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정신영 씨의 사망 후에 관훈클럽 내 언론인들을 지원해주는 '정신영 기금' 만들어
정주영 회장의 신문읽기는 쭉 계속됐다. 쌀가게 점원 시절은 물론 사업을 새로 시작하며 정신없는 와중에도 신문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정 회장의 운전기사가 해야 할 일은 운전하는 것 말고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정 회장은 새벽 4시쯤 일어나자마자 신문부터 찾았다. 조간신문이 배달되는 시간이 아니었다. 기사는 그 전에 보급소에 직접 가서 신문을 가져와야 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회장 비서실이나 홍보실에서 하는 일 중에 신문 스크랩이 있다. 주요 조·석간 신문에서 중요한 기사나 기업 관련 기사는 모조리 정리해서 회장이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조간이 많으니까 회장 출근 전에 스크랩한 것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려면 비서실이나 홍보실 담당 직원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그룹 홍보실은 스크랩할 일이 없었다. 매일 새벽 1시간 이상 기사를 꼼꼼히 살펴보는 정 회장이 스크랩보다 더 많은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신문을 많이 보고, 오래 봐 왔으니 언론에 관한 철학도 확고했다. 정 회장은 "언론은 항상 약자 편에 서야 한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정부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건 강자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기자는 정직해야 한다"라고 했다.
"어떤 사건에 대해 정부 발표를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대서 특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신문에서 먼저 죄인 취급하면 당사자는 억울하다. 나중에 무죄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건에 대해 사실만 간단히 보도해야지 주까지 달아서 없는 말을 보태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아마 신문의 오보로 인해 피해 본 사례를 많이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정권의 강압에 당했던 본인과 현대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혹시 정 회장은 자신을 약자라고 생각했을까. 대그룹 현대의 회장이면 강자면 강자지 약자는 아니다. 정 회장이 현대 근로자들을 어떻게 아꼈는지 알면 자신의 얘기가 아니라 일반적인 언론의 자세를 얘기한 것으로 생각한다.
정 회장은 기본적으로 신문에 대한 관심이 많았을 뿐 아니라 우호적이었다. 가장 아끼던 동생 신영 씨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자 동아일보 기자를 하라고 권유한 것도 정 회장이었다.
신영 씨 사망 후에 정 회장이 관훈클럽 내에 언론인의 교육과 출판을 지원하는 '정신영 기금'을 만들고, 관훈클럽 사무실도 마련해준 사실은 신영 씨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 뿐 아니라 언론에 대한 그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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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