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작년보다 몇배 더 많은 포도가 열리자 자식들은 '아버지 깊은 뜻' 이해
노동 하찮게 여기고 자본만 숭배하는 사회는 언젠가 스스로를 지탱할 기반 잃어
어느 마을에 큰 병이 들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농부에게 한가지 근심이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농사를 제대로 지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죽고나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었어요. 농부는 자식들에게 포도 농사를 잘 짓는 법을 일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얘들아 이제 나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나. 내가 죽거든 너희가 저 포도밭을 일구도록 해라."
농부는 농사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자식들의 손을 잡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전에 내가 너희들을 위해 포도밭에다가 보물을 숨겨두었단다. 그것을 찾아내 행복하게 살도록 해라."
죽는 순간까지도 자식들을 걱정하던 농부는 이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식들은 서둘러 포도밭으로 달려가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보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포도밭을 파내도 보물이 나오지 않자 자식들은 몹시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이 되자 포도밭에는 작년보다 몇배 더 많은 포도송이가 열렸습니다. 농부의 자식들이 깊게 판 땅이 아주 기름져서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자식들은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아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게 바로 이것이었구나!"
잘 익은 포도 송이를 수확하면서 자식들은 비로소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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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가치의 근원=이 이솝우화는 노동으로 얻은 결과물이 최고의 보물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칫 황금만능주의에 빠질지 모른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노동의 위대한 가치를 일깨워줬습니다. 이런 훌륭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이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노동이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기술, 판단, 책임을 투입해 가치있는 목표를 달성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일을 하지 않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돈은 노동이 만들어낸 결과를 교환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당장의 기쁨을 뒤로 미룰 줄 알고, 보상을 받는 방법을 배우며, 그런 보상을 받을 자격을 갗추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노동의 기능 때문에 일을 하는 사람은 자부심이 커지고 만족스런 생활을 합니다. 늘 균형잡힌 삶, 방향성이 뚜렷한 삶은 노동으로만 이룩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도 노동은 핵심 생산요소입니다. 토지와 자본이 있어도 노동이 없으면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공장은 기계만으로 돌아기지 않고, 토지는 사람이 가꾸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노동은 자연과 자본을 결합해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는 힘입니다. 이 때문에 고전 경제학자들은 노동을 '가치의 근원'으로 보았습니다. 공장에 찍어내는 물건보다 손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수제품이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는 종종 왜곡됩니다.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은 가만히 두어도 가격이 오르는데, 정직하게 일을 해 번 돈은 증식 속도가 훨씬 느립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노동보다 투기나 자산 투자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요즘은 될 수 있으면 일을 적게 하고 많은 수입을 올리려는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잘만하면 한몫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땅이나 집 등에 전 재산을 털어넣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이 때문에 집 값이 급등해 보통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립니다.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경제를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솝이 살았던 그 옛날에도 한탕주의가 만연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우화를 통해 한탕주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땀흘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술 발전으로 노동의 형태가 바뀌긴 해도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진 못했습니다. AI(인공지능)과 공장 자동화가 단순 반복 작업을 대신하더라도, 창의, 판단, 책임, 돌봄 같은 영역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오히려 이런 인간적 노동은 갈수록 빛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의 가치는 돈보다 크고 인간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입니다. 노동을 하찮게 여기고 자본만을 숭배하는 사회는 언젠가 스스로를 지탱할 기반을 잃게 될지 모릅니다. 노동은 경제적으로만 접근해선 안되고 사회의 품격을 결정하는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임금을 결정하는 '한계생산성'=노동은 대개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이를 임금이라고 하죠. 임금은 한마디로 "당신의 노동이 시장에서 얼마나 가치있게 쓰이느냐"로 결정됩니다. 임금 결정의 가장 근본적인 기준은 한 사람이 추가로 만들어 내는 '한계생산성'입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서빙 1명을 더 쓰면 매출이 하루 15만원 늘어난다면 그 사람의 임금은 최대 15만원 근처가 한계이니다. 프로그래머 1명이 회사에 연 1억원의 추가 수익을 만든다면 연봉이 1억원 까지 갈 수 있습니다. 기업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을 쓰면 매출이 얼마나 더 늘어날 것인가?" 이것이 임금의 이론적 상한선입니다.
노동의 희소성, 즉 대체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도 임금 결정 요인입니다.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임금은 내려가고 적으면 임금은 올라갑니다. 예컨대 단순 계산‧입력 업무는 대체 인력이 많기 때문에 임금이 낮고, 반도체 설계, 수술, AI 모델링은 대체인력이 적어 임금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지불능력도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일을 해도 삼성전자와 중소기업의 임금이 차이나는 이유는 삼성전자가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입니다. 임금 시장가격 이외에 사회적 요인으로도 결정되기도 합니다. 최저임금이라든가, 노동조합, 노동법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제도는 임금이 너무 낮아지는 것을 막습니다. 노조가 강한 기업일수록 노동자가 자기 몫을 더 많이 가져 갑니다.
매달 월급 받는 입장에선 임금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렇지만 기업은 될 수 있는 한 임금을 적게 줘 생산 비용을 줄이려고 합니다. 노동자와 기업 사이에서 일어나는 노사 갈등의 대부분은 임금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임금은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높여줄지는 몰라도 인건비 증가로 지출이 늘어나면 기업은 생산 축소에 나서 노동자의 실업이 늘어난 위험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지나친 저임금은 기업에는 유리할지 모르나 노동의욕을 잃게 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데 차질을 빚게 해 결국 기업활동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적정한 임금 수준이 기업의 재정능력이나 노동 생산성을 감안해 결정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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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