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은 고대 이집트서 낮과 밤의 길이를 각각 12등분해 하루를 나눈 것에서 기원
우리나라에서는 '연종포'라고해서 섣달그믐에 궁중서 대포를 쏴 '악귀' 내쫓는 풍습
새해가 밝았다. 눈 한 번 끔뻑한 듯싶은데 또 한 해를 보내고, 다시 한 살이 보태지다니. 어려선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길 빌고 또 빌었어도 한 살을 더 먹는 게 늙은 소 하품하듯 느려터지더니 언제부턴가 뻑하면 나이 헤기다. 더욱 희한한 건 하루하루는 막강한 끈끈이에 포섭이라도 된 것처럼 끈적끈적, 더디고 무료하기만 한데…, 한 달이고, 일 년은 후딱 후딱, 정신을 가눌 수 없을 정도다. 그렇게 머리가 세고, 얼굴에 금이 가는 세월(歲月)이다.
#세월은 시간의 매듭이다. 세(歲)가 그렇고, 월(月) 또한 그런 것이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개념이 생겨난 것은 하루(밤과 낮) 및 한 해(계절)의 흐름*이 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시간을 흐르는 강물처럼 '어디선가에서 와서 내 앞을 지나쳐선 어딘가로 흘러가는' 성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구가 밤낮이나 계절의 변화가 없는 행성이었다면 우리 인간은 아예 시간이란 개념조차 없었거나, 혹 시간을 생각했더라도 망망대해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고 '불변적(不變的)인 것'이라고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하루의 흐름은 해시계를, 계절의 흐름은 스톤헨지(stonehenge‧ 環狀列石) 등의 도구를 이용해 측정하고, 분(分)단위의 시간을 측정할 때는 모래시계 등을 이용했으며, 톱니바퀴와 태엽, 진자 등을 이용해 보다 정밀하게 시간의 흐름을 측정할 수 있게 된 뒤에는 초(秒 )단위의 시간까지 측정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등 다양한 고대 문명이 해시계를 이용해 하루를 여러 개의 시간으로 쪼갰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24시간은 고대 이집트에서 낮의 길이를 12등분**하고 밤의 길이를 12등분하여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눈 것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일정한 길이의 시간을 한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시계, 정확히는 14세기 기계식 시계의 발명 이후이며, 한 시간을 60분으로 나누며 시계에 분침이 달린 것은 더욱 정확한 시계가 등장한 16세기부터이다. 초 단위와 시계의 초침이 등장한 것도 16세기로 당시 초침이 달린 시계는 매우 정밀한 과학자용 전문 장비였기 때문에 시계방에서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현대식 태엽시계는 영국의 시계기술자 존 해리슨이 1735년 발명한 '해리슨 원(H1)'이 최초다. H1은 100일에 1초밖에 틀리지 않는 정밀 시계로 처음엔 높이 60㎝의 육중한 기계장치***였다가 점차 개량을 거듭해 마침내 H4 모델 개발에 성공,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로 돼 오늘날의 시계모습을 갖추었다.
