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 후 원정은 커녕 방어전에서 최고 지도자가 나선 사례 거의 없어
21세기 한국에서 권력이나 금력 쥔 사람들,그에 걸맞은 사회 · 도덕적 책무 있지 않을까
다주택자들에게 빨리 집을 팔라고 압박하는 거친 말이 나오는 가운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말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정부 여당의 고위층의 다주택 보유자들의 앞으로 행보와 관련해서다.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19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등장했다. 그런데 당초의 뜻은 지금과 조금 달랐다. 사회 지도층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분제를 옹호하기 위해 쓰인 말이다.
즉, 혁명의 영향으로 귀족의 지위를 잃고 타격을 받은 당대 프랑스 귀족계층이 "우리는 (봉건)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했기에 귀족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역사』(남경태 지음, 들녘)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을 기원전 3~2세기에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벌어졌던 포에니 전쟁에서 찾는다. 당시 로마는 알프스산맥을 넘어 쳐들어온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을 맞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이때 로마의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전쟁비용을 부담했을 뿐 아니라 평민보다 먼저 전장에 나가 싸우다 죽는 것을 명예로 여긴 데서 노블레스 오블리스의 기원이란다. 명문가 출신의 스물다섯 살의 젊은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로마군을 이끌고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격파해 로마제국의 기틀을 다진 것이 그런 예라 하겠다.
지은이에 따르면 적어도 전장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동양의 경우 거의 전무했다. 기원전 4세기의 알렉산드로스에서 18세기의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지배자들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갔던 반면 동양에서는 대부분 지배자가 장수와 군대를 파견할지언정 몸소 전장에 나가는 경우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후 원정은 커녕 방어전에서조차 국가 최고지도자가 친히 군대와 생사를 함께한 사례가 없다고 꼬집는 데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려 헌종은 자신이 거란에 대해 강경책을 폈으면서도 정작 거란이 침략하자 전라도 나주까지 도망쳤다. 그 무렵 잉글랜드 왕 리처드와 프랑스 왕 필리프는 왕의 신분으로 십자군 원정에 직접 참여했는데 말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왜병과 맞서 싸우기는커녕 백성을 버린 채 가족과 측근들만 거느리고 야반도주해 압록강 근처 의주까지 피신했다. 지은이는 중국 주석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평안도에서 미 공군의 폭격으로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전사한 것을 드문 예외적 사례라고 들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오직 전쟁과 관련해서만 살필 것은 아니고, 동서양의 지배 형태나 상무 정신이 다르기에 이런 사례들을 오로지 한 가지 잣대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에서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이들이라면, 기득권층이라 불리든 지도층이라 불리든 그에 걸맞은 사회적·도덕적 책무가 있지 않을까. 도둑보다 성직자에게 더 무거운 윤리 기준이 기대되어야 마땅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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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