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9 12:45 (월)
[김성희의 역사갈피] '시민의 무지'를 이용하는 정치
[김성희의 역사갈피] '시민의 무지'를 이용하는 정치
  •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12.29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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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등으로 정보 부족은 해소되었을지 몰라도 '잘못 아는 것' 또한 '무지'만큼 위험
프랑스가 문화적·경제적· 군사적 강국 되는데 토대 쌓은 '정치인'은 '우민정책' 신봉자
폴란드 언론인은 자신의 저서에서"독재정권의 존속은 군중의 무지에 달려 있어"강조
英문화사 교수가 쓴 책에"교육이 정부,교회 비판하는 자 많이 만들것"이란 대목 눈길
리슐리외가 "무지가 국가에 해가 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지식도 마찬가지"라고 단언한, 우민정책의 신봉자였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리슐리외라는 이름이 낯익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맞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 등장하는, 권모술수의 대가이자 악역인 바로 그 사람이다.

한데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3세 시대에 활약한 리슐리외는 실은, 프랑스의 발전과 왕권 강화에 헌신한 명재상이란 평가도 있다.

추기경으로 수석 국무장관을 지낸 그는 귀족들이 소유한 요새와 성을 파괴하고, '결투 금지법'을 제정해 귀족들 간의 사적 제재를 금지했다.

더불어 관료제도를 확립하고, 상업 발전에 힘썼으며, 프랑스어의 순수성을 지키고 문화발전을 위해 그 유명한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창설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오늘날 프랑스가 문화적·경제적·군사적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토대를 쌓은 인물이라 하겠다.

그토록 뛰어난 정치가였던 리슐리외가 "무지가 국가에 해가 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지식도 마찬가지"라고 단언한, 우민정책의 신봉자였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문화사 교수가 쓴 『무지의 역사』(피터 버크 지음, 한국경제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농민과 농업 노동자가 교육받으면 농사를 망치고 징병도 더욱 힘들어진다. 게다가 모든 이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지만 정작 해결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교육이 정부와 교회를 비판하는 자를 너무 많이 만들어 낼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는 리슐리외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책에 따르면 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계몽사상가인 볼테르 또한 1763년 노동자는 교육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치안판사 루이 르네 드라 샬로테에게 감사를 표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덴마크를 통치한 프레데리크 6세 국왕 또한 "농민은 읽기, 쓰기와 셈,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의무를 배우되 그 이상은 배워서는 안 된다. 머릿속에 괜히 쓸데없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선언했다.

영국에서는 1867년 선거법 개정으로 노동자 계급의 남성들에게까지 선거권이 확대되자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지식인들은 "무지가 지식을 심판하고 가르침보다 우위인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폴란드 언론인인 리샤르트 카푸시친스키가 자신의 저서에서 "독재정권의 존속은 군중의 무지에 달려 있다"고 갈파한 것은 한참 뒤인 1982년의 일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대개 신문이 아닌 TV나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치 관련 정보를 얻지만 무지가 초래하는 위험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보 부족은 해소되었을지 몰라도 '잘못 아는 것' 또한 '무지'만큼 아니 그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온갖 뜬소문과 음모론이 판치는 우리 사회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언론에 재갈을 물릴 우려가 있다"는 친여 성향 시민단체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과연 누구를 또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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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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