*해를 가리키는 '日(일)'과 달을 뜻하는 '月(월)'은 잘 알다시피 '하루'와 '한 달'이란 의미로 확대됐다. 그렇다면 '한 해'를 뜻하는 '歲(세)'와 '年(년)'은? 우선 '歲'는 '步(보)'와 '戊(무)' 로 구성돼 '둥근 날을 가진 낫(戊)을 가지고 걸어가며 곡식을 수확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다. 이로부터 '베다''자르다'는 뜻이 나왔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선 수확에서 다음 수확 때까지의 주기를 '1년'으로 인식했고, 그 때문에 '한 해'와 '나이'의 뜻으로도 쓰였다. 그러자 원래의 뜻은 칼을 뜻하는 '刀(도)'를 더하여 '劌(벨 귀)'로 분화했다. 다른 해석도 있다. 歲자를 '戉(도끼 월)'자와 '步(걸음 보)'자의 결합으로 보는 견해다. 그런데 도끼와 걸음을 함께 그린 '歲'자가 어떻게 '세월'이나 '나이'를 뜻하게 된 것일까?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에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사람들이 많았다. '歲'자는 그러한 의미를 담은 글자로 '창(戌)을 들고 싸우면서 보낸(步) 시간'이라는 뜻이다. '歲'자에 '한평생'이라는 뜻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 해'를 뜻하는 '年(년)'자도 '禾(벼 화)+人(사람 인)'으로 구성돼 '사람이 볏단을 지고 가는 모습'에서 수확의 의미를 그렸는데 글자 모양이 변해 지금처럼 됐다. 곡식이 익다, 수확하다가 본뜻이며, 수확에서 다음 수확까지의 시간적 순환으로부터 '한 해'라는 개념이 나왔다. 또 연대, 나이 등도 지칭하게 됐다. '人' 을 '千' 으로 바꾼 '秊' 으로 쓰기도 한다. 진(秦)나라 때부터 '年'과 '歲'가 함께 쓰이면서 '年歲'가 나이를 뜻하게 됐다. 또 소의 앞니가 일 년에 하나씩 난다고 해서 '齡(령)'을 한 해로 삼기도 했는데, 이로부터 '연령(年齡)'이란 말이 나왔다. 이밖에 '載(재)', '祀(사)'도 '한 해'를 뜻하는 데 쓰였다. 이렇게 한 해를 뜻하는 글자가 만들어지자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해를 기록하는 방법도 생각하게 돼 우리말로 '돌'은 '일 년'을 뜻하므로 '周年(주년)'혹은 '週年(주년)'이라고 하고, 10년이면 '年代(연대)', 12년이면 '紀(기)', 30년이면 '世(세)' 또는 '代(대)'나 합쳐서 '世代'라고 하고, 60년은 '甲(갑)' 또는 '甲子(갑자)'라고 불렀다.
한편 100년은 '世紀(세기)'라고 하는데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중국에서도 일찌기 '세기'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는 저술의 한 종류로 《상서세기(尙書世紀)》,《제왕세기(帝王世紀)》처럼 제왕의 세계(世系)를 기록한 전적(典籍)을 뜻했다. 100년 주기로서 '세기'라는 개념은 유럽에서 유래됐다. 예수가 탄생한 해를 기준으로 서기 원년에서 100년을 1세기, 그 다음을 2세기라고 한다.
**목성(木星)을 '세성(歲星)'이라고도 하는데 공전 주기가 12년이다. 옛 사람들은 하늘을 12등분 해 12차(次)라고 했으니 목성은 일 년에 한 차씩 운행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는 12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지지(地支)와도 맞아 떨어져 이 별의 위치에 따라 지지를 하나씩 대응시켜 '기년(紀年ㆍ해를 기록함)'했으므로 '해를 기록하는 별'이라는 뜻에서 '歲星'이라 하고, '歲'는 '일 년'과도 같은 뜻으로 쓰였다. 세성은 오행(五行)에서 동쪽을, 계절로는 봄을, 물질로는 나무(木)를 각각 상징한다고 여겨 목성(木星)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계(clock)가 아니라 '시간계측기(chronometer)'라고 불렸다.
#보통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겠지만 현대 물리학에서 시간의 흐름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증거는 아직 발견된 적 없으며, 따라서 시간의 흐름이 실재한다고 말할 근거가 불완전하다. 많은 경우 과학 법칙은 과거와 미래를 구별해서 적용되지 않는다. 대개 직감적인 이미지로는 과거는 '지나가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런 '과거·현재·미래'라는 사고방식*은 가지지 않는다. 실제로 아인슈타인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와 같은 열성적인 물리학자에게는 과거·현재·미래라는 것은 환상이다. 아무리 확고한 것처럼 보여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ㆍ현재ㆍ미래 사이에 명확한 구별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어떤 과학자들은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변화를 느끼면서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필름이 한 장 한 장 모여서 우리가 움직이는 장면으로 느끼는 것처럼 우주도 각 순간이 '정지된 장면'처럼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선형적(線型的) 시간 개념은 인간의 인지에 지나지 않으며 ,자연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양자역학의 세계에선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는 없다. 우리가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은 우주의 관점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관측자는 서로 다른 현재를 경험하고, 물리적으로 '하나의 현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전통물리학에서처럼 엔트로피(entropy)의 증가 방향으로만 시간이 흐른다고 느껴지지만 기본적인 물리법칙에서는 시간에 방향은 없고, 결국 시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변수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라는 것이다.
