(非老顔) 패션'에 가깝다. 젊어 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늙어 보이지 않는 것이 목표다. 정장 풀세트와 헐렁한 중년복을 벗어던지되 20대식 과장된 스트리트 패션으로 치닫지 않는다. 대신 슬림하거나 세미 와이드 실루엣, 로고 없는 스니커즈, 정돈된 캐주얼을 택한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한데 관리된 인상, 이것이 영포티의 유니폼이다.
그들에게 옷은 취향의 확장이 아니다. 일종의 신분증에 가깝다. 플러스(+)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점(-)을 피하기 위해서다. 젊어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 젊어 보이지 않으면 불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40대의 패션은 멋 내기가 아니라 '현역 증명'에 가깝다.
왜 이런 감각이 생겼을까. 한국 사회는 나이, 소비력, 외모 관리, 직업적 위치가 유독 강하게 연결돼 있다. 40대가 되는 순간 '관리하지 않으면 바로 티 난다'는 압박이 작동한다. 게다가 회사에서도, 일상에서도 세대가 분리되지 않는다. 28세, 33세, 42세가 같은 팀에서 일하고, 같은 브랜드를 입으며 실시간으로 비교된다. 나이 듦은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경쟁력의 하락처럼 인식된다.
여기에 디지털 환경이 더해진다. SNS는 늘 젊고 싱싱한 장면만을 반복 노출한다. 노화의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늙음은 자연스러운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개인의 실패처럼 오해된다. 젊음은 마치 유지 가능한 상태처럼 소비된다. 그 안에서 40대는 '관리의 대상'이 된다.
한편 2030세대에게 젊음은 거의 유일한 자산이다. 아직 자산과 지위가 충분히 안정되지 않은 시기이다. 때문에 '나는 아직 저 단계가 아니다'라는 무의식적 선 긋기가 나타난다. 젊음은 경쟁력이 되고, 나이는 구분선이 된다. 게다가 결혼 연령이 늦어지며 결혼시장에서 40대가 경쟁자가 되는 현상까지 가세하게 되었다. 영포티에 대한 냉소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이런 일상적 심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지금의 40대 역시 특정 시대를 통과해왔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지나 치열한 취업 경쟁을 겪었고, 누리지 못한 청춘을 뒤로한 채 사회에 진입했다. 1990년대 문화와 스트리트 패션을 먼저 경험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이 오늘 선택하는 브랜드와 스타일은 새삼스러운 변신이 아니라 오래된 취향의 연장선일 뿐이다. 40대의 옷이 어려진 것이 아니라 청년기의 감각을 이어 입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영포티 현상은 젊음을 동경하는 욕망이라기보다 밀려나지 않으려는 감각에 가깝다. 일종의 자리 지키기 전략이다.
문제는 옷이 아니다. 나이를 먼저 규정하고 사람을 뒤로 미루는 우리의 시선이다. 40대가 젊음을 입어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20·30대가 나이로 우위를 나누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면 패션은 다시 전략이 아니라 취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영포티는 40대의 패션이 아니다. 40대의 생존 방식일 뿐이다. 오늘의 영포티들은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중심 축임도 강조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