#우주의 기원이라는 '빅뱅(Big Bang)'이 시작되면서 부터 지금까지 138억년이 흘렀다는데, 사실 시간을 들여다보는 건 신(God)을 흉내 내는 짓이다. 시간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한 순간도 쉼 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불확정성(不確定性)'의 대표다. 그런데도 이런 걸 알아보겠다고 덤비니 인간은 건방지다 못해 무모하기 조차하다. 이 엉덩이에 뿔 난 놈들이 잔머리 하나는 '기막히다'는 것은 신도 안다. '지금'이 동시에 '아까'가 되고, '이따'가 되니 어찌한다? 펨토초(Femtosecond)*보다 빠른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흐름에 칼침을 주어 토막내보자. 그리고 그 토막을 끄집어내면 가지고 놀 수 있지 않겠나? 컨베어벨트(conveyerbelt)에서 빼낸 장난감맹키로. 이런 게 우리 인간이다. 이 같은 발상은 우리의 '시간 경험'이 물리학적 진실과는 달리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현상 자체가 우리 뇌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신-생물학적 현상'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즉, 생존에 유리하도록 뇌가 '시간의 흐름'이라는 '인터페이스(interface)'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주변 환경과 내부 상태를 파악하고 다음 순간을 예측하는데 이 예측 과정과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감각 사이의 상호작용이 우리에게 '과거에서 현재로 나아가는' 동적(動的)인 경험, 즉 시간의 흐름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시간이 물리학적으로는 '흐름'이 아닐지 몰라도, 우리의 삶에서는 분명히 존재하는 '실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착각이라 해도, 또 영원히 펼쳐진 필름이라 해도, 우리의 '추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는 우리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한마디로 물리학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뇌가 만들어낸, 가장 정교하고 필요한 '움직이는 스토리'로 이 덕분에 우리는 계획하고, 성장하고,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간다.
*10의╶15, 즉 1000조분의 1초. 1/ 1000000000000000 초.
#2025년 12월 밤 11시 59분 59초와 2026년 1월 0시 01초가 뭐 그리 크게 다를까마는
우리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제야(除夜)행사를 치렀다. 시간의 매듭을 확인하는 의례다. 영하 10도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 열린 서울시민의 '제야의 종' 행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타종과 불꽃놀이 등으로 '송구영신(送舊迎新)' 의 의미를 다졌다. '제야의 종'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울린다. 1927년 일본의 도쿄방송국이 사찰에서 108번 타종(打鐘)하는 소리를 녹음해 새해 아침에 라디오로 방송한 것이 최초의 '제야의 종'이다. 우리나라에선 2년 뒤 경성방송국이 이를 따라 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한때 '제야의 종소리'는 일제의 잔재라며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광복 뒤에는 보신각종(普信閣鐘)을 33번 치는 것으로 바뀌었고, 한국전쟁으로 중단됐다가 1953년부터 새해맞이 행사로 계속되고 있다. 타종 수는 조선시대 새벽을 알리는 파루(罷漏) 때 서른 세 번의 북을 친 데서 유래*했다. 조선 때 한양에선 매일 밤 이경삼점(二更三點‧ 밤 10시)이 되면 통행금지를 알리는 '인경'**으로 28번의 종을 치고, 오경삼점(五更三點‧새벽 4시)에는 통행해제의 신호로 북을 33번을 쳤는데 이를 '파루(罷漏)' 또는 '바라'라고 했다. 인경으로 종을 28번 치는 것은 동서남북 각 7수(宿)의 별자리에게 고(告)해 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뜻이 담겼고, 파루로 33번 치는 것은 제석천(帝釋天)이 이끄는 33천(天)***에 아침을 알리는 의식이었다. 파루 33번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단순히 불교행사가 아니라 새 아침을 맞는 기쁨을 온 세상, 온 우주에 알리는 의미다. 그렇지만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불교적 우주관을 차용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종소리에 담겨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제야는 1년 가운데 마지막 날인 음력 섣달 그믐날 밤을 일컫는 말이지만 양력으로도 같이 쓰인다.
한편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도시에서 축제와 이벤트가 벌어지는데 우리와는 달리 불꽃놀이가 대표적인 행사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도 연종포(年終砲)라고 해서 섣달그믐에 궁중에서 대포를 쏴 소리를 크게 냄으로써 악귀를 쫓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중국이나 서양에서 새해맞이 불꽃놀이와 같은 의미다.
*시간의 구분으로서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눠 각 경(更)이라 하고, 한 경은 다시 다섯 점(點)으로 나눴다. 경에는 북을, 점엔 꽹과리를 쳐서 시간을 알렸다.
**'人定(인정)'이라고 쓰고 '인경'이라고 읽었다.
***불교에선 욕계(欲界) 10천, 색계(色界) 18천, 무색계(無色界) 4천, 도리천(忉利天)의 33천이 있다고 믿는다.
#요즘이야 '종 치기'가 대세이지만 예전에도 다양한 전통적인 제야 행사가 있었다. 섣달 그믐날 밤이면 마루와 방, 부엌은 물론 마구간과 둑간, 대문간, 헛간, 장독대, 우물 등 집안 구석구석에 불을 환하게 켜놓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다.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하는데 섣달 그믐밤에 불을 밝히고 설을 밝게 맞이하기 위한 풍속이다. 그러면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고 복된 새해를 맞는다고 믿었다. 밝음(陽)으로 음(陰)의 기운인 사기(邪氣),부정한 액(厄)을 물리치려는 염원이다. 이날을 제야(除夜)라고 하는 바 '밤을 없앤다.'는 뜻이니 곧 대낮같이 환하게 불을 밝히는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날 어른들은 설을 쇨 음식, 즉 세찬(歲饌)을 마련하느라 어차피 날밤을 새기 마련이지만 아이들은 "자면 눈썹이 모두 센다."는 경고(?)에 혼신을 다해 눈을 부릅떠보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주체하지 못해 비척거리곤 했다. 결국 잠에 쓰러지면 어른들이 눈썹과 얼굴에 밀가루를 발라 하얗게 만들어주고, 아침에 깬 아이가 '색경'*에 비친 제 낯이 하얀 데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 걸로 집안이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니 새해 첫날부터 웃음으로 출발케 하는 미풍(美風)이었다. 시간을 매듭지어 정지된 상태로 분석해 이해 또는 인식하고, 기억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시간의 흐름이 매듭으로 인해 방해를 받지 않고 연속되도록 한 장치가 바로 수세이다. 또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날'이라고 해서 정월 초하루의 설날과 자연스레 연결시키는 것도 같은 발상이다. 어제와 오늘을 나눴으되 진짜로 단절됨을 꺼리는 속내는 고려 가요 '가시리'**의 정조(情調)를 꼭 닮았다.
*우리 계에서 거울을 그렇게 불렀다.
**'서러운 님 보내드리니 가시자마자 곧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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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다니다 1982년 중앙일보에 신문기자로 입사했다. 주로 사회부,문화부에서 일했다. 법조기자로 5공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철희ㆍ장영자 사건을 비롯,■영동개발진흥사건■명성사건■정래혁 부정축재사건 등 대형사건을, 사건기자로 ■대도 조세형 사건■'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탄주범 지강현사건■중공민항기사건 등을, 문화부에서는 주요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들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중앙청철거기사와 팔만대장경기사가 영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엔 초짜기자임에도 중앙일보의 간판 기획 '성씨의 고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199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토종을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종자전쟁에 대비를 촉구하는 기사를 1년간 연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토종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대한상의를 비롯 다수의 기업의 초청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